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목적

Love yourself! Be yourself!

by 안기옥

또 한바탕 뒤죽박죽 일이 들끓고 부당한 행위들이 정당하게 지시되는 상황이 며칠째 계속되자, 나는 부랴부랴 비행기표를 끊었다. 잠시나마 마음을 추스르고 이 지옥 같은 삶을 이어가야 할 명분이 눈 앞에 현현해야 했다. 2017년 9월 6일, 샌프란시스코, 물론 편도. 멕시코로 들어가기로는 LA나 댈러스를 경유하는 편이 수월하다. 그런데 싱글들이 살기에 최고라는, 그토록 어여쁜 게이 커플이 많다는 환상의 도시를 꼭 한 번 들르고 싶었다. 아수라인 이곳을 탈출해서 떠나는 첫 도착지는 무턱대고 예쁘고, '보기에 좋아야' 한다. 거기서 멕시코 과달라하라로 들어가는 표까지 완납을 하고서야 기쁜 숨을 쉴 수 있었다. 뽕 맞은 기분으로 마감을 쳤다.


"남미에는 왜 가는 거예요?"

어느 날 후배 녀석이 천진난만한 눈빛으로 물었다. 마침 주문했던 골뱅이 비빔국수에 골뱅이가 빠진 채 나와서 당황해하던 차였다. 글쎄, 여행이란 것에 이유가 있나? 그냥 여행 자체가 목적이지 않아? 국숫집 아저씨가 뒤늦게 골뱅이 서너 개를 가지고 와서 넣어주었다. 그냥 비빔국수와 골뱅이 비빔국수의 차이는 고작 몇 마리의 골뱅이가 들어가느냐 마느냐였다. 이제껏 나에게 여행의 목적이란 골뱅이의 유무처럼 단 한 번도 진지하지 않은 문제였다.


처절한 상황에서 기어코 비행기 표를 끊으며 처음으로 깨달았다. 나에게 여행을 도피의 수단이었다는 걸. 끝없는 야근의 나날, 회사의 부속품이 되어 무생물이 되어가는 심장, 감정의 상실, 나이 듦의 서러움의 모든 원인이 바로 여기, '한국에서의 지금'에 있다고 판단했다. 떠나는 것만이 답이었다. 그리고 떠나면 반드시 새로운 답을 찾아왔다.


완전히 새로운 곳으로 무작정 떠날 때마다 매번 어떠한 삶의 방향을 잡아 돌아왔다는 건 매우 신기한 일이다. 애초에 길 떠남에 어떠한 기대감도 갖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비움의 상태에서, 공허한 심상에서는 훨씬 수월하게 있는 그대로의 외부를 받아들일 수 있다. 나 자신에 대해 더욱 진지한 성찰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삶과 세계의 존재에 대해 경건함을 갖게 된다.


'여기의 삶'이 아주 작은 틈, 내가 온전히 나로서 숨을 쉴 수 있는 시간만이라도 허락한다면, 나는 굳이 멀리 떠나는 것으로 삶의 해답을 찾으려 발버둥 치지 않았을 거다. 나는, 그게 너무 슬프다.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끈기가 없다고 한다. 참을성이 없다고 한다. 나는 이런 부당하고 고통스러운, 무엇보다 옥쇠는 지루함을 어떻게 그렇게 수긍하고 잘들 살아가는지 당신들의 마음이 궁금하다. 떠나지 않고, 변하지 않고 어찌 그리들 감내하시나요?


나는 살기 위해 떠난다.

애니로서의 삶은 명령과 복종에 한하는 '지금, 여기'에는 없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California deaming>은 꿈찾기가 아니라 삶찾기, 라고 항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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