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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코모 Jan 04. 2022

제발 부활시켜달라고 난리났는데 다시 나오면 잘 팔릴까?

어린 시절, 혹은 중장년층이라면 젊었던 시절 기억에 남은 차가 하나쯤은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아버지의 차가 될 수도, 자신의 첫차가 될 수도, 길가에 다녔던 드림카가 될 수도 있다. 시간이 지난 후 가끔 그 차가 도로에 돌아다니거나 사진을 살펴보면 '그땐 그랬었지'라며 추억을 회상하게 된다.


추억의 자동차를 떠올리는 사람들 중에서는 "이 차가 부활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는 차도 있다. 이런 차들의 경우 추억의 자동차들 중에서도 기억에 강렬하게 남은 경우가 많을 것이다. 이번 포스트에서는 네티즌들이 다시 부활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추억의 자동차에 대해 살펴보자.

쌍용자동차 무쏘

벤츠 엔진을 장착한 명차 중의 명차

지금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쌍용차지만 전성기 시절에는 무쏘, 뉴코란도, 체어맨 등 명차를 많이 만들어 냈다. 그중 무쏘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고 있는 명차이며, 많은 사람들이 부활을 염원하고 있는 차량이다. 


당시 쌍용차는 현대차의 갤로퍼에 의해 SUV 시장 점유율을 빼앗기고 있었을 시기였다. 그도 그럴만한 게 현대차는 해외에서도 신뢰성 좋다는 미쓰비시 파제로를 라이선스 생산했기 때문이다. 신뢰성도 좋았지만 디자인도 고급이었고, AS 편의성도 대기업인 현대차답게 괜찮았고, 부품 가격도 저렴했다. 구 코란도와 코란도 훼미리는 갤로퍼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SUV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쌍용차는 갤로퍼에 상대하기 위해 벤츠와 손을 잡았다. 벤츠로부터 OM601과 OM602 디젤엔진을 받아오는데 성공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SUV를 개발해 1993년 무쏘라는 이름으로 출시되었다.


출시 당시부터 벤츠 엔진 장착이라고 대대적으로 홍보해왔는데, 이것이 꽤 잘 먹혔다. 그 당시 국내에서 벤츠의 명성은 지금의 롤스로이스 이상으로 높았던 때였기 때문에 벤츠 엔진 장착 하나만으로 큰 메리트가 되었다. 당시 벤츠는 신뢰성을 매우 중요시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엔진 내구성이 매우 튼튼했다. 한국도로공사에 무쏘를 납품했는데, 무보링으로 80만 km를 달린 차가 꽤 많았다. 이에 감탄한 한국도로공사는 지금도 쌍용차를 업무용 차량으로 납품, 활용한다.


→ 매번 논란이라는 논란의  세금

“이럴 거면 차라리 폐지해라” 또 불거진 자동차 개소세 논란

벤츠 엔진 장착과 더불어 디자인, 사양도 꽤 훌륭해 판매량이 많이 늘어났으며, 갤로퍼와 엎치락 뒤치락을 반복했다. 디젤 엔진 외에도 가솔린 엔진도 장착했는데, 체어맨에 장착한 3.2리터 라인업을 기반으로 한 500 리미티드도 500대 한정판으로 판매했는데, 가격이 무려 4,950만 원으로 매우 비쌌다. 비싼 만큼 페인트도 듀폰제를 활용했고 당대 최고급 사양들을 많이 적용했다. 다만 당시 고급차는 세단이라는 인식이 많았기에 고급 세단보다 비싼 가격을 주고 이 차를 사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으며, 대부분 수출되었다.


2002년에는 픽업트럭 모델인 무쏘 스포츠가 출시되었다. 비영업용 기준으로 연간 2만 8,500원이라는 저렴한 자동차세 덕분에 인기가 많았으며, 작은 적재함에도 화물차로 인정받는 문제점 때문에 화물차 등록 규정이 변경되기도 했다. 쌍용그룹이 부도나고, 대우자동차가 인수했다가 다시 나오는 등 쌍용차가 우여곡절을 겪는 와중에도 무쏘는 잘 생산되었지만 상하이자동차가 인수한 이후 2005년, 무쏘를 단종하고 후속 모델인 카이런을 내놓았다. 원래는 후속 모델이 렉스턴이었지만 한 등급 상위 모델로 변경되었다.

단종된 지 14년이 지난 2019년, 쌍용차로부터 신형 무쏘를 개발하고 있다는 소식이 나왔다. 당시 D300이라는 코드네임으로 개발 중이었지만 쌍용차의 수익이 좋지 않아 개발이 중단되었다. 이전에도 D200이라는 이름으로 카이런 후속을 개발 중이었다가 취소한 적이 있었는데, 또 취소되었다.


이후 D300을 대시한 J100 개발 소식이 나왔다. 이번에는 취소 없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개발을 잘 이어가고 있으며, 위장막 혹은 위장 필름을 두른 테스트카도 요즘 자주 포착되고 있다. 이름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국내에서는 무쏘의 이름이 붙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해외에서는 렉스턴 스포츠가 무쏘로 팔리는 중) 네티즌들도 J100이 잘 개발되어서 무쏘의 뒤를 이어주기를 바라고 있다. 전기차 모델인 U100도 최근 BYD와 협업을 통해 개발 중이다.

쌍용자동차 코란도

정통 SUV로 다시 부활해달라

코란도는 지금도 판매 중이지만 여기서 언급하는 코란도는 지금 코란도가 아닌 정통 SUV 시절이었던 뉴 코란도까지를 말한다. 코란도의 역사는 국산차 중에서 가장 오래되었으며, 1969년 지프 CJ-5(현재 후속 모델이 랭글러다)를 국내에 도입해 신진 지프라는 이름으로 출시했다. 미국차를 들여온 것이기 때문에 당시 가솔린 엔진을 장착했다. 처음에는 2.2리터 4기통 엔진이 장착되었다가 나중에 신진자동차와 AMC가 합작 법인을 출범한 이후에는 3.8리터 6기통 엔진이 장착되었다.


성능은 좋았지만 고배기량 가솔린 엔진이었고, 오일 쇼크도 맞았던 탓에 판매량이 많지 않았다. 신진자동차도 이 문제점을 알고 있었지만 AMC의 간섭 때문에 디젤 엔진을 탑재하지 못했다. 그러다 판매 부진으로 AMC가 지분을 팔았고, 그 덕분에 자유로워진 신진자동차는 연비가 좋은 이스즈의 2.8리터 디젤 엔진을 장착해 판매량을 대폭 높였다.

이후 신진자동차는 회사 이름을 거화로 변경하고, 1983년 차명을 코란도로 변경했다. 엔진도 배기량이 낮아진 2.2리터 디젤 엔진으로 변경되었고, 나중에는 2.0리터 가솔린 엔진도 장착되었지만 판매량은 매우 적었다. 1988년에는 국산 도심형 SUV의 조상이라고 할 수 있는 코란도 훼미리가 출시되었지만 이름만 같은 다른 차종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오래된 차라는 인식이 있었고, 현대차에서 갤로퍼를 출시하면서 코란도는 심각한 판매 부진에 빠지게 된다. 이를 타파하기 위해 벤츠와 손을 잡고 무쏘를 출시한 데 이어 코란도의 후속 모델인 뉴 코란도를 1996년에 출시했다. 

뉴 코란도는 출시 당시 훌륭한 디자인으로 크게 주목받았다. 정통 SUV의 스타일을 최대한 살리면서 승용차의 감각을 잘 조합한 것이 특징이다. 그 덕분에 정통 SUV이지만 투박함 대신 세련된 모습을 갖췄으며, 거기에 자동차세가 저렴한 밴 모델까지 추가되어 젊은이들에게 높은 인기를 얻었다. 당시 대학생들의 드림카로 불리기도 했다. 엔진은 무쏘와 공유했다.


무쏘와 마찬가지로 쌍용차가 우여곡절을 겪을 동안에도 꾸준히 생산되었지만 상하이자동차가 쌍용차를 인수 후 2005년에 후속 모델인 액티언에 자리를 넘겨주고 단종되었다. 이후 액티언 후속모델에서 다시 코란도라는 이름이 쓰이지만 도심형 SUV 성격을 그대로 유지했다. 하지만 현재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는 코란도의 이미지는 험지를 거침없이 달리는 강인한 모습이었기에 지프 코란도 부활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현재 뉴 코란도의 디자인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KR10을 개발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갤로퍼

현대차 최초 SUV

위에서 잠깐 언급한 현대차의 갤로퍼도 네티즌들이 부활을 가장 희망하는 차종 중 하나다. 실제로 현대차가 과거의 차량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헤리티지 시리즈를 공개하고 있는데, 포니, 그랜저 1세대 다음으로 선보이는 차가 갤로퍼다. 이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갤로퍼를 그리워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갤로퍼는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의 후계자 자리를 둔 경쟁 과정에서 나온 모델이다. 차남인 현대정공 정몽구 회장에게 후계자를 물려주고 싶어 했지만 (장남인 정몽필 사장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현대차를 창립하고 크게 발전시켰던 정주영 회장의 동생인 정세영 현대차 회장의 공로도 무시할 수 없었다. 정몽구 회장은 마침 자동차 공업 합리화 조치가 해제되어 현대차가 아직 진출하지 않은 SUV 분야를 정몽구 회장에게 맡겨 후계자 기회를 준 것이다.

일단 정주영 회장에게 지원을 받긴 했는데, SUV 개발은 쉽지 않았다. 험지를 주행하는 SUV 특성상 다른 승용차 대비 높은 신뢰성을 요구했기 때문에 설계가 까다로웠다. 처음에는 고유모델을 개발해 테스트를 진행해 봤지만 실패했다. 결국 정몽구 회장은 고유모델 개발을 과감히 포기하고 현대차와 제휴 중이었던 미쓰비시 파제로를 들여와 갤로퍼라는 이름으로 1990년 출시했다.


라이선스 생산이었기 때문에 로고만 제외하면 미쓰비시 파제로랑 동일했다. 각진 디자인을 가지면서도 당시 기준으로 꽤 고급스러웠던 디자인, 훌륭한 정비 편의성, 원본인 파제로의 훌륭한 신뢰성을 장점으로 내세워 SUV 시장을 빠르게 장악해 나갔다. 갤로퍼의 성공으로 인해 쌍용차는 당시 큰 타격을 받았다. 갤로퍼의 성공으로 정주영 회장의 후계자 자리를 굳히는데 성공했고, 나중에 현대차그룹 회장을 맡아 크게 성장시키는데 크게 공헌했다.

갤로퍼는 3도어 숏바디와 5도어 롱바디 두 가지가 있었으며, 디젤이 주력이었지만 가솔린 모델도 있었다. 1993년에는 곡선을 어느 정도 가미한 갤로퍼 2를 출시했으며, LPG 모델도 추가되었지만 판매량은 많지 않았다. 갤로퍼의 성공으로 SUV 기술을 습득하는데 성공한 현대차는 이후 싼타페, 투싼 등 다양한 SUV 라인업을 갖추게 되었고, 노후된 갤로퍼는 테라칸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2003년 단종되었다.


시간이 지난 현재는 리스토어로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 기술적으로는 무쏘가 더 우수하지만 갤로퍼도 신뢰성만큼은 뒤지지 않으며, 요즘 SUV에서는 보기 어려운 각진 디자인, 무엇보다 지금도 부품 수급이 매우 원활하기 때문에 리스토어 시장에서 인기가 높다. 리스토어를 거친 후 캠핑이나 오프로드 주행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났다. 다만 갤로퍼의 주력이었던 경유차에 대한 인식이 안 좋아지고 정부에서도 노후 경유차 폐차를 권유하고 있어 갤로퍼의 뒤를 잇는 모델 출시를 현대차에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그랜저 1세대

당대 최고급 승용차

그랜저는 지금도 생산 중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그랜저 1세대, 일명 각그랜저는 지금 그랜저와는 완전히 다른 위치에 있다. 지금 그랜저는 국산차 중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차로, 쏘나타를 제치고 국민차가 되었지만 1세대 그랜저는 당대 최고급 승용차로서 부자나 고위층이 아니면 운행하기 어렵다. 물론 지금도 그랜저 가격은 결코 저렴한 편은 아니다.


원래 고급차 시장은 대우자동차의 로얄 시리즈가 장악하고 있었다. 반면 현대차는 첫 고유모델인 포니를 시작으로 엑셀, 스텔라 등 대중 모델을 많이 선보이고 판매했기 때문에 현대차는 대우차보다 아래라는 인식이 있었다. 이전에 그라나다를 선보이긴 했지만 로얄 시리즈의 아성을 뛰어넘지 못했다. 단종까지 5천 대도 팔지 못했다.

로얄 시리즈의 아성을 꺾고 고급차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 현대차는 미쓰비시와 제휴해 그랜저를 공동 개발해 1986년 출시했다. 다만 플랫폼이나 엔진 등 핵심적인 부분은 미쓰비시에서 개발했기 때문에 해외에서는 미쓰비시가 개발한 것으로 인정하고 있다. 미쓰비시는 데보네어라는 이름으로 일본에 시판했다.


그라나다와 달리 그랜저는 출시 직후부터 로얄 시리즈를 밀어내고 고급차 시장을 순식간에 장악했다. 그라나다가 나올 시기에는 로얄 시리즈가 경쟁력이 높았지만 그랜저가 나올 시기에는 로얄 시리즈들이 페이스리프트만 거치는 등 상품성 강화에 소홀했던 탓에 칼을 갈았던 그랜저에 순식간에 밀려버린 것이다.


→ 칼치기를 당했는데 내 잘못이 있다고?

요즘은 운전 잘해도 판사 잘못 만나면 끝입니다

직선 위주의 디자인과 전면에 있는 사각형의 그릴, 헤드램프, 후면의 테일램프는 중후함을 강조시켜 고급차의 주 수요층인 중장년층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초기에는 2.0 엔진과 5단 수동변속기만 장착되었다가 이후 2.4리터로 배기량을 늘리고 4단 자동변속기가 추가되어 경쟁 모델인 로얄 살롱을 완전히 압도했다.


1989년에는 V6 3.0리터 엔진을 내놓아 고급차 시장에 쐐기를 찍었다. 고급차 시장에서 위기를 느낀 대우차가 임페리얼을 내놓았지만 순식간에 묻혔을 정도였다. 고급차답게 당대 최첨단 사양도 많이 적용했는데, 카뷰레터 엔진이 아닌 MPI 엔진, 풀오토 에어컨, 풀 플랫 시트, 4륜 디스크 브레이크, 한층 강화된 서스펜션 등이 있었다. 

가격은 트림별로 1,990만 원에서 2,700만 원에 책정되었는데, 당시 물가를 생각해 보면 상당히 비싼 가격이다. 강남 아파트 한채 가격과 맞먹는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매량은 상당히 많았는데, 단종까지 9만 2,571대가 팔렸다.


6세대 모델이 판매되는 지금도 그랜저는 사람들 사이에서 명차로 인정받고 있으며, 중고 가격도 꽤 높은 편이다. 지금도 그때 추억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나 올드카에 입문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찾고 있다. 현대차는 1세대 그랜저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을 위해 헤리티지 그랜저를 공개했다. 또한 내년에 출시될 7세대 그랜저에서 1세대 그랜저의 각진 모습을 어느 정도 반영한 것이 보인다.

대우자동차 에스페로

시대를 앞서간 디자인

대우자동차에도 상당히 많은 명차들이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많이 기억하는 차량은 대우 에스페로다. 대우차의 첫 고유모델로, 시대를 앞서간 세련된 디자인이 가장 큰 특징이다. 직선 위주의 디자인, 유리가 전체적으로 쭉 이어져 있는 듯한 모습, 유럽 스타일의 테일램프, 그릴이 없는 것처럼 보였던 전면 모습 등 지금도 디자인만큼은 크게 인정받고 있는 모델이다.


1990년 중형차로 처음 출시되었지만 같은 중형차이자 대우가 주력으로 밀고 있었던 프린스와 판매 간섭이 생기는 문제점이 생겼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에스페로를 준중형급으로 차급을 변경했고, 1.5리터 엔진을 주력으로 내세워 현대 엘란트라와 경쟁했다. 그래도 처음에 중형차로 개발했던 탓에 엘란트라보다 크기가 크고 실내가 넓었다는 장점이 있었다.

또한 준중형차로 포지션을 변경했지만 그렇다고 중형차 포지션을 완전히 버린 것도 아니었다. 판매 간섭이 생기는 2.0리터 엔진을 1.8리터 엔진으로 대체해 경제형 중형 세단이라는 점도 내세워 프린스와 차별화해 수요를 끌어들였다.


엘란트라에 이어 후속 모델인 아반떼와도 당당히 경쟁하던 에스페로는 1997년 후속 모델인 누비라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국내에서 단종되었고, 1년간은 해외 수출을 계속하다가 1998년 최종 단종되었다. 단종된 이후에도 훌륭한 디자인 덕분에 부활을 원하던 사람들이 많았지만 대우그룹이 부도나고 쉐보레 브랜드가 도입된 현재는 부활이 어려워 보인다. 그래도 전기차로 나오면 꽤 잘 어울릴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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