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를 시작한 이후로 자주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지금은 작고하신 서강대 영문과 장영희 교수다. 아주 오래전, 약 40년 전, 대학생 시절이던 때다. 그분이 코리아 타임스 신문에 기고한 영문 에세이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소아마비를 앓고 계시는 분이었다. 유학 시절에 휠체어를 타고 백화점에서 쇼핑하다가 옷을 몸에 대어보며 직원에게 물었다고 한다. “Am I sexy?” 그러자 직원은 흔쾌히 , Yes!라고 대답했단다. 그런데 똑같은 질문을 한국의 백화점에서 했더니 직원이 깜짝 놀라며 황당하다는 듯이 쳐다보더란다. 그 직원의 눈에는 오직 '휠체어 탄 장애인'만 보였을 뿐 그 사람이 젊은 여성이라는 것은 보이지 않은 것이다
지금은 “sexy”라는 말을 우리나라에서 어린아이들도 쓸 정도이지만 그 당시 시대적 상황으로서는 너무나 도발적인 단어여서 읽던 나도 깜짝 놀랐다. 게다가 그 시절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은 지금과는 너무나 다르지 않은가. 나는 이 글을 읽고 그녀의 그 솔직, 순수, 발랄한 매력에 푹 빠졌었다. 그 이후로 그분이 쓴 책을 많이 사 봤었다. 글도 잘 쓰셨지만, 신체적 장애라는 현실의 벽에 갇히지 않고 자신의 길을 잘 개척해 나간 분이기에 더욱 마음이 가고 그분처럼 글을 써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나를 돌아본다. 나 또한 힘쓰고 애쓰며 나의 인생을 개척해 왔다. 아이 낳고 직장 생활하며 열심히 살았다. 자존심 때문에 유부녀 티 안 내고 직장 생활하려고 애쓴 삶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나 지금이나 나는 여전히 돈에 매이고, 매일의 식사 메뉴에 매이고, 자식과의 끊으래야 끊을 수 없는 애증의 끈에 묶이고, 시어머니와 함께 사는 까닭에 전통적인 며느리의 역할로 전전긍긍하는 삶을 살고 있다. 이러한 현실 앞에서 내가 참 누추하게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
내가 글을 쓰고 싶은 지점이 여기에 있는 것 같다. 내 누추한 삶에서 빠져나오고 싶은 욕구가 나를 자꾸 글을 쓰도록 밀어 올린다. 마치 진흙 구덩이에서 연꽃이 피어나는 것처럼 말이다.
내 삶이 누추하고, 질척거린다 싶을 때 나는 집을 나와 근처 미술관이나 도서관으로 향한다. 나의 현실에서 조금 떨.어.져. 조.용.히. 바.라. 본다. 그러면 누추하게만 보이던 현실 안에 산만하게 흩어져있긴 하지만 알알이 박혀서 빛나는 작은 아름다움, 작은 행복들이 보일 때가 있다. 그것들을 아름답게 글로 나타내고 싶다.
그래서 아마 브런치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나 보다. 그런데 브런치에 글을 올리고 보니 내가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맞닥뜨려 당황스럽기도 하다.
독자들이 나의 글을 읽고 “라이킷”을 몇 명이나 해 주느냐에 따라 내 기분이 좋아졌다가 나빠졌다가 한다. 라이킷 메시지가 뜨면 나는 마치 칭찬받는 어린아이 같이 기쁘다. 이 나이에도 어쩌지 못하고 불쑥불쑥 올라오는 이 인정욕구라니! 당황스럽지만 현실이다. 때로는 글을 쓰면서도 독자들이 좋아할지 어떨지 신경이 쓰이고 독자들이 좋아할 것 같은 글 위주로 쓰고 싶은 마음이 올라온다. 나는 독자들이 라이킷 해주면 “감사합니다!” 하고 일면식도 없는 독자들에게 소리 내어 인사하기도 한다.
독자들과 이렇게 보이지 않는 선으로 마음이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이 선에 연결은 되더라도 매이지는 않기를. 이 선에 내가 이리저리 휘둘리지는 않아야겠다고 마음으로 다짐하기도 한다.
나는 나이 들어가고 있다. 늙어가고 있다. 세월은 금방 간다. 나도 우리 시어머니처럼 잘 안 들리고, 안 보이는 때가 올 것이다. 그때 나는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뭐 하고 살았니?” 혹은 나의 손녀 손자가 물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할머니는 어떤 삶을 사셨어요?”
그때 지금 쓰고 있는 이 글들이 그 물음에 답하기 바란다. 육체는 낡아가더라도 나의 마음은 내가 쓰는 글들 속에서 반짝반짝 빛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