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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 모시는 시어머니

by 은연중애

시어머니가 당일치기 여행을 다녀오셨다. 충청도에 다녀오셨다. 계단 500개 오르셨단다. ‘힘들어 죽겠다, 죽겠다’ 하시며 거실에 짐을 푸신다. 홍삼 젤리 세 봉투, 깻잎 장아찌, 그리고 먹다 남은 옥수수 반 토막...... 홍삼 젤리 세 봉투는 어머니 것 한 개, 우리 것, 그리고 길 건너에서 사는 시동생네 것. 그렇게 세 봉투다. 깻잎 장아찌는 만 원어치를 사셨다는 데 제법 많다. 시골장이어서 그런가 보다.


당신 드시다 남은 옥수수 반 토막. 그것은 내게 먹으라고 주신다. 어머니께 나도 모르게 큰 소리가 나왔다. “아이고, 나는 이제는 이런 거 안 먹어요. 먹다 남은 거 말고 새 걸로 주세요, 새것.” 나의 말대꾸에 어머니의 서운함이 순간 눈에서 레이저가 되어 뿜어져 나왔다. 고분고분 감사히 받지 못하고 대드는 며느리가 당신을 뒷방 늙은이 취급한다고 느끼셨나 보다.

먹다 남은 옥수수 반 개. 당신은 이가 안 좋아서 다 못 드셨지만 버리기에는 너무 귀한 것이었나 보다. 비록 당신은 못 드시지만 ‘며느리 너라도’ 먹으라고 아까운 것 버리지 않고 충청도에서 서울까지 고이 간직하고 가져오신 것이다. 그렇다. 이것이 연세 구십이 되신 노인네의 며느리 아끼시는 방식이다.


그런 시어머니에게 큰 소리로 대거리한 나는 속 좁은 며느리인가? 아마도 그럴지 모르겠다. 어머니는 이렇게 버리기에는 아깝고 당신은 더 이상 필요치 않은 것을 지난 30년 세월 동안 내게 넘기시곤 하셨다. 먹다 남은 사과 반쪽, 남은 떡, 쓰시다 남은 립스틱...... 지난 세월 동안에는 싫건 좋건 구구로 아무 말 없이 받았다. 그런데 그 세월이 지나면서 점점 싫어졌다. 모욕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어머니에게 정말 감사하며 살아왔다. 이 연세에도 단체 여행을 다녀오실 정도로 건강이 있으시고, 정신력이 있으신 것은 정말 감사하다. 너무 감사하다. 어머니 덕분에 젊은 시절 내가 직장 생활 잘할 수 있었다. 이 감사의 마음이 있었기에 지난 세월을 버텨온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큰아들이 결혼해서 이제는 나도 시어머니가 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나의 딜레마가 있다. 나의 시집살이는 현재 진행형인데 말이다. 나는 시어머니의 권리는 못 누리고 며느리의 의무만 다하는 낀 세대가 되었다. 젊은 노인이 늙은 노인을 모시는 ‘老老 케어시대’의 주인공이 되어버린 것이다. 아마 이에 대한 피해 의식이 더 이상 ‘네네’ 하고 넘기지 못하고 굳이 시어머니께 대거리해서 속 좁은 며느리가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머니를 모시지 않고 피할 수 있으면 피하겠다. 그러나 나의 상황이 그렇지 못하다. 때로는 나이 드신 시어머니를 이제는 어린 딸처럼 생각하고 살아야겠다며 나의 마음을 달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마음도 오래가지는 않는다.


그래서 마음먹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生은 계속되고 있으므로 내 나름대로 기쁘게 사는 방안을 도모해야겠다고. 이 매거진을 쓰기로 마음먹은 것은 시어머니를 모시는 시어머니가 된 나의 당황스러운 처지이지만 이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숨어있는 기쁨이 있다고 믿고, 이것을 찾아내야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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