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날. 어머니와 함께 길을 나섰다. 나는 걷고 어머니는 워크를 끌고. 투표장은 멀지 않다. 그런데 5분쯤 걸었나? 앞서 걷던 내가 미처 깨닫지도 못한 상태에서 어머니가 갑자기 워크를 끌고 쓰윽 무단 횡단을 하셨다. 횡단보도를 조금 남겨놓고. 놀라서 나도 어머니를 따라 건넜다. 한 손은 어머니 쪽으로 내밀어 보호하면서 눈은 차가 뒤에서 안 오는지 뒤로 향한 채. 당황스럽기 짝이 없었다. 길을 다 건너고나자 비로소 안심이 되면서 어머니에게 큰 소리가 나왔다. “이러니 젊은 사람들이 노인들 싫어한다고요! 늙었다는 게 자랑도 아닌데 왜 규칙을 안 지키느냐고요! 아니, 규칙을 잘 지켜야지 젊은 사람한테 대접받지!”
내가 그렇게 버럭 화를 낸 것은 며칠 전에 동서가 나에게 이야기한 것이 스쳐 지나가면서였다. 우리 집 바로 길 건너에 시동생 가족이 살고 있다. 일요일에는 동서가 시어머니를 모시고 성당에 다닌 지 꽤 오래되었다. 그런데 최근부터는 무슨 일인지 어머니가 같이 잘 안 다니신다. 그런데 알고 보니 작은 사건이 있었다. 성당 미사 중에 어머니 핸드폰이 크게 울린 것이다. 화들짝 놀란 동서가 어머니 핸드폰을 얼른 껐다. 사건은 미사 뒤에 일어났다.
미사가 끝난 뒤에 동서가 깜박 잊어버리고 핸드폰을 다시 안 켜드려서 어머니가 전화를 못 받은 것이다. 아들이나 딸에게서 전화받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어머니는 동서에게 불같이 화를 내셨다. 그다음부터는 어머니가 미사 중에도 핸드폰 소리를 낮추지 못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서 함께 다니던 사춘기에 접어든 손자는 할머니 하고는 성당 안 가겠다고 했단다. 어린 손자 입장에서는 사람들 많은 곳에서 조용한 가운데 할머니 핸드폰 소리가 크게 울리는 것이 당황스러웠나 보다. 충분히 그럴만한다.
이 이야기와 지금의 사건이 겹쳐지면서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러 버렸다. 이제 구십이 넘으신 어머니는 풀이 죽어 아무 대꾸도 안 하신다. 야단맞은 어린아이 같으시다. 젊으실 때 매사에 나에게 호통치시던 그 서슬 푸른 시어머니의 모습은 간 데 없다.
분위기가 싸아한 상태에서 투표소에 도착했고, 어머니는 투표소 입구소에 도착하자마자 의자에 앉아 땀부터 닦으셨다. 걸어오시는 것이 힘드셨던 거다. 그 모습을 보니 그제야 보이는 것이 있었다. 짧은 거리라도 걷는 것이 힘든 어머니는 조금이라도 덜 걸으시려고 횡단보도에 도착하기도 전에 먼저 길을 건너신 거다.
순간 내가 부끄러워졌다. 시어머니와 같이 산지 30년이 넘어도 그분의 어려움은 보지 못 한 것이다. 물론 규칙은 당연히 지켜야지. 그리고 규칙을 안 지켰을 때 이야기를 해서 고치는 것이 필요하다. 사람 많은 데서 핸드폰 소리를 크게 해서는 안 되고 무단 횡단도 하면 안 된다. 그러나 잘 안 들리고, 잘 못 걷는 그분의 사정도 함께 봤더라면 내 마음이 그렇게 분노가 끓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어머니에게 말하는 나의 태도도 좀 더 부드럽고, 친절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자세히 봐야 예쁘고, 오래 봐야 사랑스럽다고 말한 어느 시인의 말처럼 자세히 보고, 오래 볼 수 있는 눈이 함께 사는 가족끼리는 필요한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