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더위를 피하여 간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8층 옥상 정원에서 놀라운 광경을 봤다. 사진을 잘 찍지는 못 하지만 사진을 찍지 않을 수 없었다. 광화문 –경복궁- 청와대- 그리고 북악산이 한 줄에 늘어선 것이 실로 장관이었다.
또 며칠 전에는 LG 아트센터에서 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를 관람했다. 이번에 본 백조의 호수는 기존의 상식을 뒤집어서 무용수가 남자였다!! LG 아트센터 건물도 너무 예술적이어서 놀라웠는데 남성 무용수의 파워풀한 발레 또한 인상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며칠 전 방문한 박물관이나 발레 공연을 언급하는 것은 멋진 문화체험을 했다는 것을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보다는 이 멋진 경험을 모두 “나의 친구 혹은 친구들”과 했다는 것을 자랑하기 위해서다.
이 친구들과는 최소 10년에서 길게는 30년이 넘게 만나온 친구들이다. 그런데 과거에 만나서 수다만 떨 때보다는 이렇게 함께 의미 있는 이벤트를 즐기고부터는 더욱 결속력이 생겼다. 나에게 친구들은 뻔한 일상의 테두리를 벗어나 새로운 세계로 인도하는 문(門) 같은 존재가 되었다.
사실 결혼해서 직장 생활하고 아이들 키울 때는 이런 여유는 꿈꾸지 못했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아이들이 독립하면서 나를 포함하여 친구들은 집을 나올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게다가 자식들과 대거리, 남편과의 밀고 당기기를 하며 세월을 보내는 동안 이제 열정은 사그라들었지만 대신에 성숙해졌다.친구들과 적절히 거리를 둘 줄도 알아서 껄끄러운 얘기는 굳이 하지 않을 줄도 알게 되었다. 또한 내 뜻을 굳이 고집하지 않고 상대방의 뜻을 먼저 수용해 줄 줄 수 있는 여유도 가지게 되었다. 젊은 시절의 서슬 푸른 자기 고집, 주장, 열정이 계속 살아있었다면 친구들과 잘 지내기는 어려웠으리라. 덕분에 인생 후반전이 더욱 풍성해졌음을 느낀다.
감사한 것은 시어머니가 연세는 90이 넘으셨지만 여전히 건강하셔서 복지관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오신다. 그러니 외출했다가 시어머니가 집에 돌아오시기 전에만 도착하여서 저녁 준비를 하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니까 내 생활이 마치 무도회를 즐기다가 밤 12시 되기 전에 집에 돌아와야 하는 신데렐라하고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어서 피식 웃음이 난다.
그런데 신데렐라의 외출에 한 가지 불편한 점이 있다. 물론 내가 신데렐라가 아닌 것처럼 신발 때문에 불편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남편이다. 친구들과 헤어지고 헐레벌떡 집에 돌아오면 남편이 너무나 활짝 핀 웃음으로 나를 반긴다. 퇴직한 지 이제 5개월 차에 들어간 남편은 집에 내가 없으면 말할 사람이 없는 것이다. 남편은 오전에 텃밭에 가서 물 주고, 산책하고, 집에 오면 온종일 혼자이다.
남편의 친구들은 모두 오랜 세월 운동을 함께 해온 친구들이다. 테니스, 골프, 자전거, 등산 등 여러 운동을 즐기는 남편은 젊은 시절 친구들과 운동하느라 집을 자주 비워서 우리는 한집에 살았으나 따로 사는 부부였다. 그런데 나이가 드니 예전처럼 운동하기도 힘들고 특히 요즘 같이 더운 날에는 밖에서 운동하기가 더욱 어려워진 것이다. 실내에서 하는 새로운 운동 그룹에 합류할 것을 제안해 봤으나 나이 들어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서로 친해지기 위해서 보내는 노력과 시간이 이제는 힘에 부대끼는 눈치다.
남편은 35년 이상을 한 직장에서 최선을 다했고 일에 지쳐서 퇴직했다. 그러나 이제 퇴직한 것을 슬그머니 후회하는 듯도 하다. 어느 철학자가 ‘인생은 괴롭거나, 지루하거나 둘 중 하나’라는 말을 한 것이 기억난다. ‘힘든 직장 생활을 끝내고 나니 이제는 지루한 노후가 기다리고 있는가?’ 하는 생각도 난다.
젊었던 시절, 집 밖을 나돌던 남편이 야속했다. 그런데 지금은 집 안에 머무는 그가 안쓰러워 보인다. 결국 그와 나는 인생의 동반자, 2인 3각의 길을 가야 하는 한 팀이 아니던가?
이래저래 신데렐라의 외출은 조심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