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트워크가 연결되었습니다-
일요일 오후.
92세 시어머니는 햇빛도 들어오지 않는 방에 커튼까지 치시고 침대에 누워 계셨다.
주중에는 복지관에라도 가시지만, 주말에는 TV와 핸드폰 유튜브까지 다 틀어놓고 당신 방에서 나오시지 않는다.
남편은 거실을 지키고 앉아 그저 TV만 봤다.
나 역시 오전에 성당에 다녀온 뒤로는 방에 오후 내내 누워있었다.
나이 90이 넘은 노인과 나이 60이 넘은 부부가 사는 집 휴일 오후 풍경이다.
각자 거리를 띄워서 자신만의 영역에 눕거나 앉아있다.
아무 말도 오가지 않는다. 양로원도 아닌데 적막하고, 쓸쓸한 분위기가 감돈다.
그런데 그 고요를 깨고 남편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누군가에게 연락을 받는다는 것.
특히나 뭔가 허전하고, 하릴없는 일요일 오후에 연락을 받는다는 것은 마치 캄캄한 동굴에 작은 알전구 하나가 반짝 켜지는 느낌이다. 활기가 살짝 돈다.
한동네에 사는 남편 친구가 남해 고향에서 가져왔다며 평소에는 먹기 힘든 석화굴뿐 아니라 굴, 남해 시금치까지 보따리에 한가득 가져왔다.
서울에서 남해까지 내려간 아들의 수고에 대한 노부모의 사랑이다.
남해 바다의 향긋한 굴과 싱싱한 시금치는 상하기 전에 서둘러 소비되어야 한다.
감사하게도 함께 나누어서 소비할 대상으로 우리 집이 당첨되었다.
답례로 우리도 청계란 한 판을 드렸다.
이 청계란은 명절에 의성 아주버님이 가져오신 것이었다.
명절이 지나면 우리 집은 귀한 청계란이 넘쳐난다.
의성 아주버님은 농장에서 청계를 풀어놓고 키우신다.
아주버님은 계란을 사겠다고 나서는 주변의 유혹을 뿌리치고 차곡차곡 모두 모아서 명절이면 열판씩이나 가져오신다. 가져오시는 그 손길에는 장남으로서 어머니를 모시지 못하는 미안함이 묻어있다.
귀한 것도 양이 너무 많으면 귀한 대접을 못 받는다. 우리에겐 너무 많아서 부담스러운 청계란이었지만 남편 친구는 뜻밖의 선물을 받은 기쁨을 누렸다. 석화굴은 이웃사촌인 시동생네와 나누어 먹었다. 시동생네도 횡재한 표정으로 석화굴 한 냄비를 가져갔다.
시금치와 굴로 시금치 굴죽을 끓였다. 저녁 메뉴 고민이 저절로 해결이 되었다.
온종일 방안에만 계시던 시어머니도 드디어 방에서 나오셔서 기분 좋게 잘 드셨다.
[시금치 굴죽과 청계란]
맛있는 음식을 먹으니 몸의 에너지뿐 아니라 마음의 에너지도 함께 올라갔다..
음식이 아니라 보약을 먹은 느낌이다.
쓸쓸했던 집안 분위기가 순식간에 반전되었다.
그러고 보니 의성에서 올라온 청계란이 서울 우리 집으로, 그리고 남편 친구네까지 건너가서 여러 사람이 행복해졌다. 또 남해에서 올라온 굴은 서울 우리 집을 거쳐 시동생네까지 건너갔다. 한동네에 오래 살다 보니 이렇게 연결되는 일이 종종 생긴다.
핸드폰 메시지가 생각났다.
와이파이가 안 되면 우리는 데이터로 연결한다.
그러면 메시지가 뜬다.
“네트워크가 연결되었습니다.”
한때 외국에 혼자 살던 시절 데이터가 없어 고국과 연결이 안 되거나, 여행 중에 네트워크 연결이 되지 않는 깊은 산중에 고립되어 불안했던 경험이 있다.
사람 사는 것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어떤 형태로든 연결되어 있어야 사람답게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주의가 강조되는 시대, 사람들과의 거리가 강조되는 시대지만 헐겁더라도 서로 연결은 되어 있어야 할 것 같다.
오늘은 그 연결을 하는 데 있어서 음식이 일등 공신이었다.
덕분에 기운을 차렸다.
굴죽 먹은 기운으로 보온병에 뜨거운 차를 담아 남편과 밤마실을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