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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생활 적응기 2

[장보기]

by 은연중애

1. 소고기 사기

5시 반 퇴근 시간에 사무실을 나서 향강의 노을을 감상하며 집으로 걸어가노라면 강변을 따라 작은 바구니에 이것저것 아주머니들이 물건을 파신다. 살아있는 생선들이 힘차게 펄떡인다. 싸고 싱싱하여 나도 야채 등을 이곳에서 사곤 했다. 그러나 내가 기겁을 한 것은 소고기, 돼지고기를 썰어서 날 것으로 길거리에 내놓고 파는 것이다. 아무것도 덮어놓지도 않고.


고기가 정육점 냉장고에 있지 않고 길거리에 바나나, 용과 옆에 나란히 자리하는 것은 나에게는 충격을 넘어 경악스러운 장면이었다. 이 더운 나라에서 상하면 어쩔 것인가! 사무실에서 같이 근무하는 베트남인에게 그 얘기를 했더니 의외의 답이 돌아온다. 그렇게 길거리에 내놓고 파는 것은 그날 아침에 바로 가져온 것이니까 훨씬 싱싱하다는 것을 의미한단다. 그리고 본인 가족들도 그것을 사 먹는단다. 고기는 정육점이나 마트 냉장고 안에 있는 것만 보면서 살아온 나에게는 진리를 뒤엎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얼마 뒤 새로운 선생님이 한국에서 오게 되었다. 멀리서 오시니 우리 집에서 미역국이라도 끓여서 식사 대접을 해야겠는데 택시를 타고 마트까지 갈 시간이 없어서 난감했다. 이를 옆에서 본 사무실 직원이 가까운 시장에서 소고기를 사 오겠단다. 다음 날 아침, 출근하니 그 직원이 소고기를 내민다. 드디어! 나도 길거리에서 늘어놓고 파는 소고기를 넣어 소고기 미역국을 끓이게 된 것이다!


2. 전통 시장에서 장보기

야채는 마트보다 전통 시장이 싸고 좋은 것은 한국이나 베트남이나 동일한 것 같다. 그런데 베트남과 한국의 차이점은 베트남 전통시장에서는 저울을 훨씬 많이 사용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킬로그램을 ”낄로 “라고 발음한다 베트남어를 잘 못하더라도 시장에서 야채를 사려면 “못 낄로(một kilo 1킬로그램)”는 반드시 알아야 할 단어이다.


전통 시장에서 물건을 살 때는 흥정이 필수이다. 현지어가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런 순간이다. 특히 숫자 1-10은 반드시 알아야 가능하다.


바나나 한 손을 두고 흥정한다. 바나나 한 손에 15,000 동(Mười năm nghìn, 750원)을 부르는데 시장을 한 바퀴 더 돌아서 10,000동(Mười nghìn 500원)에 샀다. 외국에서 혼자 살면서 베트남 말도 못 하는데 값을 깎아 사면 엄청 성취감이 느껴진다. 한국에서는 보지 못한 작은 바나나, 우리가 평소에 한국에서 보는 바나나 크기의 반인데 막상 먹어 보면 육질이 차지고, 너무 달고 신선한, 잊지 못할 맛이다. 물론 씨가 있어서 먹다가 하나씩 발라내어야 한다는 단점은 있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우리나라에서도 전통 시장에서 외국인을 보기는 쉽지는 않은데 베트남 후에(Hue), 그리 크지 않은 소도시, 그곳의 작은 시장에서 현지인들 사이에 끼여 야채를 사던 나의 모습은 나 스스로 뿐 아니라 그곳 상인들에게도 참 낯선 모습이었겠다 싶다.


코로나 시절, 한 번은 먹을 것이 없어서 아침부터 쨍한 햇볕을 가리고자 양산을 쓰고 (양산 하나로 외국인이라는 것이 바로 드러난다. 베트남 사람들은 양산이라는 개념이 아예 없다), 동네 시장에 갔다가 철길에서 신호대기를 한 것이 기억난다. 웅성거리는 한 무리의 베트남 사람들 사이에 양산 쓴 한국 여자 한 명이 끼어서 철길에 서 있던 그 그림이 잊히지 않는다. 그 그림에는 “이방인”이라는 단어가 딱 맞는 단어겠다. 순간 말도 안 되는 생각이-‘나는 이렇게 살다가 평생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 스치면서 가슴이 서늘했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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