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제11] 소란스러운 하루.

by 홍기자 입니다

글 제목을 멋지고, 느낌있고, 힙하게 쓰고 싶은데

그럴 역량도 안될 뿐더러 정말 오늘은 그냥 소란 그 자체였던 날이라서 담백하게 가보게 된다.


기자들은 자기 기사도 읽어야겠지만

그보다 두배 세배 더 많이 남의 기사를 읽어야만 한다.

내가 놓친 것을 살펴야 하고, 내가 보지 못한 곳을 살펴준 동료들의 노고를 함께 봐야 하기 때문이다.


아침부터 후배가 쓴 기사가 도청을 핫하게 달궜나보다.

내가 쓴 기사도 아닌데 나한테 이니셜의 주인공을 묻는 전화와 연락이 쇄도했으니.


정책과 제도를 공격하는 기사는 사실 쉽다.

사람을 공격하는 기사는 그 반대로 정말 어렵다.

저 사람에게 치명상이 가해질 것을 예상하고 쓰는 기사는 더더욱 어렵다.


그 어려운걸 기어이 감행한 후배에게 그래 그 사람 문제 많았지

라며 작게 다독여줬다.


기사 파장이 제법이었는지 도청 자체가 들썩였다.

그야말로 오늘의 주인공은 그 후배와 이니셜의 주인공들이었다.


하지만 안다. 그 주목을 받는게 마냥 좋은건 아니라는 것을.

후배도 그걸 알았을 테지만 글을 끝맺었다.


사람이 하는 일이라 언제나 사람 사이의 달그닥 거리는 소리는 끊이질 않는다.

그래서 늘 명심한다.

나는 판사가 아니라고. 기자는 관찰자이자 현상을 인화해 보여주는 목격자일 뿐이라고.

내가 먼저 단죄하면 안된다고.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나는 과연 정말 문제를 지적할 때 스스로 판관이 된 적은 없는지.


왜 없겠나. 당장 몇주전에 쓴 음주운전 공무원이 몰래 직급까지 단 사실을 알고

나는 과연 분노하지 않았는지. 분노하는 마음에 기사 글귀 사이사이에 감정을 싣진 않았는지.


소란스러운 주변의 상황보다

더 소란스러운 내 내면의 소리에 귀가 아플 지경이지만

오늘도 또 하나 배울 수 있음에 작게 안도해본다.


나는 후배의 보도가 여전히 폐쇄적이고 까라면 까라는 관료제에 금을 그어주는 작은 돌팔매질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나는 과연 선배로서 그런 보도에 뒷받침되는 진실을 얼마나 더 발굴할 수 있을지를

아주 깊이 고민하는 숙제를 떠안았다.


정말이지

소란스러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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