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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크라테스 Apr 10. 2024

나는 나에게서 가장 먼 이방인

내 삶의 우울에 관한 고찰

니체는 도덕의 계보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가장 먼 이방인이라고 말을 한다. 나는 나이기 때문에 그 어느 누구보다 나에 대해서 잘 알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살지만, 사실 그러한 편견에 의해서 나 자신을 온전히 들여다보는 것은 쉽지 않다. 유학생활을 시작하면서 나는 내 삶에서 처음으로 지독하게 외로운, 철저하게 혼자서 생활하는 상황에 놓여보았다. 그리고 다른 외부의 자극이 적다 보니 나 자신에 대해서 들여다볼 기회가 많이 생겼다.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나를 참 몰랐구나, 나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 언제 화가 나고, 언제 우울해지며, 언제 기뻐하는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렇게 고독한 시간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나 자신에 대해 면밀히 관찰해 보았고 이 메타인지의 시간은 대부분 긍정적인 방향으로 내 삶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나는 밝은 사람이었다. 지금도 내가 가지고 있는 어떤 기본적인 성향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밝고 명랑함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학교 다닐 때 가정통신문 같은 곳에서도 항상 선생님들은 내가 앞으로도 그 밝고 명랑한 성향만은 잃지 않기를 바란다고 쓰셨었다. 그러던 내가 해외에서 홀로 지내며 우울증, 혹은 극도의 우울함을 겪으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신기한 점은, 우울이라는 것은 마치 가랑비에 옷이 젖는 것처럼 그 존재를 알지 못하다가 어느새 우울에 잠식되고 나면 그제야 '아 우울이 찾아왔구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는 점이다. 그렇게 우울해질 때면 나는 나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다. 음악을 듣거나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거나 친구들에게 감정을 털어놓는다거나 운동을 한다거나 등등... 그렇게 우울과 씨름을 하다가 문득 나의 경우에 우울이 대부분의 경우 불안에서 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불안, 불안은 대상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에서 오는 공포이다. 공포란 산에서 호랑이를 보고 느끼는 감정이고, 불안은 어두운 산속에서 길을 잃었을 때 느끼는 감정이다. 불안은 대상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을 때 비로소 해소되는 것이기에 불안함이 엄습해 오면 떨기보다는 그 원인을 제대로 바라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요즘에 느끼는 우울함의 경우에는 '나 자신에게 느끼는 무력감'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논문을 쓰려고 하지만 논문이 써지지 않는 것에서 오는 좌절, 이웃의 소음공해에 스트레스를 받지만 그 어떤 것을 해도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때,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던 기대감이 실망으로 느끼면서 오는 좌절, 그리고 이 논문을 끝낸다고 해도 인구감소로 인해 내가 공부한 것과 관련한 직업을 가질 수 있을지, 미래에 대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 같이 느껴지는 좌절감들이 나의 무력함, 그리고 우울의 원인인 것이다. 


불안은 원인을 모르는 공포라고 했다. 그러니 원인을 알게 되면 불안함을 해소하는 데에는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우울은 조금 더 큰 적용범위를 가지고 있어서 우울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양방향의 노력이 필요하다. 첫 번째로  원인에 대해서 생각하며 내 감정이 왜 이런지에 대해 아는 자세가 필요하고, 두 번째로는 역설적으로 놓아버리는 자세가 필요하다. 놓아 버린다는 게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을 아예 놓아버리는 게 아니다. 사람이 우울감에 빠지면 이 생각 저 생각으로 몸이 움직이지 않고, 그렇게 되면 움직이지 않아야 할, 하지 말아야 할 이유들을 찾아내려고 한다. 그래서 아무것도 안 하면 무기력의 늪에 빠지게 된다. 심연을 너무 깊게 들여다보면 심연도 너를 바라본다는 말처럼, 오히려 이럴 때는 생각보다는 움직여야 한다. 그런데 이 움직임은, 무기력의 원인을 분석하고 그 원인을 없애야겠다는 움직임이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우울이라는 것은 영원히 제거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가끔 났다가 사라지는 뾰루지처럼 평생을 함께 갈 수밖에 없는 녀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울함을 없애려고 발버둥 치면 오히려 더 깊은 늪으로 빠지는 경우가 많다. 우울할 때는 그냥 너무 깊이 생각하기보다는 '그렇구나'라고 넘기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 예를 들면 산책을 한다든지, 장을 보러 나간다든지 등등 머리보다는 몸을 쓰는 게 더 더움이 된다. 강박적으로 빠져나가려고 하기보다는 그냥 흐르는 대로 몸을 맡기다 보면 어느새 빠져나와 있을 거라는 이야기다.


A, B, C라는 고민이 있다고 생각해 보자. 지금은 A가 가장 큰 고민이라 B와 C는 그다지 큰 고민이라고 느껴지지 않는다. 지금의 나는 A라는 고민이 해결되면 앞으로 만사가 형통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그렇게 A라는 고민이 사라지고 나면 B라는 고민이 이전의 A보다 더 큰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C가 가장 큰 고민이 되었을 때, 나는 A와 B라는 고민이 무엇이었는지 조차 잊어버리고 만다. 삶이 그냥 그런 것이다. 그런대로 그냥 살아가다 보면 웃을 날이 또 오고, 그렇게 해가지고 바람이 부는 풍경처럼 사소한 일들을 겪어나가다가 또 겨울이 오고 봄이 오는 게 삶이니까, 그렇게 묵묵히 걸어 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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