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노는 여자 vs 잘 노는 남자

by 은연중애

남편이 드디어 돌아왔다. 열흘 넘는 해외여행에서!

늘 그날이 그날 같은 우리네 일상이지만 남편이 없었던 동안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다.


시누 형님이 시어머니를 방문하여 며칠 머무시는 동안 챙겨드렸다거나, 남편 대신하여 결혼식장에 다녀온 것은 차치하고라도,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사고가 생겼다.


안방 화장대에 머리를 세게 부딪쳐 유리가 박살 나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러나 집에 도와줄 사람이 없어서 머리를 감싸 안은 채 조각난 유리를 치우느라 곤욕을 치러야 했다. 뿐만 아니라 이 겨울에 갑자기 보일러가 고장이 나는 황당한 사고까지 겹쳐서 업체에 연락하는 등 혼자 처리해야 했다. 남편의 빈자리가 확연히 드러나면서 그의 소중함을 절감하는 동시에 원망도 올라오는 순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로 인하여 특별히 다툼을 벌이지는 않았다. 원래 놀기를 좋아하는 남편임을 잘 알고 있고, 익숙하기 때문이다. 이제 직장 퇴직마저 하였으니 잘 노는 것이 더욱 중요한 과업이 되었다. 이번처럼 여행 가는 일이 아니더라도 집에 있을 때 남편은 별일 없이 텔레비전을 보거나, 핸드폰 게임을 하며 보내는 한가한 시간이 많다.


그에 비해 나는 늘 바쁘다. 항상 계획을 세운다. 규칙적으로 한다. 뭐라도 한다. 그리고 단지 재미로 하는 일은 없다. 꼭 그 의미가 있어야 한다. 집안일해가면서 영어 공부도 하고, 건강을 위해 수영도 한다. 학교 다니는 학생이 국어, 영어, 수학 시간표에 따라 행동하는 것처럼 날마다 스케줄을 정해놓고 그에 따라 움직인다. 마치 커다란 시계탑에 허리춤을 묶어 놓고 그 주위를 뱅글뱅글 도는 사람 같이 산다.


젊은 시절부터 돈보다 중요한 것이 시간이라는 생각을 하며 살아왔다. 게다가 뒤처지기는 싫다는 자존심도 있어서 바쁜 삶을 살았다. 내가 보기에 남편은 시간 귀한 줄 모르고 노는 ‘베짱이’ 같은 사람이었고, 남편이 보기에 나는 딱히 대단한 결과도 나오는 것이 없으면서 열심히만 사는, 한마디로 ‘헛수고’ 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요즘은 좀 변하게 되었다. 그 이유는 첫째로 몇 년 전에 외국에 혼자 일하면서 머물렀던 경험 때문이다. 이국에서 혼자 보내는 밤은 적막하고 외롭고 두려웠다. 옆에 사람 소리 나는 것이 얼마나 정서적 안정을 주는 가를 알게 되었다. 그 경험을 겪고 나니 거실에서 텔레비전 소리가 날 때 이전 같으면 ‘텔레비전만 보는 한심한 남편’이라는 생각을 했을 텐데 지금은 ‘집에 나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있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안심이 된다.


또 하나는 생각의 변화이다. 어쩌면 나이 탓인지도 모르겠다. 인생은 시간으로 이루어졌으니 시간이 소중하다. 그러나 조금은 관대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에게도, 나에게도, 남에게도 관대해지고 싶어졌다.


열심히 해야 하고, 의미가 있어야 하고, 목표를 이루어야 하는 삶은 남들 보기에는 근사해 보일지 모르지만 정작 그 사람은 점점 엄격해지고, 우울해지는 경향이 있다. 이제는 업적을 달성하기보다는 관대하고, 편안하고, 융통성 있게, 바람 부는 대로, 물 흐르는 대로 늙어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연세 92세이신 나의 시어머니는 젊은 시절, 남편분을 잃으시고 자식 다섯을 키우느라 힘든 삶을 사셨다. 그런데 언젠가 그분이 하시는 말씀을 듣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한평생 잘~ 놀았다!”

이 말을 곱씹어보면 잘 노는 것은 반드시 상황이 뒷받침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닌 듯 싶다.


못 놀고 열심히 산 사람 vs 대단한 업적은 없지만 재미있게 놀았던 사람.

이전에는 목표를 위해 열심히 일해서 성공한 인생을 정답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면 업적은 대단하지 않지만 잘 놀았던 사람은 오답 인생인가?

요즘은 오히려 잘 놀았던 사람에게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잘 노는 사람에게는 여유와 유쾌함이 있고, 나이 들어가면서 이것이 더 소중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