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다니던 시절이었다. 함께 일하던 사이는 아니었지만 10년 이상 같은 사무실을 공유했던 동료가 뱉었던 한마디가 20년이 지난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그녀가 한 말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나는 자기만 아는 이기주의자다. 자기 일만 신경 쓰지 말고 남 일에도 관심 좀 가지라’라는 것이었다. 너무 당황해서 아무 대꾸도 못했다.
그녀의 말이 오랫동안 내 마음에 남았다. 내가 그렇게 남에게 무관심한 존재였나? 내가 그렇게 이기적인 존재였나? 아마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나와 관련된 일이 아니면 관심을 안 가지고 내 일만 열심히 하는 타입의 사람이었으니까. 가끔 그녀의 말이 마음속에 떠오르곤 했다. 한 공간을 오랫동안 공유한 사람이 그렇게 봤다면 아주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러면 나는 왜 그랬나? 내 마음을 한번 들여다보았다. 어린 시절, 나는 오빠가 세 명이 있었다. 그런데 참 안타깝게도 그중 두 오빠들은 학교 졸업하고 취직을 하는데 굉장히 어려움을 겪었다. 오직 자식들의 학업에만 온 인생을 바쳐온 부모님의 고민과 한탄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어린 내 마음에도 부모님의 그 괴로움이 무의식 속에 깊이 새겨진 것 같다.
아마 그때부터인 것 같다. ‘남에게 대단한 도움은 못 되더라도 적어도 폐는 끼치지 말자. 내 앞가림은 내가 하자’가 인생 목표처럼 되어왔다. 다시 말하면, 나는 내 인생 챙기기에도 버거운 사람이며, 남까지 챙길 만한 능력은 없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이것이 다른 사람들 보기에는 이기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나는 능력도 안 되면서, 선의의 오지랖을 부리는 것은 더욱 싫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집에서도 그렇게 자애로운 엄마는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다. 직장 퇴근해서 집에 가면 또 다른 직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끝없는 집안일이 그것이다. 마치 재미있게 놀다가 집에 돌아온 사람처럼 아파트 문을 열자마자 허겁지겁 옷을 갈아입고, 집안일을 하다 보면 어느새 시간은 밤 아홉 시, 열 시다.
고단한 몸을 누일라치면 아이들이 또 이것저것 심부름을 시킨다. 본인들이 해도 될 것을. 어쩌면 지금 생각해 보면 아이들의 애정 표현이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날이 새면 또 출근해야 하는 나는 이렇게 대꾸하곤 했다. “얘들아, 너희들 엄마 (부엌살림) 퇴근했다!!!!” 그리고 아이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 지금은 다 자라 결혼도 했고, 자식도 있는 아들은 그때 일을 들춰내며 나를 타박하곤 한다. 아마 섭섭했나 보다.
나는 요즘 남들이 보기에 이기적인 행동을 하나 더 하기 시작했다. 먹거리와 관련된 것이다. 주부로서 나는 가족의 먹거리를 챙기는 책임이 있다. 그러다 보니 가족이 좋아하는 것은 나도 모르게 먹기를 삼가는 버릇이 생겼다. 저절로 안 먹고 싶어진다. 남편이 좋아하는 과일, 시어머니가 좋아하시는 치킨 등. 그리고 가족이 먹다가 남긴 것은 내가 먹는다. 내가 만든 음식에 대한 책임과 사랑이라는 생각으로.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서서히 부아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아무도 내가 가족을 위해서 챙긴다는 것을 알아주지도 않고 설령 안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다. 본인이 맛있으면 먹고, 맛없으면 안 먹는다. 그들의 혀는 정직하다. 그래서 나도 결단했다. 가족들이 좋아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나도 먹기로. 아니 내가 먼저 먹기로.
저녁 식사 준비를 하면 맛있는 반찬은 빨리 없어진다. 소고기 볶음이나, 부추전 등 인기 아이템이 있다. 접시를 내놓기가 바쁘다. 보통의 경우 밥을 차려 내고, 뒷정리를 하고, 나는 맨 마지막에 먹게 된다. 그런데 그때 맛있는 것은 다 사라지고 없으면 마음이 뿌듯하면서도 섭섭하다.
그래서 이제는 내가 먹을 것은 별도로 떼어 놓는다. 또한 과일의 경우도 딸기 같은 가족 인기 아이템이 있다. 어머니께 제일 좋은 것을 가져다 드린다. 그러면 어머니는 물으신다. “아바이는 (나의 남편) 먹었냐?” 과일을 가져다 드리는 며느리는 먹었냐고 묻지 않으신다. 이에 대해 아무리 불만을 표현해도 소용이 없다. 그래서 요즘은 씻으면서 내가 먼저 먹어 버린다.
나의 이런 행동에 누군가 주부답지 못함을 야단칠 수도 있겠다. 주부는 헌신과 희생의 아이콘인데 말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나는 말하고 싶다. “비행기 타 보시오. 안내 멘트가 나오지 않소. 위기 상황에서 구명조끼는 당신이 먼저 입고 그다음에 아이에게 구명조끼를 입히라고 하지 않소?”라고. 물론 아무도 나에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늘 나를 호시탐탐 점검하는 나의 양심에게 나 스스로 하는 변론이다.
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성도 한다. 세월이 가면서 좀 더 성숙해지기를. 내가 손해 좀 보고 살아도, 소위 ‘호구’가 되어도 ‘허허’하고 웃을 수 있기를. 보이지 않는 선을 이제 좀 걷고, 그들에게 기꺼이 나를 내어 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