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2년째 한 주에 한 번 ZOOM을 통해 만나서 ‘소리 내어 책 읽기’를 한다. 말 그대로 ‘소.리.내.어’ 읽기만 하기 때문에 전혀 어렵지가 않다. 소리 내어 책 읽기는 초등학교 시절에 많이 한 것이지만 중년이 된 지금도 나름 재미가 있다. 책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생각이 있으면 또 그 생각을 서로 나눈다. 오프라인이라면 시간 내어 외출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zoom이 일상화되었고, 각자 집에서 zoom으로 쉽게 만나게 되었으니 아이로니컬 하게도 코로나의 혜택을 본 셈이다.
사회생활을 더 이상 하지 않는 나에게 친구들과 온라인으로 만나 책을 읽는 것은 새로운 세계로의 창구 역할을 한다. 이런 기회가 아니었으면 고백하건대 나 혼자서는 책을 읽기는 할 수 있었겠지만 끝까지 마치기는 어려웠을 것 같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속담이 딱 들어맞는 경우다. 친구들과 함께 하니 이렇게 책을 읽게 된다.
지난해에는 유홍준의 ‘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 서울 편’ 4권을 모두 읽었다. 유홍준의 책 같은 경우에는 함께 읽고 그 책에 나오는 장소를 직접 가 보는 것을 원칙으로 했기 때문에 서울 여행의 추억까지 곁들여져서 즐거움이 배가되었다. 이 책 덕분에 서울 여기저기 서려 있는 역사를 알게 되었고 우리 문화를 이해하는 입문의 단계에 오게 된 것 같다. 뿐만 아니라 역사 유적지에 가면 안내문을 제대로 읽지 않던 내가 이 책을 읽은 이후로는 꼼꼼히 읽어보게 되게 되었다.
요즘은 ‘총, 균, 쇠’(재레드 다이아몬드 저)를 함께 읽는다. 이 책은 주변 지인의 집에 모두 한 권씩은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것을 완독 한 사람은 내 주변에서 본 적이 없다. 상당히 난이도가 있는 책이어서 이렇게 소리 내어 친구들과 천천히 읽고 난 다음에 나 혼자서 다시 한번 읽지 않으면 잘 이해되지 않는다. 이 책은 세계의 발전 역사를 지리적 관점에서 해석한다. 책을 읽으며 학생 시절에나 봤던 세계지도를 다시 펼쳐보게 되었다. 인류의 장대한 역사가, 그리고 오대양 육대주의 거대한 공간이 내 작은 마음에 들어참을 느낀다.
기껏해야 온라인으로 소리 내어 책을 읽을 뿐인데 마음 저 깊이에서부터 자부심이 올라온다. 진주 귀걸이나 실반지 하나 끼지 않았는데, 내가 굉장히 화려한 인생을 산다는 기분도 든다.
먹고사는 것과 아무 상관이 없고, 타인에게 별 도움도 안 되는, 문자 그대로 ‘無用한 일’을 왜 하냐고? 누구에게 얄팍한 지식을 뽐내고 싶어서 그러냐고? 그럴 수도 있겠다. 화려한 보석이나 명품 가방으로 허영심을 솔직하게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그것을 교묘하게 마음속에 장착하고 있는 중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런들 어떠랴. 꼭 먹고사는 일, 결과물이 있는 일, 유용한 일만 가치 있는 일은 아니리라. 비록 나이 들어가는 자의 知的 허영심이라 할지라도 내가 만족하면, 주변 사람에게 좀 더 너그러워질 수 있다. 그러면 좋은 일 아닌가?
그리고 이러한 마음을 친구들과 함께 공유한다. 같은 마음을 느꼈으므로 우리는 더 가까워졌다. 이전에 수다 떨고 맛있는 것 먹고 헤어질 때와는 또 다른 추억을 공유하게 되었다. 욕심 같아서는 ‘살아있는’ 한 이 모임을 계속했으면 좋겠다.
올해 95세 되시는 친정어머니 생각이 문득 났다. 일제 강점기, 그 힘든 시대에 태어나신 것은 당신 잘못이 아니시다. 험난한 세월을 사셨던 까닭에 변변한 학창 생활을 경험하신 적이 없으시고, 평생을 시장과 성당 외에 별로 가 본 곳이 없으신 분이다. 노년이 되셔서 생활 일선에서 물러나신 이후로는 남아도는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 줄 몰라서 외롭게 사셨다. 그러나 당신 자리를 굳건히 지키신 인생을 사신 덕분에 당신 딸은 세상 밖으로 한걸음 더 나온 삶을 살게 되었고, 노년의 입구에 선 지금도 이렇게 “꽉 찬 삶 (full life)” 을 살게 되었다.
“엄마! 덕분이요. 엄마가 끝까지 공부시켜 주셔서 이렇게 환갑 넘은 나이에도 문명의 이기를 잘 사용하며 즐겁게 지내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