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영화 보는 것을 정말 좋아한다. 대학생 시절 영화감상 동아리를 3년간 하고 영화 수업을 들으면 즐거운 시간을 보냈었고, 그 이후에도 꾸준히 여가시간을 영화 보는 것에 투자해 왔다. 주요 감독별로 영화를 정리하며 봐온 시네필이지만 취향이 그리 까다롭지 않아서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느린 지그개그의 미학부터 최동훈의 착착 붙는 영화까지 모두 좋아한다. (그래도 키아로스타미 영화를 더 좋아하기는 한다.) 영화는 스토리, 화면 구성, 음악이 어우러지는 종합예술이지만, 결국 오랜 시간 우리 인생에 남는 것은 전개되는 이야기 속에서의 하나의 장면이 아닐까 한다. 인상 깊게 봤었던 장면들을 소개한다.
1. 데이비드 린치 [스트레이트 스토리]
데이비드 린치 하면 [멀홀랜드 드라이브]와 [이레이저 헤드]로 대표되는 이해할 수 없는 괴작?을 찍는 감독으로 유명하지만 이 추상의 귀재도 담담하게 그려내고 싶었던 인생의 정수가 있나 보다. 그 작품은 [스트레이트 스토리]이다. 이 영화는 엘빈 스트레이트라는 자기만의 삶을 살고 있던 할아버지가 어느 날 형이 건강이 좋지 않다는 소리를 듣고 만나로 가기 위해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엘빈 본인도 걷는 것이 어려울 정도로 연로한 지라 유일하게 사용할 수 있는 교통수단인 잔디 깍이 트랙터를 타고 여행을 떠난다. 이 여행도중 엘빈은 모여서 지내고 있는 젊은 한량 무리들을 만나게 되는데 이때의 장면이 백미이다. 엘빈이 말한다 “젊었을 땐 나이 먹게 될 걸 생각 안 하지 생각할 필요도 없겠지만, 하지만 나이를 먹으니 정말 중요한 게 뭔지 알게 돼, 부질없는 것에 얽매이지 않게 되지”. 이 이야기를 들은 젊은이가 되묻는다 “그러면 영감님은 가장 괴로운 일이 어떤 것이었는데요?”. 엘빈이 답한다 “젊은 시절이 떠오르는 거라네”. 이 장면을 볼 때 미국 코미디언 엘런 드제너러스가 한 농담이 떠올랐다. “우리는 모두 가장 중요한 게 먼지 알고 있습니다. 바로 젊음이죠. 하지만 젊음은 다시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사랑이나 우정 같은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카르페디엠 현재를 즐기자 청춘들아.
스트레이트 스토리의 한 장면
2. 알렉산더 페인 [바튼 아카데미]
알렉산더 페인 영화는 거의 다 좋아한다. [디센던트]도 재미있고 [다운사이징]도 어느 정도는 봐줄만한다. [네브레스카]와 [사이드웨이]는 두 말이 필요 없는 걸작이다. 이 감독의 신작 [바튼 아카데미] (영어로는 the holdovers)가 나온다고 했을 때, 기대를 많이 하며 기다리다가 개봉당일 바로 봤다. 내 결론은 또 하나의 엄청난 작품이 나왔다는 것이다. 알렉산더 페인 감독의 세 걸작의 공통점은 꼬여버린 인생 속에서 웃음과 감동이다. 그 씁쓸하고 자조적인 페이소스를 영화로 담아내고 표현하는 데에는 이만한 감독이 없다. 영화 [바튼 아카데미]는 미국에서 크리스마스-새해 첫 주에 있는 겨울방학 동안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을 보러 가지 못하고 학교에 남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괜한 심술을 부리면서 학생들을 대하고 동료들과 사이가 좋지 못한 선생님, 똑똑하지만 성격이 까탈스러워 친구가 없는 학생, 힘들게 키워낸 엘리트 아들이 전쟁에 나가 죽게 된 주방 이모님?. 이 세 명은 모두가 사랑하는 사람을 보고 싶어 고대하는 휴가 기간 딱히 만날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같이 시간을 보내게 된다.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면서 세 명은 서로가 공유할 수 있는 아픔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며 (영화의 백미 중 하나는 호텔방에서 같은 항우울제를 먹는 학생과 선생님의 모습이다) 점점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 선생님이 학생의 미래를 위해 자신이 희생하며 교직을 떠나게 된다. 그때 이 둘의 대사가 압권이다. “You can do this”, “I was gonna tell you the same thing”. 마지막으로 보는 순간 서로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조차 같았던 상처받은 사람들.
3. 피식 대학 신도시아재들-대출 편 최근 가장 웃긴 개그맨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이 두 명 있다. 정재형 씨와 곽범 씨이다. 정재형 씨의 천재성이 완벽하게 발휘된 장면이라고 해야 할까. 신도시 아재들에서 극 중 퐁퐁남을 대표하는 캐릭터로 그려지는 정재형 씨와 그 아내에게 아내의 오빠 부부가 급전을 빌리러 온다. 이야기는 정재형 씨의 아내와 아내의 오빠 부부 사이의 기싸움으로 그려진다. 그 이야기에서 빠져있던 정재형 씨에게 왜 아무 말이 없냐고 하자 나온 대사. “제 지갑은 제 지갑이 아니에요 이 집은 제 명의지만 저는 홈리스예요 전 빚쟁이가 아니지만 이자를 내요 전 비종교인이지만 항상 기도를 해요 전 아빠지만 아버지가 아니에요 전 남편이지만 남편이 아니에요 전 인간이지만 인간이 아니에요 이건 눈물이지만 눈물이 아니에요” 유튜브를 보며 이렇게 웃어본 적이 없다. 꼭 한번 보시길. P.S. 곽범 씨가 하는 유튜브에 ‘함바집 삼각관계’도 정말 웃기다.
지금 떠오르는 인상 깊은 장면들이 정말 많다. 나중에 또 정리해서 올리겠다. 이해를 돕기 위해 사진을 첨부했는데 혹시 문제가 된다면 바로 내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