닿을 수 없는 우리, 라라랜드

별은 밤에만 빛나죠, 영영이란 네버 에버.

by 안기옥

U에게


12월의 추위는 어쩐지 따뜻합니다. 매서운 찬바람의 기세는 온 세상을 꽁꽁 얼려버릴 듯하지만, 잔뜩 웅크린 품 안으로, 시린 손에 호호 불어 보는 하얀 입김 사이로, 온기가 망울망울 피어나 아린 가슴을 감싸주는 것만 같거든요. 이런 온화한 기분이 드는 것은 아마도 설렘 때문이겠지요. 근사한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크리스마스가 있으니까. 조금은 나아질 거라 기대하는 새해가 다가오니까.


당장 여행이라도 떠나는 사람처럼 한껏 들뜨는 이맘 때면, 음... 나는 어김없이 당신을 생각합니다. 우리가 손을 잡고 별을 헤던 옥상을 떠올립니다. 딱딱하게 굳은 내 심장을 조금씩 매만져주던 당신의 눈빛을 기억합니다. 우리는 매일 밤 우주를 유랑했지요. 별빛의 노래를 타고 추는 춤, 가만가만 귓가를 간질이던 속삭임, 그 밤, 그 밤들을 그려봅니다. 당신의 품 속에서, 별의 나라에서 영원이란 게 가능하다고 믿었어요. 경이로운 감정들이 마구 솟구쳐 그 환희의 순간이 영영 지속될 것만 같았지요.


어수룩 땅거미가 낮게 스며들던 시간, 우리는 총천연색 알전구들이 깜박거리는 걸 즐겁게 바라보았죠. 전구가 깜박하는 순간마다 함께 눈을 깜박거리며. 그날은 크리스마스이브였어요. 나는 어서 빨리 밤이 오길 기다렸어요. 어둠이 깊어져야 비로소 우리의 공간은 더욱 빛날 수 있으니까요. 그때 당신은 조심스레 내 이마에 입맞춤을 하고는 "메리크리스마스"라고 조용히 귓속말을 했죠. 매일 듣던 음성인데도, 그 목소리가 너무 슬퍼서 나는 아무 대꾸를 하지 못했어요. 가슴이 툭 떨어져서 나는 그저 당신의 손을 꼭 쥐었죠. 그 손이 따뜻했던가, 차가웠던가, 혹은 촉촉하게 땀이 배어있던가 기억이 나질 않네요. 바닥으로 내동댕이 쳐진 심장이 다시 꽁꽁 얼어버렸기 때문이죠.


그 날밤 당신은 돌아오지 않았어요. 혹여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언제쯤 문을 두드릴까 나는 밤새 전전긍긍했어요. "떠날게"라는 말에는 어떠한 시간적인 한정도 담겨 있지 않잖아요. 아주 가버린다는 건지, 잠깐 갔다가 온다는 건지, 언젠간 올 수도 있다는 건지... 그래서 기다렸어요. 크리스마스니까 선물을 가지러 잠시 떠났다는 말로 이해하고 싶었어요. 색색가지 전구들이 가끔 '지이징' 하는 전기음을 냈는데, 그때마다 감전이 된 듯 찌릿했어요. 긴장이 온몸의 전율을 타고 터져서 감정의 세포들이 파편처럼 흩어졌죠, 공기 중으로... 밤하늘에 흩뿌려진 별들처럼요. 바보같이 별빛이 희미해질 때쯤에서야 이별을 깨달았습니다.


당신에게 함께 떠자고 했을 때, 당신은 말했죠. "내 안에 이미 온 세계가 다 들어있어. 어디든 갈 필요 없어." 그렇게 슬픈 목소리로 떠난 걸 보면, 애석하게도 당신의 마음에 상정된 세계에 나는 발들이지 못했나 봐요. 결국 나는, 우리는 서로에게 잠시 머물다갈 여행지였던 셈이죠. 당신이 떠난 뒤, 붙박이의 인생을 포기했습니다. 영원이란 건 없다는 건 명백하니까요. 찰나의 마주침, 우연의 부딪침, 세계는 일시적입니다.


그런데 나는 매년 당신을, 우리의 별밤을 추억합니다. 결코 온전히 붙잡을 수 없는 환영 같은 당신을 다시 상기합니다. 존재는 정착할 수 없는데, 기억은 끝없이 돌고 도네요. 꿈으로만 남는 당신은 영원한 나의 라라랜드.


Good luck & Merry Christmas

from ann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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