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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드는 이야기

by 은연중애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흔히들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일종의 자기 최면이다.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자기 나이를 의식하고 있으며 ‘내가 나이에 맞는 행동을 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돌아보며 산다고 생각한다.


나는 열다섯 살 때 그 나이가 제일 좋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열아홉이라는 나이가 너무 늙어 보이다 못해 끔찍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열아홉 고3을 지나 스무 살이 되었을 때 나는 다시 스무 살이 가장 젊음이 빛나는 나이라고 생각했고, 그에 맞는 패션에만 온 신경을 곤두세우며 지냈던 기억이 난다.


세월이 흘러 서른 후반이 되었을 때는 나이 마흔은 ‘인생 다 산 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정말 마흔이 되었을 때 마음이 이전과는 확연히 달랐다. 직장과 집에서 모두 나름 큰 변화를 단행하게 되었다. 여자 나이 마흔이란 그런 나이인 것 같다. 그리고 마침내 지금은 60에 이르게 되었다. 기가 막힌 노릇이다. 세월의 빠르기란!


나이 쉰여덟이 되던 해에 일을 그만두었다. 주위 사람들은 ‘왜 일을 안 한다는 말인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지금은 3년째 평소 관심 있던 분야의 공부를 하고 있다. 내가 공부하고 있다는 말을 하면 주변의 첫 번째 반응은 ‘자격증 혹은 학위가 나오는가?’이다. 그런 것하고 상관없이 공부한다고 하면 내가 세상 물정 너무 모른다는 표정들이다.


이제는 나이 60도 일해야 하는 나이로 인식이 된다는 의미가 되겠다. 평균 수명이 길어지고, 전체적으로 건강 상태가 좋아졌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나는 이제 학위, 돈 등에서 좀 자유로워지고 싶다. 목표를 향해 돌진하는 인생은 충분히 살았다.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싶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냥 했으면 한다. 이제는 순간을 즐기며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나는 60세에 접어들면서 삶을 역산해 보는 버릇이 생겼다. 이전에 회사 다닐 때 프로젝트가 생기면 목표일 즉 D-Day를 기준으로 하여 역으로 해야 할 일들을 계획했던 것처럼 말이다. 삶을 역산하는 습관을 들이면서 지금까지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가치였던 ‘일’을 포함하여 ‘성취’나 ‘성공’에 대한 욕심이 좀 줄어드는 것 같다.

누구에게나 마지막은 있다. 갑작스럽게 죽음이 우리에게 들이닥칠 수도 있다. 우리가 뉴스에서 자주 보는 일들이지 않은가. 그런 일들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것을 생각해 볼 때 나이가 들어서 자연스럽게 이 세상과 작별하게 된다면 그야말로 감사한 일이다.


내가 세상과 자연스럽게 작별하는 것이 허락된다면, 그래서 그 D-Day를 자연스럽게 맞이한다고 가정한다면, D-Day 전에 어떤 일이 있을 것인가? 역산해 본다.


D-Day가 오기 전에는 긴 예고편이 우리를 기다린다. 질병이다. 일반적으로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더 긴 시간을 요양병원, 요양원, 주간보호 센터에서 보낸다. 그리고 그런 곳에 가기 전 단계로 복지관을 다닌다. 보통 75세 후반부터 이곳에서 시간을 보낸다. 이곳에서는 나의 생각, 나의 자유보다 ‘그들의 지시’에 순응하며 지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이런 곳에 가기 전의 시간이 나에게는 얼마나 남았으며 그 시간 동안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이제 얼추 20년 남짓의 시간이 남은 것 같다. (물론 점점 장수 시대가 되고 있으니 조금 더 긴 시간이 남아있기를 기대해 보는 마음도 남아 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에 20년째 살고 있으니 지금 산 만큼만 더 살면 그 나이가 될 것이다. 그 시간들은 거침없이 흘러갈 것이다.


첫 번째 나의 미션은 시어머니의 여생을 살펴드리는 것이 될 것이다. 친정어머니도 계시지만 같이 살고 계시는 시어머니가 먼저 와닿는다. 장례식까지 잘 치러드리는 것까지가 나의 인생의 중요 임무이다. 이로 인한 무게감에 짓눌리거나, 누구를 원망하거나, 피해 의식 없이 사랑으로 해 나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두 번째로는 둘째 아이 결혼식이 남아있다. 나의 남편은 중학교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것이 큰 트라우마가 된 그에게 가장 큰 인생 목표는 자식의 결혼식에 참석하는 것이라고 한다. 나 또한 이 일을 잘 해내고 싶다. 여기까지는 부모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다음 남편과의 삶이 남아있다. 그와의 삶은 “따로 또 함께”이기를 바란다. 가끔 자다가 깨서 남편이 옆자리에서 자는 것을 확인할 때가 있다. 그런 때면 지금까지 별 사고 없이 함께 보내온 인생이 너무 감사하다. 모든 사람에게 다 허락된 복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남은 인생을 남편과 일거수일투족 모든 시간을 함께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남은 인생 동안 남편과 좋은 추억도 쌓아야겠지만 한편으로는 한 자유인으로서 “혼자 놀기”에 익숙해지고 싶다. 글쓰기도 그 일환인 셈이다. 지금까지 많은 의무에 매달려 산 삶이다. 내가 원하는 일을 자유롭게 하더라도 크게 일탈하는 인생은 아닐 것이다. 내게 허락된 시간 동안에 가족도 사랑하지만, 무엇보다 먼저 나에게 잘해주고 싶다. 그리고 친구들과도 좋은 관계를 이어가고, 또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공헌을 할 수 있기 원한다.


나에게 나이가 든다는 것은 외모는 추해지고, 몸과 마음은 약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노인들이 돈에 매이고, 자식에 매이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돈과 자식이 나이로 인해 잃어버린 것을 보완해 줄 수 있을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나 또한 그렇게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러니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몸은 약해지고, 외모는 추해지더라도, 표정에는 여유와 부드러움이 있는 노년이 되기를, 지혜와 품위가 있는 할머니가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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