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우리 집은 꽤 큰 일본식 집이었다. 그래서 열 명이 넘는 대식구였지만 크게 안 부딪치고 살 수 있을 있던 것 같았다.
어른들의 눈에 안 띄게 숨을 곳이 많았다. 방마다 다락이 하나씩 있었다. 이불이나 잡동사니들이 들어있던 거기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고, 깜깜했고, 아늑했다. 혼자 누워서 동화 속의 상상에 빠지기 좋았다.
집 밖에 창고도 두 개 있었다. 연탄을 보관하는 넓은 창고, 그리고 제사가 많았던 우리 집에 제사 음식을 두는 “고방”이라 불리던 창고다. 연탄 창고의 하늘색 페인트 나무문을 열고 들어가면 깜깜하고 널찍한 공간이 있었다. 창고는 숨기 놀이하기에 좋은 장소였다.
옥상 계단을 통해 올라가면 지붕 위에도 쉽게 올라갈 수 있었다. 지붕 위에 앉으면 하늘도 잘 보이고 옆집 마당도 잘 보였다. 옆집 마당은 그 시절에 어울리지 않게 잔디밭에 그네도 있었다.
집 측면에는 사용하지 않는 굴뚝이 하나 솟아 있었는데, 굴뚝 아래쪽 뒤에는 어린아이 하나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어린 시절에도 울 일은 있었고, 그곳에서 훌쩍훌쩍 울곤 했던 어린 시절의 내가 생각난다.
또한 장독대에는 사람 하나는 너끈히 들어갈 수 있는 큰 장독부터 시작하여 크고 작은 여러 장독들이 있어서 그 사이에 숨기에 좋은 공간들이 있었다.
그런 공간들 덕분인지 어머니가 몸이 약하셨던 까닭에 나를 살갑게 돌봐 주셨다는 기억은 별로 안 나고, 형제들도 나이 차이 많은 어린 동생에게 크게 호의적이지도 않았던 것 같은데, 나의 어린 시절은 외로웠다는 느낌은 별로 없고 혼자서 온갖 상상 놀이를 하며 재미있게 지냈던 것으로 추억된다.
그 시절에는 아파트라는 것이 거의 없었다. 가난하든, 부자든 상관없이 방문을 열고 나가면 바로 비도 맞을 수 있었고, 눈도 맞을 수 있었고, 밤에는 달도 볼 수 있는 마당이 있었다. 계절이 지나가는 것을 바람에 실려 오는 공기 냄새로 알 수 있었다. 혼자서 즐길 곳이 집안 어디에 하나씩은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숨을 곳이 없다. 한눈에 모두 다 보인다. 누가 어디에 있는지 다 알 수 있다. 안 듣고 싶은 소리도 다 들린다. 물론 세상의 비바람으로부터, 위험한 세상에서 안전하게 보호되는 곳이 있다는 것은 안심이 되는 일이다. 문만 닫으면 눈이 오든 비가 오든 상관이 없다.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올 집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이고, 그 집에 함께 할 가족이 있다는 것은 말할 수 없는 안정감을 준다. 그렇지만 때로는, 특히 주부에게는 집이 고달픈 직장이기도 하다. 일상의 루틴이 적용되는 곳이 집이고, 그 일상의 루틴이 루틴이 될 수 있게끔 하는 가장 중심부에 주부가 있다. 가끔은 혼자만 있을 곳, 아무도 나를 찾지 못할 은신처 같은 곳에서 쉬고 싶은 갈망이 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퇴근하고 집에 곧바로 못 들어가고, 아파트 문고리를 잡고 한참을 망설였던 기억이 난다. 문을 열면 어떤 난장판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충분히 예상이 되었다. 물론 사랑하는 가족이지만 회사에서 시달리고 다시 집 문을 여는 것은 주부에게는 또 다른 출근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때는 출퇴근 지하철과 회사 화장실이 유일하게 혼자 있을 수 있는 위안의 장소였던 것 같다.
문제는 세월이 흐른 지금도 그런 혼자 있을 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결혼한 지 30년이 지난 나에게는 친정은 더 이상 어린 시절의 그 편한 곳은 아니다. 이럴 때 여행을 가면 되지 않는가? 하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여행은 마음 맞는 사람과 같이 가지 않으면 고문이다. 그렇다고 혼자 여행을 떠나기에는 여성에게는 이 세상이 그렇게 녹록하지 않다. 아무래도 안전이 담보되지 않는다. 친구집은 어떤가? 친구집을 갈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러나 친구 집은 잠시 방문은 할 수 있어도 아무래도 며칠을 머물기는 껄끄럽다.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집에 편안히 머물지도 못하는 나는 답답한 일상의 덫에 걸린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나이 60이 넘어도 아무 조건 없이 나를 반겨주고, 친정어머니처럼 밥 해놓고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곳에서 며칠 쉬었다 오고 싶다. 그러나 나의 친정어머니는 90 중반을 넘으셔서 감히 기대할 수 없고 시어머니, 남편, 아들, 며느리..... 가족은 많은데 아무 말 없이 기쁘게 나에게 맛있는 밥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떠오르지 않는다. 그 사람들은 내가 다 챙겨야 할 가족이지 않은가.
숲 속의 오두막과 같은 은신처가 필요하다. 나를 사랑하는 진심 어린 미소가 있는 그곳에서 며칠 밥 얻어먹고 있다가(그 밥은 이유는 모르겠지만 반드시 한식이어야 한다) 힘을 차려서 다시 세상으로 돌아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