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하라, 포기하지 마라..., 나나 잘하자
수업 시작 전 학교의 복도는 그야말로 소리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는 하이톤의 목소리, 후다닥 뛰어가며 내는 경쾌한 운동화의 마찰음, 효과음처럼 불쑥 들어오는 깔깔대는 웃음소리, 거기에 낮게 깔린 웅성거림까지. 동시에 스피커에서는 "수업이 곧 시작되니 모두들 교실로 돌아가라"는 방송이 고막이 터질 듯 크게 울렸다. 각기 다른 발화음이 제멋대로 터지고 퍼져서 시끄러운 불협을 이루지만, 어쩐지 이런 사람의 소음이 중학교 복도에 가장 잘 어울리는 BGM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학교와 난장판은 한 끗 차이였다.
진동하는 소리의 파장 한가운데로 걸어면서도, 내 속은 침착하게 가라앉았다. 비장한 각오로 2학년 1반 교실문을 천천히 열었다.
일순, 소음이 꺼졌다. 이방인의 등장이 몰고 온 긴장이 묘한 침잠의 효과를 냈다. 그러나 훅~ 숨을 내쉬는 찰나가 흐르자마자 웅성거림과 혼잡스러움이 슬슬 살아났다. 그래도 자신감을 갖고 또박또박 인사를 했다.
"오늘 진로탐색 시간에 수업을 맡게 된 애니입니다. 여러분을 만나게 돼서 영광이에요. 광고 홍보 기획자로 일하고 있는데, 현업 종사자로서 이 직업의 특징과 매력에 대해 상세히 알려드릴게요."
당당한 커리어우먼처럼 보여야지. 기획자의 위엄을 알려줄 테다! 그러니 너희들은 초롱초롱한 눈빛과 흥나는 성원을 보여주련?... 은 무슨. 내 첫 문장이 다 끝나기도 전에 1/3 이상의 아이들이 책상 위로 엎드려 잠을 자기 시작했다. 그간 부하직원을 호통치던 가닥이 있으므로, 내 목소리에는 조용히 잠들기 어려운 카랑카랑함이 살아있다. 그런데도 아랑곳없이 하나같이 혼곤의 세계를 유영하는 꼴을 보자니, 공기 중에 수면용 스프레이라도 뿌리 것 같았다. 분위기 전환을 위해 그간 제작한 광고 영상을 플레이했지만 소용없었다. 10분이 지나면서 급기야 절반 이상이 잠들어 버렸고, 깨어있는 몇몇은 내 팔뚝의 타투에만 관심을 보였다.
사각형의 공부방에는 아무도 듣지않는 내 목소리만이 외롭게 울려 퍼졌다. 그래도 나는 내 꿈에 대한 이야기까지 꿋꿋하게 발표를 이어갔다. 질의응답 시간도 가졌는데, "돈을 많이 버나요?", "공부를 잘해야 하나요?"와 같은 기운 빠지는 질문만 두어 개 나왔다. 괜히 얄미워서 "하기 나름이에요"라고 에누리 없는 정답을 꼬집어 답해줬다.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에 잠자는 교실의 악동들이 귀신처럼 다시 살아났다. 소란이 갱생했다. 기운찬 생명이 동면을 깨고 나오는 순간이었다. 하아, 외마디 숨을 삭이며, 나는 외려 조용히 짐을 싸서 천천히 학교를 빠져나왔다.
손님처럼 온 외부 강사인데, 너무 무관심한 거 아닌가, 라며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그 시절의 나도 항상 잠에 고파 있었다. 벌써 대입과 취직을 앞당겨 걱정해야 하는 불쌍하고 피곤한 인생들이다. 게다가 세상 수만 가지 직업이 있다지만, 본인이 원하는 꿈을 위해 쭉 밀고 나갈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원하는 바가 있으면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도전하세요"라고 입바른 소리를 하고 나왔는데, 내가 생각해도 하품 나도록 무책임한 발언이었다.
그간 참 다양한 일을 해왔지만, 무엇 하나 백 프로 만족스러운 직업은 없었다. 지금의 광고 홍보 일도 월급 때문에 간신히 이어가고 있을 뿐이다. '직업이란 자본주의 사회에서 먹고사니즘의 욕구를 채워주는 편리한 방편'으로만 파악하는 나는 열정을 키워줄 스승이나 선배의 재목이 아니다. 내 꿈을 이룬 것도, 현재의 직업에 충실한 삶을 사는 것도 아니면서 거짓말을 한 셈이다.
아이들은 강요당한 수업시간에 침묵과 말 없음을 택한다. 현명하다고 판단된다. 닥치고 있어야 할 어른들이 온갖 소음을 만드는 세상에서 주권도 책임도 없는 아이들은 희생의 언어, 침묵의 언어로만 응수할 수 있다. 미안하다. 닭소리 날으는 수업시간이라면, 차라리 잠이 보약이겠다.
선생님이 되지 않길 참 잘했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