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장보다 소중한 마음의 굳은살
글의 제목을 보고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아니 누가 석사를 9학기, 그러니까 4년 반이나 하나? 보통 석사는 2년에 끝내는 거 아닌가? 그런데 남들의 두배가 넘는 4년 반을 석사과정에 있었다. 심지어 학사를 7학기에 끝냈으니 학사보다 1년이 더 걸려서 석사를 겨우겨우 끝낸 것이다. 나의 석사과정이 이토록 길어지게 된 원인 중 하나는 바로 언어문제였다.
독일어라고는 "Hallo"만 알던 나는 어학원에서 열심히 공부한 끝에 1년 만에 대학 입학을 위한 독일어 자격시험에 합격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어학에 소질이 있다고 생각했고 (물론 이 착각은 나중에 라틴어와 희랍어를 배우면서 깨지게 된다) 이제는 독일어를 잘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대학에 입학하니 강의실에서 내가 독일어를 가장 못했다. 외국인이 있더라도 대부분 독일어와 비슷한 유럽 언어를 쓰는 학생들이었고 당시 과정에 동양인은 내가 유일했다. 토론에 끼지 못하는 건 물론이고 교수가 하는 말도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내가 다니던 대학의 석사과정을 졸업하려면 18개의 세미나를 들어야 했다. 그리고 이 세미나를 들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수업마다 보통 5장 이상의 에세이를 쓰거나 발표를 해야 했는데 남들보다 준비하는 시간이 4배 이상은 되었다. 그리고 이 18개의 세미나 중 7개의 모듈시험을 쳤는데 시험은 모두 15장 ~ 20장 분량의 소논문을 제출하는 것이었다. 한국어로도 쓰기 힘든 소논문을 독일어로 쓰라니. 나에게는 절대 해내지 못할 것 같은 불가능해 보이는 미션들이었다. 소논문을 쓰기도 전에 에세이 단계에서 교수들에게 가장 많이 받았던 메일은 내 에세이의 독일어에 오류가 너무 많아서 독일인에게 교정을 다시 받아오라는 것이었다. 문제는, 철학에 대한 글은 너무 어려워서, 독일인 친구들에게 교정을 받아서 제출해도 교수가 "왜 교정 안 받아왔니?"라고 이야기한다는 점이었다. 그래도 에세이까지는 어떻게 꾸역꾸역 이겨내서 제출할 수 있었지만 문제는 소논문이었고 석사과정 3학기 때 내 석사를 1년 연장시켰던 사건이 발생한다.
당시 나는 존 롤즈 John Rawls의 정의론에 관한 수업을 듣고 있었다. 평소 내가 관심 있는 분야였기에 나는 이 과목으로 소논문을 쓰기로 결정했다. 보통 소논문을 쓰려면 학기가 끝나기 전에 담당교수에게 가서 '~한 내용으로 소논문을 작성하고 싶다'라는 계획표를 가져가면 교수들이 주제가 너무 광범위한지, 아니면 너무 작은지 판단해서 주제를 잡는데 조금 도움을 준다. 학기가 끝나고 논문 제출기한까지 학생은 그 계획서를 토대로 논문을 써내야 한다. 그런데 내가 심혈을 기울여서 써낸 계획표를 보고 교수가 말했다 "네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그래서 나는 다시 한번 주변의 독일인들에게 교정을 받고 주제를 명확히 해서 교수에게 찾아갔다. 그런데 그 교수의 반응은 똑같았다:
"네가 뭘 말하고자 하는지 이해가 안가"
그러더니 다시 돌아가라는 게 아닌가? 보통 교수들은 내가 외국인이고 독일어를 어려워한다는 것을 아니까 주제를 잡는 과정에서는 크게 터치를 하지 않고 '일단 써봐'라고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이 교수는 소논문을 시작하기도 전에 내 계획서를 3번이나 돌려보냈다. 그리고 세 번째에는 이런 말도 덧붙였다:
네가 독일어를 어려워하는 건 알아. 근데 그건 너의 일이지 내 일이 아니잖아? 너는 지금 독일어로 석사과정에 있고, 석사과정에 맞는 글을 써야 돼. 그냥 독일인처럼 쓰면 안 되고, 철학 석사과정의 독일인 같은 글을 가져와.
이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내가 졸업을 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저 교수가 하는 말 중 틀린 건 없었다. 나도 내 독일어가 부족하다는 걸 안다. 다만 문제는 나는 독일어를 공부한 지 이제 2년이 된 학생이고, 2년이라는 시간은 물리적으로 석사과정의 독일인이 쓸 만한 수준의 글을 써낼 수 없었다. 심지어 독일어를 못하니까 내 독일어가 왜 잘못되었는지도 알지 못했다. 이른바 '무지의 악순환' 이 계속됐다."석사 수준의 글"이라는 말은 나를 계속해서 압박했고, 결국 나는 공부를 손에서 놓게 되었다. 철학책을 보기만 해도 헛구역질이 났고, 대학 근처로 지나다니지도 않았다. 그 당시 나의 하루는 일어나서 운동 갔다가 집에 와서 한국 예능 프로그램을 보고 잠드는 것이었다. 밤이 되면 항상 "와... 오늘도 공부를 하나도 안 했네"라고 생각하며 침대에 누웠다. 침대에 누워있으니 한국에 있는 부모님, 친구들, 심지어 유학 가면 힘들다고 반대했던 교수님의 얼굴까지 떠올라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새벽 6시에 해가 뜨는 걸 보고 겨우 잠들면 12시가 넘어서 일어났다. 나는 폐인 같은 삶을 살았다.
순식간에 6개월이 지나갔고, 나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무것도 안 하는데 돈까지 못 벌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닥치는 대로 일자리를 알아보았다. 운이 좋게도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한 한국 기업에 붙게 되었고, 연봉 협상만 남겨두고 있었다. 회사에서는 학생비자에서 취업비자로 바꾸는 건 알아서 해줄 테니 걱정 말라고 했고 학교에 가서 자퇴 증명서만 가지고 오라고 했다. 그런데 막상 내 손으로 자퇴를 하려니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어릴 때부터 꿈꿔왔던 유학생활을 힘들다는 이유로 내 손으로 중간에 그만두는 건 용납이 안 되는 일이었다.
회사에 다시 전화를 걸었고 정중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그리고 다시 공부를 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래도 다시 공부를 하고 글을 쓰는 건 쉽지 않았다. 만약 내 앞에 놓인 장애물이 어느 정도 넘을만한 장애물이면 어떻게든 해보겠지만 너무 큰 벽이 앞에 놓여있다 보니 다시 도전할 엄두가 안 났다. 이때 내가 한건, 역설적이게도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었다. 유학생에게 힘든 것 중 하나가 한국에서 나에 대해 가지고 있는 기대가 엄청난 중압감으로 내 마음을 압박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공부가 안되거나 글이 안 써지면 다음 날 세상이 망할 것 같은 느낌이 계속 들었다. 그래서 나는 의도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세상은 망하지 않는다"라는 사실을 나 자신에게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었다. 이 방법은 매우 효과가 있었다. 나는 운동도 꾸준히 하면서 심리적 안정감을 되찾았다. 그러고 나서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당시 내가 쓴 글들은 전공에서 요구하는 수준의 정합적인 글쓰기가 아니었다. 때로는 드립도 섞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도 썼다. 그런데 그렇게 남에게 평가받는 글이 아닌 글들을 쓰다 보니 글 쓰는 게 다시 재미있어졌다. 가끔은 다시 눈 앞에 "석사의 자격"이라는 글자가 맴돌았지만 그럴 땐 운동도 하고 기타도 치면서 그냥 쉬었다. 자전거를 타고 강변을 두세 시간 달리기도 했다. 그렇게 글을 완성했다.
글은 완성했지만 나는 내 글의 독일어가 어떤 상태인지 알 길이 없었으므로, 독일인, 그것도 철학을 아는 독일인의 교정이 필요했다. 당시 나는 독일어를 완벽하게 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려서 거의 먼저 말을 걸지 않았었는데 벼랑 끝에 몰리니 눈에 보이는 게 없었다. 이 수업 저 수업에 들어가서 다짜고짜 옆에 앉은 학생들은 물론이고 강사에게 까지 "혹시 내 글을 고쳐줄 수 있어?"라고 물어봤다. 당시 수업 때 나를 본 사람들은 나를 진상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지만 나에겐 그런 걸 따질 마음의 여유 따위 없었다. 정말 그 당시 나는 이순신 장군님 말씀처럼 "필사즉생, 생즉필사"의 마음으로 논문에 임했다. 진실한 마음이 닿아서였을까? 박사과정에 있는 한 강사가 내 글을 봐주겠다고 했고 교정을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교정을 받고 낸 글도 교수는 마음에 들어하지 않아 했다. 하지만 당시 나는 '네가 날 안 받아주면 난 네가 받아줄 때까지 계속 찾아올 거다'라고 이마에 써 붙이고 다녔고, 결국 계획서대로 글을 써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냈다.
글이 완성된 건 글을 쓰려고 마음먹은 지 1년이 지난 뒤였다. 교수는 나에게 4점, 그러니까 한국 기준으로 D를 줬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D까지는 '통과 Bestanden'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A가 넘는 점수로 조기졸업을 했던 나에게 D는 분명 만족할 수 없는 점수였다. 그러나 상관없었다. 내가 목표한 바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 낸 것에 대해 만족했기 때문이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Was mich nicht umbringt macht mich stärker."라는 우리 학교 선배의 말처럼, 9학기, 4년 반의 석사과정은 나에게 어떤 힘든 상황에도 흔들리거나 포기하지 않게 하는 마음의 굳은살을 남겼다. 이 굳은살은, 좋은 점수의 석사논문보다, 한 장의 졸업장보다 값진 내 석사과정의 전리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