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입성 6개월 보고

by 은연중애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지 이제 6개월째 접어든다. 지난 6개월 동안 한 주에 한편씩 글을 올리는 것을 나 혼자만의 원칙으로 하고 지키려고 애써왔다.


글쓰기에 대한 욕망은 브런치를 시작하기 훨씬 이전부터 간절했다. 그러나 이 욕망에 불을 붙여주는 이가 없었다. 조용히 그러나 뜨겁게 끓고 있는 기름 같이 가슴 저 밑에서만 끓고 있었다.


엉뚱하게 들릴 수도 있는데, 브런치 글쓰기를 시작하게 된 것은 ‘요리 교실’이 계기가 되었다. 지인이 국가에서 운영하는 공공기관의 요리 교실을 내게 추천해 주었다. 그분은 이 요리 교실이 너무 재미있어서 자꾸 하다 보니 한식 조리사까지 도전하게 되신 분이었다. 그분의 열정에 전염되어서 나도 요리 교실에 등록하게 되었다. 주부 경력 30년 차가 넘었는데도 주방에만 들어가면 늘 어색하고 부담스러워서 요리와 친해져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수강 과정 내내 여전히 요리와 가까워지지 않았다. 한식 조리사의 꿈은 고사하고, 늦은 밤 수업 시간에 만든 음식을 가지고 집에 돌아올 때는 난데없이 ‘호랑이와 떡장수 할머니’ 옛날이야기가 생각났다. 떡장수 할머니가 피곤한 몸을 이끌고 밤늦게 산 고개를 넘어올 때 호랑이가 갑자기 나타나 길을 막고 할머니에게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라고 했다는 바로 그 이야기.

할머니는 떡을 파느라고 얼마나 힘들고 고단한 하루를 보냈을까. 아마도 집에서 기다리는 식구들에게 남은 떡을 주려고 가져가는 중이었을 것이다. 요리 교실에서 만든 음식을 싸서 집에 돌아가는 내가 그 떡장수 할머니처럼 고단하게 느껴졌다.


요리 교실의 가장 큰 소득은 내가 다니던 그 기관에서 요리 수업만 하는 것이 아니라 ‘글쓰기 수업’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내게는 이것이 ‘우연’을 가장하고 나타난 ‘운명’처럼 느껴졌다.


나는 글쓰기 수업에 등록했다. 강의실에 그저 앉아 있기만 해도 말할 수 없는 마음의 평안을 느꼈다. 창가의 초록 나뭇잎은 또 얼마나 싱그럽던지! 그 글쓰기 수업의 목표는 바로 ‘브.런.치. 작. 가. 되.기!’였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수업 기간이 채 두 달이 안 되었다는 것이었다. 브런치 작가가 되기에 충분한 기간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가 될 수는 있겠지만 꾸준히 글을 올릴 수 있는 이야깃거리가 내게는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


어디서 그런 열정이 내 안에 숨어 있었을까? 나는 그 수업이 종료되자마자 같이 공부한 수강생을 대상으로 스터디 모임을 조직했다. 그리고 6개월 동안 매주 한 편씩 수필을 썼다. 그러면서 나는 점차 글쓰기에 익숙해졌고 축적된 수필의 수도 많아졌다. 이 기간을 거치면서 브런치에 들어갈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에세이를 계속 써가면서 내가 깨달은 것은 글 쓸 소재가 없을 것을 걱정 안 해도 되겠다는 것이다. ‘삶이 바로 글의 소재’가 된다는 것이 어느 순간 깨달아졌다. 내게 필요한 것은 일상을 잘 관찰하고 해석해 내는 눈이 필요하지 특별한 경험, 특별한 이야기가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글쓰기가 힘들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글쓰기가 좋다. 내게 있어 글쓰기란 산만하게 흩어져 있는 퍼즐을 맞추어 멋진 그림을 완성하는 것, 혹은 바닷가에 아무런 의미 없이 쌓여있는 모래에서 아름다운 모래성을 만들어내는 것과 같다.


쓰고 싶은 주제가 있으면 처음에는 떠오르는 단어나 구절을 무조건 써본다. 그리고 그것들을 붙여서 문장으로 만들고, 그 문장들을 단락으로 만들고, 이리저리 순서를 배열한다. 다시 읽으며 생각들을 보태기도 하고 빼기도 한다. 마지막에는 글자 하나하나를 다듬는다.


이 과정을 몇 번 거듭하다 보면 아귀가 딱 맞아떨어졌다는 느낌이 든다. 이때가 바로 마음에 등불이 ‘짠’ 하고 켜지는 순간이다. 혼돈스럽게 이리저리 떠돌던 생각들이 질서 정연하게 제자리를 잡는 순간이다. 이 작업에 집중하노라면 세상 근심 걱정이 다 사라진다.

내가 쓴 글을 다른 이들이 읽고 라이킷을 많이 받으면 그 또한 삶의 에너지가 생긴다. 더불어 라이킷 하신 작가분들의 브런치를 방문해서 글을 읽으면 생각지도 않은 다양한 인생에 깜짝 놀라게 된다. 마치 온라인상에 존재하는 신대륙 같다. 덕분에 나도 시야가 탁 트이게 되는 것을 느낀다.


때로는 기가 죽을 때도 있다. 대선배들의 그 많은 양의 에세이 그리고 많은 구독자 수를 볼 때 그러하다. 내가 열심히 쓴 글을 읽는 사람이 거의 없을 때도 기가 죽는다. 혹은 쉴 새 없이 새로 올라오는 글들을 볼 때 나도 써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생기기도 한다.


이럴 때 근본적인 질문을 하게 된다.

“왜 쓰는가?”

이때 마음속에서 한 목소리가 올라온다. 지금까지 ‘one of them’, ‘행인 1번, 2번’의 삶을 살았다면 글쓰기를 통해서 나만의 빛깔을 가지고 싶다는 마음의 소리다. 다음에는 좀 더 강하게 소리가 올라온다. ‘브런치 글쓰기를 통해서 나는 흙더미 속에서 발견한 진주가 되고 싶어!’

이 소리는 욕심인가? 혹은 새로운 꿈인가? 이 소리에 어떤 이름을 붙여주어야 할지 모르겠다. 이 소리는 마음 저 밑으로 눌러 버리기로 결정한다. 욕심 혹은 꿈이 생기면 계획이 생길 것이고, 계획이 생기면 내 인생은 피곤해질 것이기에.


“왜 쓰는지?” 질문에 답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나는 이미 글쓰기라는 길의 시작점에 들어왔다. 이 길 끝은 벽으로 막혀있는지, 혹은 그 옆으로 또 다른 길이 나 있는지는 길 초입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끝까지 가 봐야 안다.


다만 글 쓰는 이 순간을 즐기면서 살아야겠다는 마음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