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usekeeping: 나의 편안함은 누군가의 노력으로 만들어 졌다
(Knock)... Housekeeping!
대답이 없다. 대답이 없다는 건 역설적으로 들어가도 된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이때부터 긴장이 된다. 내 눈앞에 어떤 풍경이 펼쳐질까? 내가 바라는 건 각이 잡힌 것 까진 아니어도 군대에서 처음으로 휴가를 나온 아들이 부모님께 보은 하는 마음으로 정리해 놓은 방이다. 그러나 호텔의 손님들은 돈을 냈고, 대부분은 자기가 낸 돈만큼의 서비스를 누리고 싶어 한다. 그래서일까. 문을 열고 설레는 마음으로 바라본 방은 소돔과 고모라를 보는 듯하다. 여기저기 널려있는 이불, 옷, 그리고 마치 내가 어디까지 청소하는지 보려고 시험하는 것처럼 하나하나 꺼내서 부엌에 전시해 놓은 그릇들까지. 그러면 나는 생각한다: "아... 오늘도 퇴근이 늦어지겠군"
지인들에게 호텔에서 일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지인들은 내가 호텔의 카운터에서 접수를 받고 손님 응대를 하는 줄 알지만 그게 아니었다. 나는 호텔 청소를 하는 청소부가 된 거니까. 당시 나는 당장 집 값을 내야 하는 상황이었고, 마침 청소 에이전시에서 모집공고가 떴길래 바로 면접을 보러 갔다. 건물의 3층에 있는 회의실로 가니 나 말고도 10명 정도의 사람들이 모여있었고, 우리는 간단한 설문지를 작성했다. 거기에는 '청소 일을 해본 적이 있는지?' '경력은 어느 정도인지?' 그리고 '학력' 등의 기본적인 물음들이 있었다. 나 말고 또 한 명의 한국인이 있었으며 나머지는 보통 동남아와 인도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간단한 면접을 보고, 경력에 따라 근무지를 배정받았다. 나는 중앙역에서 걸어서 15분 정도 떨어진 콘도형 호텔에 배정받았다.
일을 하기 위해 산 싸구려 흰색 와이셔츠를 입고, 출근 시간 8시보다 조금 일찍 호텔에 도착했다. 호텔의 지하 창고에 청소부들을 위한 공간이 있었다. 아니, 청소부들을 '위한' 공간이라기보다는 그 공간이 남아 있어서 청소부들이 그곳에 자리를 잡은 것 같았다. 매니저가 나에게 청소할 방이 배정된 종이를 줬다. 보통 4~5개의 방을 청소하게 되는데 방 크기에 따라 시간이 적혀있다. 15분짜리, 30분짜리 등등... 초보였던 나는 보통 15분짜리 방들을 배정받았다. 방 옆에 쓰인 시간은, 내가 그 방을 청소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의미하는 거였다. 즉 15분짜리 방은 15분 안에 청소를 마쳐야 하는 방이었다. 만약 15분보다 일찍 청소를 마치면 그만큼 빨리 퇴근할 수 있지만 보통 나는 한 방을 청소하는데 35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처음 3일은 오리엔테이션으로 사수 한 명과 같이 방청소를 했다. 그분은 구 소련의 한 나라 (어디인지 기억이 안 난다)에서 오신 분인데 20대부터 이 일을 하면서 아이들을 키웠다고 했다. 이름도 모르는 할머님이었지만 이분은 나에게 '가족은 어디 있니?' '밥은 뭘 먹고 사니?'라고 물어보며 걱정도 해주시고 청소도 많이 도와주셨다. 아마 이 분이 없었다면 나는 이 일을 훨씬 더 일찍 그만뒀을 것이다.
처음으로 혼자 일을 하게 된 날, 내게 주어진 카트에 휴지, 청소도구, 새 이불 커버, 서비스용 커피 등을 채워 넣었다.
내가 혼자 청소했던 첫 방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문을 열고 나서 무슨 살인사건 현장에 온 줄 알았다. 이불에는 피가 잔뜩 묻어있었고 방 안에 있던 그릇이나 식기구는 하나도 남김없이 사용해서 부엌에 널브러져 있었다. 내가 일 하던 호텔은 콘도형 호텔이라 접시가 많았고 이런 접시를 닦는 게 정말 힘들었다. 가장 힘든 건 컵을 닦는 일이었는데, 컵의 입구가 작아서 안까지 닦기가 쉽지 않았고 치워도 치워도 쌓이던 군 시절의 눈처럼 닦아도 닦아도 유리컵에 내 손자국이 묻기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의 피가 묻은 이불을 갈아주면서 처음으로 자괴감이 들었다: '비싼 돈 주고 4년제 대학 나와서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 자괴감과 함께 이 방을 치우다 보니 이미 30분이 지나 있었다. 너무 안 나오니까 위에 나온 소련 할머님이 청소를 도와주셨다. 결국 45분이 걸려서 이 방을 다 치웠다.
내 방 청소도 제대로 안 해봤던 나에게 호텔 화장실 청소는 정말 큰 난관이었다. 특히 나는 샤워 후에 욕조에 그렇게 때가 많이 끼는 줄 몰랐다. 한 번은 내가 열심히 청소 한 방에서 컴플레인이 들어와서 매니저와 함께 그 방에 불려 간 일이 있었다. 매니저는 욕조에 때가 묻어있다면서 나를 혼냈고, 직접 욕조의 때를 어떻게 닦아야 하는지 보여줬다. 욕조 때를 닦기 위해선 '블리치' (였던 것 같다)라는 이름의 매우 독한 세제를 희석한 물로 욕조를 박박 문질러야 했다. 매니저는 욕조를 닦아 보이며, 이 세제는 매우 독해서 기관지에 안 좋으니 조심하라고 말했다. 욕조를 닦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그가 견뎌왔을 세월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느꼈다. 청소부에서 시작해서 저 자리까지 올라가는데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것들을 이겨냈을까? 유학 생활을 하면서 하나 둘 한국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을 보던 나의 마음과 결은 비슷하겠지만 조금 더 힘든, 그런 말로 표현 안 되는 서러움을 이겨낸 사람 같아서 매니저가 대단해 보였다.
기억에 남는 방이 또 하나 있었다. 미국에서 온 손님이 머물다 간 방이었는데 그 손님은 이불과 침대를 정리한 후 테이블 위에 "Thank you"라고 적힌 쪽지와 함께 팁을 올려두고 갔다.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사람이었지만 나는 이 손님이 머물다 간 방을 보면서 화장실에 적혀있는 '아름다운 사람은 머물다 간 자리도 아름답습니다'라는 문구가 떠올랐다. 덕분에 나는 5분도 안되어 방을 정리해서 나왔다. 그리고 집에 가는 길에 그 돈으로 아이스크림 하나를 사 먹었다. 호텔에서 손님은, 돈을 낸 고객이므로 방을 깨끗하게 써야 할 의무는 없다. 그러나 그 사람이 머물다간 자리에서 나는 그 사람의 성품을 알 수 있었고, 이 감동을 나 역시 실천으로 옮겨야겠다고 생각했다.
호텔에서 일하면서 배운 점은 크게 두 가지이다.
먼저,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누려오던 것들이 누군가의 노력과 희생으로 이루어진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배웠다. 두 번째로, 사람의 행동을 보고 그 사람의 성품을 알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호텔에서 청소부를 하기 전에는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데 이 기회에 이것저것 다 해보자'라는 패기로 도전했었다. 그런데 대학생에서, 그리고 선생님 소리를 듣던 내가 청소부가 되자, 사람들은 나를 무시하기 시작했다. 나와 투숙객 모두 '한 사람'이지만, 나는 청소부의 옷을 입고 그들보다 천한 존재가 되어있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나를 '자기 방의 청소부'가 아니라 '한 사람의 인간'으로 대해 준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누군지 시간이 지난 지금은 자세히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들의 따뜻한 마음씨에서 우러나온 행동에 느꼈던 감동적인 기분은 아직도 내 마음속에 남아있다.
호텔에서 타인의 이불 커버를 갈아주고 화장실 청소를 해주며, 내 삶의 태도에 대한 수많은 롤모델과 안티롤모델들을 만났다. 이들이 나에게 보여줬던 것, 그리고 내가 이들의 행동을 보며 느꼈던 감정들은 시간이 지난 지금도 내 행동의 지침이 되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