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선배와 대화하다가
괜한 호승심을 부리고 있는거 같아요 라고 툭 보냈다.
그래놓고 내 스스로
오 어려운 말 썼네 나자신? 이러고 있었다.
써놓고도 내가 지금 정확히 쓴건지 싶어 서둘러 네이버 사전을 소환했다.
호승심, 하고 검색해보니
명사
1. 반드시 이기려는 마음
이라고 써있었다.
대충 맞게 쓴거 같아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나는 지금 결전을 눈앞에 두지 않았다.
결전의 상황이 올 일도 없을 것이다.
내가 호승심만 부리지 않는다면.
나는 이상하게 뭐가 잘 풀려갈 땐 조용히 뒤에 숨지만
상황이 개판오분전이 되면 쓸데없이 오지랖을 부리곤 했다.
내가 뭘 좀 도울 건 없을까?
내가 좀 나서서 해결될 수 있는 게 있을까? 이러면서 말이다.
조만간 도청 간사를 새로 뽑아야 한다.
규약상 2년의 임기를 채우고도 주변의 승인과 본인의 의지만 있으면 연임정도는 되는 모양인데
지금 여기 상황은 그야말로 초토화. 선배도 지칠대로 지쳐보인다.
이게 꼭 누구 하나만의 잘못이겠나.
그리고 누가 이런 결말을 바랐겠나.
우리가 경쟁자지만, 힘듦을 서로 알고, 토닥여주면서 보냈던 시간들도 있었는데.
분명 있었고, 그걸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데
지금은 모두가 피로하다. 누구때문이 아니고 그냥 이 상황 자체가.
보통 이렇게 엎친데 덮친 상황으로 분위기가 어수선하면
이런 자리를 피하고 싶어한다.
...나부터가 피하고 싶다...
나는 반장도 못해본 사람이다. 참 자랑이다.
나는 욕먹는게 세상에서 제일 두려운 사람이다.
그리고 곧 선출될 간사 자리는 그야말로 욕받이 자리다.
그런데 자꾸 마음이 알쏭달쏭 하다.
기자실에 나보다 훌륭한 분들이 많은데도
혹시나, 하는 마음을 감히 품어본다.
혹시나 이 어려운 상황을 조금이라도 누그러뜨리고 서로 건전하게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내가 만들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 되겠냐고.
사실 출발은
차기 후보군에 여기자 이름이 하나도 들어가있지 않다는 걸 알게돼서다.
그니까, 빡쳤다는 소리다.
지금까지 도청 간사를 여기자가 맡은 적이 없더라.
근데 이게 뭐라고? 이거 그냥 진짜 중간 심부름꾼이자 그냥 유통업자 같은건데.
나 혼자 이미 이 자리가 이렇다, 하고 지나치게 높게 평가하고 있는거다.
그냥 심부름꾼이면, 그 역할을 여기자가 하건 남기자가 하건, 후배기자가 하건, 부장급이 하건 무슨 상관인가.
그래도 잠깐 그 최초 타이틀에 눈이 멀것 같았다.
남자 선배들의 전유물이었던 간사 자리가 나한테 오면?
혹시 나도 먼저 선배들처럼, 비슷하게나마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딱 연차도, 나이도 허리인데 내가 혹시라도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눈이 멀어도 잔뜩 멀었다.
욕먹는게 무서운 인간인데 그 타이틀에 눈이 먼 꼴이라니.
환장하겠다.
이런 글을 쓰면 지나치게 내가 특정될 수도 있다는 위험에도 불구하고 쓰는 이유는
저 망할 '척'을 만천하에 공개해 망신을 당하고
그냥 조용히 살아야 겠다고 다짐하고 싶어서다.
주변인으로서, 조용히 사는게 사실 모두에게 좋고
나에게 가장 좋다고.
그러니까, 그냥 니 할일이나 똑바로 하라고.
무명씨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굳이 겪어보지 않고도 좀 깨닫자고.
내일 갑질 피해자 인터뷰나 잘 다녀오자.
얘깃거리가 되야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