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제8] 나라도 날 좋아해 줘야지.

by 홍기자 입니다

발목 골절과 인대 파열이 있은지 무려 150일이 지났다.

5달이 지난건데, 아직도 다쳤을 때를 생각하면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영영 못걷는거 아닌가 하고 배겟잎을 적실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수술 10주차니 15주차니 그러고 있다.

목발하고도 내외한지 한달을 꽉 채워간다.


그래도 아프다. 아픈건 아픈거더라.

지난 주 의사선생님을 만나서

저 아직도 걸으면 좀 아픈데, 당연한거죠?

라고 했는데 왜 그게 당연하냐는 낯선 눈빛에

어라, 나 좇으로 진화하나? 하고 식겁했지만


5개월이면 아직 아플때라면서

무리하지 말라신다.

...저도 무리라는 걸 안하고 싶습니다만....


아프다는 핑계로 너무 안움직였더니

가뜩이나 큰 몸이 더 부풀어오르는 것 같다.

술도 한 몫 했을테고, 게으름도 큰 몫 했을테고.


하루 만걸음 정도는 씩씩하게 걸었던 지라

조금이라고 걸어볼까 하고 운동화 끈을 동여매고 나섰지만

결국 4000걸음 정도를 걷고 패배자의 마음으로 집에 들어와야 했다.


너무 힘들기도 했지만

오늘따라 상념이 머릿속에서 나를 자꾸 끌어내렸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불화

그 사이에서 무력하고 이기적이었던 내 선택들

하지만 피하지 못한 상처들

나만 할퀴어진 것 같은 오만함

결국 내가 등신이라는 자책감까지

오늘따라 걸음걸음에 자꾸 박혔다.


울보답게 눈밑 눈물샘이 펌프질을 시작하며 동공충혈까진 갔지만

울진 않았다. 그냥 뭐 울 일도 아니고.


내가 등신일 수 있고

등신인 것도 맞는것 같긴 하다.

수십년째 이어온 내 자아성찰의 최종값이 저거라서.


그래도 조금 달라진게 있다면

이제는 좀 등신이지만 괜찮아, 라고 타일러주고 싶다

아무도 나를 몰라도 나는 나를 알아야 하니까.


주변 반경이 좁아지는게 나이를 먹을수록 확확 느껴진다.

좋았던 사람들에게 너무 서운하기도 하고

별로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느슨한 연결을 통해 나에게 도움을 주기도 한다

인생사가 다 이런 모양이다. 내 노력이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건 극도의 오만이다.


좁아지지만 결코 내가 불화할 수 없는건, 결국 나다.

다리 다쳐서 절뚝거려도 이런 나를 버릴 수가 없다.

좀 찌질해도 나라서, 그냥 같이 가야한다.


이제는 제발 내가 이 진실을 손에 움켜줘야 한다.


그래야 당장 내일 회사에서도 나를 지킬 수 있고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의 악의없는 악의에도 웃어넘어갈 수 있다.


오늘도 아가리로만 이러고

또 내일 해를 맞이하자마자 나를 혐오하겠지만


덜 미워하자 나를.

다리도 다쳤는데 열심히도 살잖아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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