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언론보도에 대한 소고
10년 전과 비교해 볼 때, 우리 사회에서 개인에게 요구되는 도덕성의 기준이 많이 올라간 것 같다.
개인적으로 그 원인 중 하나는 인터넷의 보급이라고 생각한다.
인터넷의 보급으로 인해 '타인에 대한 접근성'이 좋아졌다. 달리 말하면, 다른 사람과 직접적으로 만나지 않아도 그 사람에게 무/유형의 영향력을 행사하기가 쉬워졌다는 말이다. 그중 하나가 바로 '댓글' (이라고 쓰고 악플이라고 읽는다) 이다.
나는 이전에 썼던 많은 글들에서 인터넷을 통한 집단 린치가 정당성을 갖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을 여러 차례 지적했었다. 그리고 오늘 이 글에서는 하나의 현상이나 사건을 다룰 때 개인의 도덕성에 호소하는 것이 문제의 해결과 재발을 방지하는데 큰 효과가 없다는 점을 지적해 보고자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었다. 국가의 수장인 그녀가 더 이상 '헌법수호의 의지가 없다'라는 게 헌법재판소가 말했던 탄핵의 이유였다. 국민들은 투표를 통해 공적 이익을 대변해야 할 정치인들이 사적인 이익을 챙기기에 급급했다는 사실에 분노했고 촛불을 들며 대통령의 퇴진을 외쳤다. 사회 각계에 흩어져있던 부패된 권력자들이 만천하에 드러났고 사람들은 그들을 비난했다. 이 과정에서 오히려 큰 인기를 얻은 인물들도 있었다. 청문회에서 이른바 '국정농단'과 연결되거나 이로 인해 이익을 얻은 사람들을 꾸짖던 국회의원들은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기 때문이다. 그들이 중점적으로 공격했던 것은 바로 '도덕성'이었다. 국정농단 스캔들에 연루된 사람들은 '법률적으로 범법적 행위를 한 적이 없다'라든가 '기억이 안 난다'라는 말을 하며 법적인 책임을 피하고자 노력했고, 이와 반대로 이들을 몰아붙이던 사람들은 법률보다 국민들이 기대하는 공직자로서의 도덕성과 실제 이들의 행위 간의 괴리를 지적했다. 대통령은 탄핵되었고 감옥에 갔다. 다음 정부가 들어서고 이제 그 정권이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여기서 한 번 더 묻는다. 현 정부의 모습은 우리가 원했던 모습인가? 당시 집권여당을 몰아붙이던 이들은 정권을 잡고 나서 국민들의 요구에 걸맞은 도덕성을 보여주었는가? 내 대답은 '아니오'이다.
내가 묻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 점이다. '왜 변하지 않을까?' 그리고 나는 이 이유 중 하나가 어떤 사건이 있을 때 그 원인을 개인의 도덕성에서 찾는 풍토, 혹은 개인의 도덕성을 지적하면서 사건의 본질을 파악하고 원인을 제거하는 것에는 소홀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오늘 나온 MBC 뉴스를 보자:
https://www.youtube.com/watch?v=qJPJoBySVm4&ab_channel=MBCNEWS
제목: "방역 택시 탔다"... 목사 부부 거짓말에 구멍 뚫린 방역.
이 제목을 보면 무슨 생각이 드는가? 이 보도는 '방역'이 뚫리게 된 원인을 '목사부부의 거짓말'에서 찾는다. 혹은 '목사 부부의 거짓말'로 결론 내리고 있다. 이러한 보도를 본 뒤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개인의 거짓말 때문에 코로나로 인해 겪는 고통이 늘어난다', '오미크론 변이가 한국에 퍼지지 않도록 해야 하고, 다들 노력하고 있는데, 이 시국에 생각 없이 해외를 다녀온 사람들 때문에 모두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다', '또 목사야? 교회가 문제다.' 등등.
나 역시 도덕적으로, 거짓말을 한 목사부부는 당연히 비판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언론에서 개인의 거짓말을 방역 실패의 원인으로 돌리거나, '목사'등 개인의 신분을 특정할 수 있는 단어를 사용해서 사람들에게 특정 종교와 직업에 대한 반감을 갖게 하는 것은 방역에도 도움이 안 되고, 똑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을 막는데도 효과가 없다고 본다.
개인의 거짓말이 불러온 부정적인 결과에 대한 감정적인 분노를 잠시 가라 앉히고 질문을 던져보자: 두 명의 거짓말이 없었다면 오미크론 변이가 한국에 유입되고 퍼지는 것을 막을 수 있었을까? 내 답변은 '모른다'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눈에도 보이지 않고 쉽게 전파되기 때문에 '개인이 조심하는 것' 만으로는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조심해야 하고, 조심하면 좋은 것은 맞다. 그러나 조심한다고 해서 100프로 막을 수는 없다는 것은 통계적으로 증명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개인을 비판하는 것은 도덕적으로도 옳지 않고 감염 예방에도 효과가 없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보도되는 코로나 뉴스를 보면, 개인에게 너무 큰 책임을 짊어지게 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코로나뿐만이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어떤 사건이 터지면 개인에게 큰 책임을 전가하는 보도를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면 사람들은 사고의 원인과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도덕적인 비난을 퍼붓는다. 안타까운 점은, 그러는 사이에 정작 관심을 가지고 고쳐져야 할, 문제가 있는 시스템을 바꾸려는 노력과 관심은 잊힌다는 사실이다. 헌법정신에 반할 뿐 아니라 도덕적으로도 비판받을 만한 일 투성이었던 이른바 '적폐 세력' 박근혜 정부가 물러가고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음에도, 국민들이 분노하던 일이 줄어들기는커녕 똑같이 반복되는 것 역시 이와 비슷하다. 윤석열이 대통령이 되든, 이재명이 대통령이 되든, 인간의 지도자 역시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을 감시하고 막강한 권한을 견제할 장치가 없으면 결국 이름만 바뀐 한 명의 인간이 잘못된 행위를 반복할 뿐이다. 칸트가 말했듯이, 인간은 굽은 목재이며, 이로부터 완벽히 곧은 것이 나올 수 없다. '도덕적으로 완벽한 인간'은 하나의 '표상Vorstellung', '개념Konzeption'일 뿐, 마치 '황금으로된 산' 처럼, 현실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요즘 대통령 선거캠프를 보면 서로의 도덕성 흠집 내기에 급급하다. 모 후보는 형수에게 욕을 하고, 모 후보는 부인이 어떻고 등등. 나는 이런 저질스러운 정치가 한국 사회의 발전에 그 어떤 도움도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때 애들이 싸우는 방식을 보면, '어 너 왜 때려?' '어 너는 왜 두대 때려?' '어 그럼 넌 왜 세대 때려?'라면서 싸움이 커지곤 한다. 중요한 것은, 한대가 아니라 두대 때린 어린아이를 혼내는 것도, 두대가 아니라 세 대를 때린 어린아이를 혼내는 것도 아니다. 다른 사람을 때리지 못하도록 아이들을 바꿀 수 있도록 지도하거나 규율을 만들어야 한다.
방역문제도 마찬가지다. 전 세계적인 전염병을 막는 데에 개인의 도덕성에 책임을 돌리는 것은 효과가 없다. 중요한 것은 방역을 위한 체계적인 시스템을 세워놓는 것이다. 물론 시스템을 갖춘다고 해서 방역이 100프로 성공하는 것도 아니지만, 적어도 개인의 도덕성에 책임을 묻는 것보다는 훨씬 효율적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의 거짓말이 방역 체계를 뚫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거짓말에도 뚫리는 방역체계는 좋은 방역체계가 아니고 개선되어야만 한다. 이런 방역체계가 지속되고 개인을 욕하는 풍토가 지속된다면, 사람들이 거짓말을 안 하는 게 되는 게 아니라 거짓말을 하는 또 다른 누군가가 나와서 방역이 또다시 뚫린다고 생각하는 게 더 이성적인 판단이 아닐까? '개인의 거짓말'에, '목사의 거짓말'에, '목사의 해외 방문에' 뚫린 방역에 대한 책임을 전가하는 듯한 언론보도는 도덕적으로 옳지도, 방역에 도움이 되지도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