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자니 일이 커지고 안 하자니 속이 터지고

by 은연중애

“말하자니 일이 커지고 안 하자니 속이 터지고”

책 제목이 너무 기발해서 사 보았다. 소심한 나로서는 종종 자주 겪는 일이다. 내 마음의 한 단면을 너무나 잘 읽어낸 표현이라 제목이 마음이 들어서 읽은 책이다.

들어가는 글 첫 단락은 나에게 다소 충격적이었다.


소통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진심이라고 믿었던 시절이 있었다. 내가 아무리 서툴러도 나에게 진심만 있다면 그 진심은 상대방에게 전달되고, 상대가 나를 오해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시간이 흐르며 알게 된 것은 진심만큼 전달되기 어려운 것은 없다는 사실이었다.


저자 '김지윤'은 직장인, 신혼부부, 형제 지간 등 다양한 관계들의 사람들이 마주치는 의사소통의 어려운 여러 사례들을 제시한다. 그중 몇가지를 간단히 아래에 제시한다.


- 화장실에 있는데 밖에서 동료가 나의 뒷 담화를 할 때

- 자기가 쓴 컵을 안 씻고 그냥 퇴근하는 직원들. 먹는 사람 따로, 뒤정리하는 하는 사람 따로인 상황이 가져다주는 분노와 억울함

-출근하자마자 버럭 상사가 화를 낼 때

- 신혼인데 남편이 설거지한다고 말만 하고 안 할 때


나는 신혼이 지난 지 오래되었고, 직장 생활도 이미 은퇴해서 만나는 사람도 많지 않다. 그러니 책에 나오는 사례들이 나에게 해당되는 경우는 지금으로서는 많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나이에도! 만나는 사람도 많지 않은데 여전히 일상생활에서 ‘말하자니 일이 커지고 안 하자니 속이 터지는’ 경우를 종종 겪는다.

나의 사례를 몇 가지 열거해 본다.

- 이웃에게 좋은 마음으로 음식을 만들어 보냈는데 그 음식 담은 통을 안 돌려줄 때

- 지인들 모임에서 급히 만원 정도의 작은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 자진해서 빌려줬는데 갚지 않을 때

- 약속을 어긴 지인이 미안하다고 말하기는커녕 너무 멀쩡한 표정일 때

- 우호적인 분위기의 모임에서 갑자기 지인 한 명이 내 말에 음성을 높이며 신경질을 낼 때

- 상대방이 내 메시지를 확인하고도 하루 이상 답이 없을 때

작가는 감정을 모아두었다가 날 잡아 터뜨리면 폭발하는 방식으로 해결되기 때문에 불편한 감정이 느껴질 때마다 조금씩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다루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표현하기 힘들 때는 간접적인 방식으로라도 표현하는 것을 제안한다.


한 가지 예를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정말 꼴도 보기 싫은 상사의 면전에 대고 “문제는 내가 아니야! 너라고! 너만 잘하면 된다고 이 자식아”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강약 조절을 통해, 은유와 비유를 통해, 유머를 통해, 당신의 부정적인 마음을 표현해서 당신의 마음이 쉴 틈을 주라는 것이다. 면전에는 못하니 뒤통수에 대고 소심하게라도 “이 자식아, 네가 문제야”라고 입만 벙긋거리며 말해주거나 상사가 화장실 안에서 휴지를 찾을 때 화장실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조용히 나와버리거나.... (22쪽)


직접적으로 자기감정 표현을 할 수 없는 사회적 관계에서 이렇게라도 감정을 표현하면 정신건강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작가는 무엇보다도 솔직하게 자기 자신을 표현할 것을 권하고 있다.

화가 났으면 “화가 났고 서운하다”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이때 자존심과 두려움이 엄습할 것이다. 이런 두려움과 자존심을 넘어 한번 표현해 보는 거다. 뜻밖의 수용을 경험할 것이다.

(179쪽)


나의 경우에는 어떻게 대처해왔는가를 되돌아본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마음이 살짝 긁혔을 때, 대체로 말을 안 하는 쪽을 선택해 왔다. 즉 속이 터지는 쪽을 선택한 편이다. 선택이라기 보다는 당황해서 순간 얼음이 되어버린다. 아무말도 못한다. 집에 돌아와서야 그야말로 '이불킥'을 하는 것이다.


더러는 관계를 조용히 손절하기도 한다. 혹은 나 스스로를 기분 좋게 만드는 방법도 있다. 다른 말로 하면 환기를 시켰다. 나에게 기분 좋은 일- 사람 많지 않은 체육관에 가서 혼자 수영을 하거나, 기회가 되면 여행을 하거나 - 하고 나면 내 마음의 그릇이 커지는 것을 느낀다.


나를 즐겁게 하고 나면 힘들었던 일이 작게 느껴지기도 하고, 새로운 각도로 보이기도 한다. 상황을 차분하게 관조하게 되며 , 상대방을 그냥 한번 ‘봐주는’ 여유가 생긴다. 이곳 브런치에 내 생각을 글로 쓰는 것도 효과가 있다.


그렇게 세월을 보내다 보면 또 의외로 그 사람의 좋은 점도 보이게 되어서 ‘그때 말 안 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이것을 MBTI 식으로 표현하면 소심한 I에 해당하는 나의 대처 방법이다. 문제를 상대방에게 표현하는 대신 잊어버리거나 용서하기. 비겁하다면 비겁하다고 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그러나 이것이 60 평생 큰 다툼 없이 살아온 비결이 아닌가 한다.


언젠가는 작가가 추천한 대로 나의 비겁을 딛고 일어나 솔직하게 말하는 용기를 가져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언제 나는 용기를 가지고 말할 것인가? 잊어버리거나, 상대방과 손절하는 것이 더 쉽고 익숙한 나에게?


진정으로 그 사람이 잘 되기를 바랄 때,

그리고 앞으로 그 사람과 잘 지내기를 바랄 때

나는 용기를 내어 말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