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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의 요구르트

by 은연중애

시어머니로부터 고급 요구르트 W를 벌었다. “벌었다”는 말은 우리가 일을 해서 돈을 “벌었다”라고 말할 때와 같은 의미이다.


올해 우리 나이로 구십 일세가 되시는 시어머니는 젊었을 때는 기개가 호랑이 같으신 분이셨다. 그러나 연세가 드신 지금은 돈이 있어도 쓰지 못하시는 분이 되셨다. 그런 당신이 직접 구독하시는 것이 이 비싼 요구르트다. 그리고 지금까지 아무 대가 없이, 한 일도 없이, 그저 어머니에게서 한 개 ‘받은’ 사람은 오직 한 사람, 당신 손자다. 다른 말로 하자면 나의 아들이다. 당신의 친아들도 아직 이 요구르트를 그저 받지는 못했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 이 요구르트를 벌었는가? 전날 어머니의 핸드폰이 고장 나는 대사건이 있었다. 복지관에서 벌어진 사건이었는데 어머니는 이것이 왜 고장이 났는지에 대해서는 함구하셨다.


나는 고장 난 핸드폰을 가지고 대리점에 갔으나 대리점에서는 고칠 수 없고 서비스 센터에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미 날이 어둑어둑해진 시간이라 발걸음을 돌려서, 다음 날 아침 어머니가 아직 주무실 때 ‘오픈런’하여 고쳐왔다. (나는 매사에 지각하는 타입인데 이 일만큼은 문 열리기 전에 도착해서 기다렸다가 고쳐왔으니 참 기록적인 일이다).


당신이 잠에서 깨셨을 때는 이미 모든 상황은 종료가 되었고, 어머니는 다시 잘 작동되는 핸드폰을 받으셨다. 이에 대한 대가로 주신 요구르트니 내가 “벌었다”라고 말해도 과언은 아닌 셈이다.


아쉽기는 하다. 앞서 말했듯이 크게 돈 쓸 일이 없으신 분이시다. 그리고 효자 아들딸들을 둔 덕분에 현금이 넉넉하신 분이다. 이럴 때 수리 비용이 얼마였는지 물어도 보시고 “아침 일찍 다녀오느라 수고했다. 내가 실수해서 그렇게 되었으니 수리 비용은 내가 주마”라고 말씀하신다면 얼마나 쿨하신 시어머니겠는가.


그러나 비용은 묻지도 않으시고, ‘미안하다’도 아니고 ‘고맙다’도 아니고, 천연덕스럽게 요구르트 하나 내미시는 것이 썩 기쁘지는 않다. 물론 당신에게는 최대의 호의이긴 하시겠지만, ‘나이가 들면 이렇게 마음의 크기가 쪼그라드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생각을 고쳐서 그분 인생 전체를 보기로 마음먹고 다시 본다. 그러면 그분의 인생에는 현재의 ‘무기력한 노년’만 있는 것이 아니라 ‘위대한 과거’도 있다. 40대 젊으신 나이에 혼자되셔서 자식 다섯을 키워 내신 분이다. 혼자 사는 여인에게 올 수 있는 온갖 유혹과 수모를 다 물리치시고, 험한 육체노동을 하시며 자식에게 헌신하셨다.


그 결과, 자식들은 모두 건전한 시민으로 잘살고 있을 뿐 아니라 그중에는 고위 공무원까지 나왔다. 훈장을 받으셔도 될 만한 인생을 사신 분이다. 게다가 이 연세에 비록 ‘워커’에 의지하시긴 하지만, 20분을 걸어서 복지관에 가실 수 있는 분은 많지 않을 것이다. 날마다 빠짐없이 복지관에 다니시는 강인함을 보면 참 존경스럽다.


나도 얼마 전에 회갑 잔치를 치렀으니 이제 어머니처럼 노년의 삶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어머니와 같은 강인함은 내게 없다. 그만한 강인함이 없다는 뜻은 그만큼 힘든 인생을 살지 않았다는 의미도 될 것이다.


어머니처럼 자식에게만 오로지 헌신하고 살아온 인생도 아니다. 우리 세대는 자식만이 인생의 유일한 ‘트로피’가 되기에는 너무 많은 것을 보았고, 누렸다. 어머니 때처럼 일제 강점기, 육이오 전쟁을 거치며 끼니를 걱정했던 험난한 세월을 보낸 것은 아닌 것이다.


베이비붐 세대인 우리는 경쟁이 심해서 상대적 빈곤은 느꼈으나 절대 빈곤은 겪지 않았다. 더구나 도시에서 자란 나는 학원도 다닐 수 있었고, 학창 시절 '월말고사' 걱정이 가장 큰 걱정이었으니, 학교 다니는 것이 부유층의 특권이었던 어머니 세대와는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그러니 그 어려웠던 삶의 과정에서 굳어진 이런저런 누추한 습관들에 대해서 내가 감히 험담을 할 수 있는 자격은 사실 없다.


나도 날마다 늙어가지 않는가! 그러니 늙은이를 보고 어찌 이런 말 저런 말할 수 있겠는가! 앞으로 나의 모습일 수도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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