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대에게 일이란?
대학 친구들과 오랜만에 모이게 되었다. 그중에는 30년 만에, 혹은 40년 만에 만난 친구들도 있다. 스타벅스는 어딜 가나 젊은 친구들이 가득가득 점령하고 있어서 못 들어갔고, 창 넓은 어느 한적한 카페에 60대 장년 7명이 모였다.
대화는 퇴직 후 친구들이 하는 일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모이게 되었다. 은행권에 있던 한 친구는 일찌감치 명예퇴직하고 손해 평가사로 일하며 논밭을 누린단다. 겨울에는 일이 별로 없지만, 일이 있을 때는 1주에 250만 원씩 수입이 들어온다니 꽤 괜찮다. 어떤 이는 퇴직 이후에 주차 요원으로 하루에 7시간씩 일한단다. 그중에 제일 운 좋은 한 친구는 퇴직 후에 원래 직장의 자회사 대표이사로 취임하였다. 덕분에 여의도 공원이 내려다보이는 멋진 대표이사 사무실 구경도 하고 거하게 밥도 얻어먹었다.
60대와 일.
대부분 퇴직하고도 새로운 일들을 구한다. 물론 경제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반드시 경제적인 이유만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일은 한 사람에게 사회인으로서 자리를 매김해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일이 없다는 것은 남녀를 불문하고 자존심을 살짝 상하게 하고 주눅 들게 한다. 그래서인지 사회생활을 하지 않고 전업주부로 30여 년을 보낸 친구는 묻지도 않았는데 본인이 몸이 약해서 직장생활을 안 했다고 먼저 털어놓았다. 그 친구의 화려한 장신구들이 눈에 띄었다. 팔찌며, 귀걸이며, 손가락에는 여러 개의 반지들.... 그 멋진 액세서리들이 내게는 마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방어 무기(?)처럼 느껴졌다.
친구들은 시선을 돌려 나에게 묻는다.
“요즘 뭐해요?”
당황스럽다.
“뭐 하긴 뭐해요. 잘 놀고 있지.” 멋쩍은 웃음을 날린다.
사실은 돈 버는 일만 안 할 뿐 나도 바쁘다. 가정주부의 일이 티만 나지 않을 뿐 결코 만만한 일은 아니다. 집을 대단히 멋지게 꾸미지 않아도, 특별한 음식으로 밥을 차리지 않아도, 그저 그럭저럭 집이 너무 지저분하지만 않게, 빨래가 쌓이지만 않게, 외식 안 하고, 집밥으로 하루 두 끼만 먹어도 매일 평균 4-5시간은 소요된다. 그리고 이 일은 공휴일이나 주말에도 쉬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부의 일은 상당히 폄하되어 있다. 마치 존재하지 않는 일처럼 취급된다.
그러니 “요즘 뭐 해요?” 하고 물으면 “놀고 있지.”라고 대답하는 수밖에.......
말해놓고 나니 조금 면구스럽다. 구겨진 자존심을 회복하고자 그랬는지 나도 모르게 한마디 더 보탰다.
“브런치에 글 쓰고 있어.”
그러나 그들은 브런치가 뭔지 모른다.
다시 화제는 ‘무슨 일을 하면 좋을까?’로 돌아갔다.
확실히 오늘날에는 60대라도 일하는 것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장수 시대의 당연한 결과이다. 축복인지 아닌지는 아직 판단이 안 서지만 지금의 60대는 80이 되어도, 90이 되어도 건강하게 생존해 있을 확률이 높다.
80이 되어도, 90이 되어도 건강할 가능성이 높은 세대에게 60 대란 어떤 의미가 될 수 있을까?
우연히 KBS 다큐 ‘인생 정원’에서 83세 안홍선 씨의 황홀하도록 아름다운 들꽃정원을 본 적이 있다. 아내 안홍선 씨는 정원을 가꾸고, 남편은 농사를 지었다. 그 일을 시작한 것은 부부가 퇴직한 때부터였다고 한다. 그러니 최소 그 일을 20여 년 전부터 하기 시작한 것이다.
건강 돌보기만 해도 그렇다. 동네 수영장에 낮에 가보면 80대 할머니들이 거뜬하게 한 시간 동안 자유 수영을 하신다. 이렇게 80대에 수영을 즐기려면 늦어도 60대 초반에는 수영을 배우기 시작해야 한다. 80대는 수영을 배우기에는 많이 늦다.
그렇다. 오늘날 나이 60대의 의미는 80대, 혹은 90대를 넘어서도 계속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시작하는 시기라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생계를 위해서 돈을 벌고 살았다면, 이제는 돈에 대한 비중은 낮추고 하고 싶었던 일, 그리고 더 나이 들어서도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해 보는 때가 지금이 아닐까? 그것이 운동이 되었든, 취미가 되었든, 농사가 되었든, 혹은 또 다른 그 무엇이 되었든 말이다.
그러면 나는 노년의 입구에 서서 무엇을 준비할까?
나이 들어서 백발이 성성하고, 깡마르셨던 이어령 선생님이 떠올랐다. 평생 공부하고, 글을 쓰고, 남을 사랑하는 데 힘쓰셨던 분이다. 비록 그분 발꿈치에도 못 따라가지만, 삶의 방향만은 그분을 롤 모델로 해서 읽고, 쓰고, 사랑하며 사는 노년을 보내야겠다.
60대, 새로운 시작의 출발점에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