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의 목을 비틀 때가 왔다
나는 초등학교 때까지만 우등생이었다. 반에서 늘 1, 2등을 차지했다. 입학 전, 가난한 우리 엄마가 시켜준 유일한 선행학습이 위인전집 40권을 사준 거였는데, 남루한 집에서 딱히 할 게 없어 열심히 읽었더니 학교 수업은 껌이었다.
6학년 2학기 기말시험은 매우 중요했다. 일등을 한 사람에게는 졸업식날 반 대표로 연단에 나가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영광이 주어졌다. 나는 당당히 일등을 했고, 명예로운 수상을 기대했다. 그런데 시험 결과가 나온 지 일주일 뒤 선생님이 말했다.
"애니가 시험 성적은 일등이지만, 실기평가 점수가 좋지 않아 결과가 바뀌었다. 반장이 대표로 장학금을 받게 됐다."
반장의 성적은 십 등이었다. 실기평가는 고작 20~30% 반영될 뿐이니, 아무리 계산을 해도 납득이 되지 않는 결과였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따져 물었지만 선생님은 설명하지 않았다. 그냥 미안하다고 했다. 뭐가 미안하다는 걸까.
반장은 부잣집 아들이었다. 그 엄마의 치맛바람이 대단해서 학교에서 반장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왜 결과가 뒤바뀌었는지, 나도, 친구들도 다 같은 추측을 했다. 나는 엄마에게 미안했다. 차마 사실대로 털어 놓을 수 없었다. 엄마는 당신의 딸이 대표로 장학금을 받는다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았고, 이미 친척들에게 자랑을 한 터였다. 졸업식 당일, 벌어진 상황에 엄마는 가장 낙담한 표정이었다. 그런데 엄마도 나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이 일화는 내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것, 노력해도 바뀔 수 없는 거대한 힘이 있다는 걸 처음 깨달았다. 중학교에 가면서부터 나는 공부를 하지 않았다. 수업시간 땐 늘 잠을 잤고, 야자시간에는 소설이나 만화책을 읽었다. 고등학생 때에는 내신 성적이 바닥을 쳤고, 몇몇 암기 과목의 주관식은 0점을 받은 적도 있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쓰레기 같은 수업, 내일이면 다 까먹을 역사책, 생물책을 뭐하러 달달 외우나 싶었다. 개미 같은 우리가 새벽까지 죽어라 공부할 때, 누군가는 별 노력 없이 SKY 입학 문턱을 넘는 걸.
최순실 게이트에 분노하는 이유는 내가 이십여 전에 인식했던 세상의 '불공평함'의 확실성에 쐐기를 박기 때문이다. 어린아이의 감수성으로 그 부정부패를 이해할 만큼 우리나라는 후진국이다. 수 년이 흘러도 여전하다. 가장 공명정대하다고 믿어야 할, 그렇게 행동해야 할 정부, 검찰, 대학, 청와대, 대통령이 범죄를 공공연히 조직화하고, 행사했다는 사실에 우린 분노할 수밖에 없다. 그런 만행을 저지르고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국민에게 고개 숙이지 않는 저열한 우등 의식에 나는 분노한다.
최규석의 만화 <지금은 없는 이야기>에는 괴물이 된 거인의 이야기가 나온다. 마을에 사는 거인이 처음엔 마을 사람들과 함께 살며 규칙을 잘 따르다가 점점 욕망과 분노가 커지고 결국 군림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렇게 그는 몬스터가 된다.
지금의 사태를 정확히 짚어주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최순실이 이슈가 되고부터 이 작품의 마지막 장면이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남을 짓밟는 것이 만성이 된 상태에서는 스스로 괴물이라는 자각도 할 수 없다. 수치심을 모르는 무소불위 권력은 고스란히 대물림 되고 "돈도 실력, 능력이 없으면 부모를 원망해"라는 안하무인의 무식한 발언이 자식에게서 이어져 나온다.
최순실은 혼자 괴물이 된 것이 아니다. 최순실은 대한민국 자본과 권력집단의 욕망의 집대성이다. 더 편하게 더 많은 이권을 차지하려는 재벌들이 조공을 바치고, 더 높이 더 굳건히 명예를 얻고자 하는 세력이 그의 발밑을 기었다. 그렇게 하나로, 더 공고해지는 헤게모니 세력들은 일심동체가 되어 한 목소리로 '국민은 개 돼지'라고 표현한다.
나는 인생의 후배들이 나와 같은 냉소와 비관으로 가득 찬 사람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 이생망을 굳건히 믿고 변화의 불가능성에 대해 확신하지 않길 바란다. 엄마가 자식에게, 자식이 엄마가 가난이라는 이유로 미안해하면 안 되는 거다. 인간 존엄성과 주권을 가진 우리는 이것을 대통령에게 요구할 권리가 있다.
박근혜는 하야해야 한다.
최순실은 처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