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오랫만에 술한잔 했다.
오늘 유달리 술 한잔 먹고 싶었는데.
맛있게, 즐겁게 먹고 안전하게 집에 왔다.
아직 걸음걸이도 불안전하고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지레 겁먹고 잘 안불러주는데
그래서 그런지 불러주는 자리는 언제나 즐겁다.
지나친 겸손함은 독이라는데
나는 살아생전 겸손을 떤 적이 없다
사실 적시 그대로 그냥 내가 븅신이다.
그런것 치고는 한 직업으로 너무 오래 해먹고 있는 것 같아
염치도 없고, 약간 쑥쓰럽다.
물론 나의 탈언론기는 언제나 투비 컨티뉴지만
어쨋건 밥 빌어먹을 정도는 하고 있구나 하고 적당히 안심하고 넘어간다.
오늘은 내 유일한 취미 중 하나인 키보드 취미를 조금 딥하게 들어가봤다.
일단 왠만하면 내맘에 쏙드는 완제품을 사는 편인데
최근에 산 고가의 키보드 타건음이 너무 맘에 안들어서
좀 정숙한 타건음을 가진 스위치로 바꾸려고 돈도 썼다.
근데 이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
내 키보드는 흔히 말하는 텐키리스에다가 75% 배열이라 키 수가 많지가 않은데
그래도 60개가 넘는 스위치를 모두 뽑아내려다 보니
손이 그야말로 아작이 났다. 너무 아파서 작업을 중단할 정도?
그런데 일단은 소리는 너무 맘에 든다.
좀 덜 눌러도 잘 써지는 느낌?
그런데 그런 것 보다도 내가 처음으로 내 욕구를 좇았다는게 참 좋았다.
완제품은 말그대로 순정이고, 순정은 튜닝의 끝인 만큼 안건드는게 좋다는게
이족 계열의 불문율인데
나는 내 욕구를 조금 더 따라가봤다.
내가 싫은 건 싫은거다. 내가 좋은 소리를 들으면서 작업을 하고 싶어서
부득불 돈을 들여 스위치를 사고, 내 욕구를 만족시키는 결과물을 도출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는데까지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몰랐다.
그리고 이제서라도 찾아서 다행이란 생각이 엄청나게 몰려든다.
키보드 취미 영업하려는게 아니다.
나는 나의 호오를 구분하게 된 이 시점을 알리고 싶었을 뿐이다.
브런치에 끄적이는 이 글이
책이 되지 않아도 좋고
변덕을 부리며 다시는 방문하지 않는 곳이어도 좋다.
하지만 과거도, 미래도 아닌 지금의 내가 이 선택을 했다.
이 선택을 존중하며 살고 싶다.
나는 나의 좋아함을 좋아하고 싶다.
그게 나를 지키는 일임을, 늦게나마 알게 됐다.
그리고 이 글은 열번째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