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에 서울에 올라왔다. 벌써 서울에 올라온 지 40년이 다 되어간다. 그러나 서울을 다 알지 못한다. 아니 아는 곳 보다 모르는 곳이 더 많다. 이 점이 나에게는 지금까지 서울의 매력이었다. 어떤 사람의 성격을 다 안다면 그때부터는 관심이 떨어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파도 파도 모르는 곳이 있는 곳이 서울의 매력인 것 같다.
또 하나의 서울의 매력은 활력이 넘치는 곳이란 점이다. 서울이 고향이 아닌 사람이 서울 토박이보다 더 비율이 높다는 것을 기사에서 본 적이 있다. 그만큼 꿈을 안고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이 많은 곳이 서울인 만큼 항상 활력과 열정이 넘치는 것 같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열정의 도시 서울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조금씩 부담스러워지고 있다. 나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열정보다는 고요와 평안을 찾는 사람으로 변해가고 있음을 느낀다. 그런데 서울은 여전히 바쁘고, 경쟁하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도시이다.
이들 사이에 살면 나도 모르게 영향을 받아 열심히 살아야 할 것 같은 무언의 압박감을 느낀다. 이제 사회생활에서 은퇴해서 여유 있게 살아도 됨에도 불구하고 항상 시간 계획을 세우고, 열심히 그리고 바삐 어디론가 가야 할 것 같고, 뭐라도 배워야 할 것 같고, 건강을 위해서 운동도 대충이 아니라 체계적으로 해야 할 것 같다. 늘 누군가와 비교하게 되고 남들에게 뒤떨어지면 큰일 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러나 냉정하게 현실을 돌아보면 직장 생활을 하지 않으므로 땅값 비싼 서울에서 굳이 살 이유가 없다. 어찌 보면 돈 낭비일 수도 있다. 더군다나 지금 살고 있는 집은 방이 4개 있는 넓은 집이다.
이 집에 살게 된 이유는 사춘기에 접어든 두 명의 아들들을 좁은 방 하나에 가둬두기(?)에는 너무 야성이 넘쳐서 각자 따로 떼어 놓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시어머니가 계시니 시어머니 방이 있어야 했고 결국 방이 4개 있는 집이 우리는 필요했다.
은행 빚을 무리하게 내어서 이 집으로 20년 전에 이사 왔는데 세월이 금방 흘렀다. 그때 사춘기 아들들은 독립해서 나가서 방이 남아 돌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서울에 살 이유도, 방 많은 넓은 집에 살 이유도 없게 된 것이다. 이제는 전원으로 돌아가서 한가하게 흙을 밟으며 살고 싶고, 처마 밑에서 떨어지는 빗소리를 감상할 수 있는 주택에 살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러나 고려해야 할 요소가 몇 가지 있다. 첫 번째는 '손녀를 돌보아 주는 일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이다. 서울 근교에 살고 있는 큰 아들은 본인 집 가까이로 이사 와서 손녀 어린이집 등원을 도와줬으면 하는 바람이 항상 있다. 그런데 우리가 고작(?) 빗소리 듣고자 시골로 이사 간다면 아들 입장에서는 상당히 섭섭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두 번째는 바로 “병세권”이다. 나이 들어갈수록 “병원 가까이”에 살아야 한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왔다. 시어머니를 생각하면 가까운 병원이 많이 있는 이곳이 딱 좋다.
게다가 요즘 더욱 도시에 사는 것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것이 90이 넘으신 시어머니의 보청기이다. 보청기 대리점은 지하철 역 중에서도 특히 사람의 출입이 많은 번화한 지하철역 근처에 있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보청기는 예민해서 자주 고장이 난다. 특히 우리 시어머니처럼 땀이 많이 나시는 분의 경우에는 더욱 보청기가 고장이 잘 나서 병원만큼이나 보청기 대리점에 자주 다니신다. 개인적으로 노인들은 “보세권”(보청기 대리점 가까운 곳) 내에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런 점에서는 대도시에 사는 것이 정말 필요하다.
혼자 사는 것이 아닌 만큼 나만의 욕심만으로 전원주택으로 이사를 결정할 수는 없다. 나의 욕구와 가정을 만들어 이제 세우는 젊은 세대의 필요, 그리고 나이 드신 할머니의 어려움 사이에서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 나이 60대가 아닌가 한다. 역시 선택은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