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 누른 곰솥과 과일 샐러드

by 은연중애


김치를 바닥에 깔고 돼지고기 등갈비찜을 했다. 그러다가 스테인리스 곰솥 바닥이 눌어붙어 숯검댕이가 되었다. 베이킹 소다를 들이붓고 하루를 꼬박 놓아두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쇠수세미를 문질러 닦았는데 여전히 일부는 남아 있었다. 닦다 닦다 지치기도 하고 이 일에 소모하는 시간도 너무 아깝게 느껴졌다. 이 곰솥을 버리기로 마음먹었다.

꽤나 큰 쓸만한 스테인리스 곰솥을 버리기로 마음먹은 것은 첫째로, 이것 말고도 같은 류의 곰솥이 하나 더 있었다. 둘째로, 이것은 나머지 다른 하나와 마찬가지로 내가 산 것이 아니다. 가족 중 한 명이 (누구인지는 굳이 말하지 않겠다) 한개는 밖에서 재활용품 중에서 주워온 것이고 또 다른 한개는 친척 집에서 가져온 것이다. 제품에 하자는 없었지만 내 돈 주고 내가 산 살림살이가 아닌 만큼 애착이 별로 없었다.


문제는 내가 버리려고 내놓은 것을 남편이 본 데서 시작되었다. 남편은 이것을 보고 “왜 버리느냐?” 고 질문했다. 이유를 말하기가 귀찮고 피곤했다. 목구멍 저 아래에서 목소리를 겨우겨우 길어 올려 대답했다. 돌아오는 남편의 대꾸. “시골 사시는 ○○ 댁에 가져다 드리면 닭 삶아 드시기에 딱 좋은 사이즈” 란다. 나로서는 상상도 못 한 답이다. 마음 깊은 곳에서 짜증이 치밀어 오르면서 음색이 높아진다. “그 댁은 지금까지 솥이 없어서 닭을 못 삶아 드셨는가? 나는 이 집에 살림 담당 주부인데 솥 하나도 내 마음대로 버리지 못하는가? 이러니 집이 온갖 잡동사니로 지저분해지는 거라고!”


나의 날카로운 대답에 묵직한 정적이 흘렀다.

잠시 후 이 사정을 모르는 시어머니가 나오셨다가 솥을 발견하시고 하시는 말씀에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 아이고, 이거는 촌에 ○○ 집에 주면 닭 쌂아 묵기 조을낀데 와 내비리노?”

사투리로 말씀하셨지만 내용은 남편의 말과 정확히 똑같다. 모자 지간의 DNA, 유전자의 힘이 무섭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이번에는 신경이 날카로워지다 못해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순간이 나에게는 가족에게 마음의 문이 닫히는 순간이다. 마음은 이미 이들에게 수십겹의 담을 쌓고, 그 안에 나 혼자 있다.


나는 물론 부자가 아니다. 그러나 너무 현실에 매달려 악착같이 아웅다웅 아끼고 사는 것에 알 수 없는 알레르기 반응 같은 것을 일으키는 경향이 있다. 남들이 보기에는 이런 내가 주부답지 못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주부가 알뜰살뜰해야 하는 것이 미덕인데 그 알뜰살뜰함이 내게는 구질구질함으로 다가오니 말이다. 아니면 솥 하나에 온 가족이 의견을 맞춰야 하는 것에 너무 답답했을 수도 있겠다.


이 일이 있고 하루가 지났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수다도 떨고, 맛있는 것도 먹고, 그림 전시회도 다녀오면서 저녁 무렵에는 마음이 많이 녹아들었다. 내 마음을 들여다 보았다. 왜 그렇게 화가 나고, 절망했던가?


"아집!" 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내 의사에 반대하는 어 떤 상황을 못 견디는 나의 성향이 보였다. 내 뜻대로! 해야 속이 시원한 것이다.


그리고 다음 순간에 이유는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내 마음에 맛있는 과일 샐러드 접시 그림이 떠올랐다. 초록색 키위, 노란 망고, 빨간 딸기가 하나의 소스로 버무려져 있으나, 각자 맛이 달라서 더 풍성하다. 그래 그렇지. 가족이 같이 모여 산다는 것은 이 과일 샐러드처럼 각자의 맛, 개성을 가진 채 한데 어울려 사는 것이지. 한 사람의 뜻대로만 다 되는 것이겠는가.


더불어서 남편의 이 한마디가 내마음을 시원하게 했다. 남편이 말했다 “내가 솥 깨끗이 씻어 놓았어. 버릴 때 버리더라도 남들이 보기에 깨끗하게 해서 버려야지. 혹시 아냐? 누가 또 사용할 수도 있지.”

그래 이 말은 맞지. 수긍이 갔다.

시어머니가 나를 보고 또 말씀하신다. 솥 버리지 말라고. 이번에는 화가 덜 치민다. “ 네, 어머니, 내 눈에 안 보이게 한쪽으로 치워놓으셨다가 어머니가 알아서 처리하세요.” 어머니가 웃으시며 알겠다고 하신다.

다시 과일 샐러드 접시 그림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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