핏빛 월요일

아프지마, 죽지마, 부활할거야

by 안기옥

숨을 쉴 수 없었다. 누군가 부푼 풍선 입구에 매듭을 짓듯, 내 목을 꽁꽁 묶어 버린 것 같았다. 위장이, 식도가, 온몸이 꽉 막혔다. 도저히 일어날 기력이 없어, 어떻게든 꾹 참아 보려 했으나 도리 없었다. 천근만근 몸을 일으켜 화장실로 달려갔다. 헛구역질을 몇 번 하고는 곧 한바탕 실컷 게워냈다. 간신히 숨통이 트였으나 이번엔 머리가 깨질 듯 아파왔다. 오른쪽 머리에 누가 대못을 박아대고 있었다. 머리를 쥐어 감싸 쥐고 침대로 달려 들었다. 전기장판 온도조절계를 최고 수치로 올리고 이불속에서 둥글게 몸을 말았다. 고작 화장실을 다녀온 것뿐인데 손발이 얼음처럼 차가워졌다. 곱은 두 발을 꼭 안아쥐었다. 내 발이 안쓰러웠다. 눈을 꼭 감고 성냥팔이 소녀와 늑대인간을 떠올렸는데, 혼몽 중에 몇 번의 토악질을 또 했다. 고통과 어둠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가도 가도 빛이 보이지 않는 적막의 터널이었다. 이윽고, 비몽사몽간에 알람 소리를 들었다.


아아, 월차 쓸까.


그러나 오늘은 월요일, 아침 회의에 빠질 수 없다. 더군다나 오늘은 경쟁 PT가 있는 날이다. 오늘 결근하면 주말까지 반납하고 고생한 우리 팀원들의 노력이 물거품이 된다. 죽으나 사나 출근해야 한다!


간신히 욕실로 들어갔다. 단단하게 굳은 코코넛 오일-나는 로션 대신 이것만 사용한다-부터 따뜻한 물로 녹여야 했다. 유리병을 집어 든 순간, 허약한 손아귀에서 병은 제대로 쥐어지지도 못한 채 바닥으로, 나락으로 곧두박질쳤다.


와장창..., 깨진..., 유리..., 처참하게..., 멈춰버린..., 내..., 정신....


시간이 멈춘 듯했다. 샤워기 흐르는 물소리만 저 먼 심연에서 진동하듯 반복된 멜로디를 흘렸다. 주춤했던 두통이 다시 시작됐다. 이젠 사방에서 못질을 하는 것 같았다. 후우, 크게 한숨을 쉬고 허리를 숙여 유리를 치웠다. 아니나 다를까. 유리조각 하나에 왼쪽 검지 손가락을 벴다. 시뻘건 피가 뚝뚝 떨어졌다. 속살을 드러낸 새하얀 코코넛 오일 위에 선명한 붉은 피가 범벅이 됐다.


좀처럼 피는 멈추지 않았다. 선연(鮮姸)한 붉은색은 공포스러우면서도 야릇한 희열을 느끼게 했다. 비릿한 쇠 냄새가 따뜻한 물에 섞여 하수구로 씻겨 내려갔다. 또 구토가 일었다. 눈물은 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분명 울고 있었다.


그렇게, 이십 분이면 끝낼 샤워를 장장 한 시간에 걸쳐서 한 뒤, 커피를 들이키고, 출근을 했다. 멀쩡하게 회의를 하고 언제나처럼 부하직원들을 닦달하며 나쁜 팀장 역을 성실히 수행했다. 엄숙한 프레젠테이션 시간에 새빨간 핏방울들이 떠올랐다. 잉크처럼 춤추며 번져나가던..., 단단히 밴드를 붙인 왼손의 손가락이 욱신거렸다.


하루하루가 전쟁 같은 나는 아팠던 오늘 새벽이 꿈만 같다. 고통의 감각은 비현실적인 것으로 봉인해야 한다. 그래야 '현실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 빨간색은 꿈과 현실의 경계선이자 경고등이었다. 성냥팔이 소녀가 잠깐 재림했다가 떠나갔을 뿐이다. 오늘 밤은 아무 꿈도 꾸지 않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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