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미치게 하는게 한두가지겠냐만
요즘 가장 나를 긍정의 의미로 미치게 하는 것은 단연 키보드다.
내가 어쩌다 이바닥에 발을 들였을까
하고 후회도 해봤지만 다소 늦은 듯 하다.
사실 브런치에 혼자 숙덕거리게 된 것도
키보드들을 써보기 위해서다.
사뒀는데 안쓰면 아깝잖나.
처음엔 보기 좋은, 그니까 예쁜 키보드가 좋았다.
예쁘다의 기준은 지나치게 모호하지만
일단 알록달록하면 예쁘다고 생각했다.
내 정신연령 이시어....
그런데 쓰다보니 이게 그 알록달록한 것이 키캡이고
그것보다도 키보드를 누를때 소리도 중요하다는 것을
하필 알아버렸다.
몰랐으면 이바닥에 발을 안디뎠을텐데...
가장 대중적인 기계식키보드로 입문했다가
결국 커스텀의 단계까지 오는데 걸린 시간은 불과 4개월이다.
취미를 이렇게 급진적으로 진행하는 경우가 있나 싶지만
이마저도 개인차라고 얼버부리고 싶다.
어제는 술먹고 들어와서
새로 주문한 스위치를 굳이 다 체결해보고 타건까지 하고 잠들었다.
이정도 되면 약간 중독 단계에 왔다 싶다.
어제는 술먹어서 그런가 손가락에서 서걱거림이 안느껴진다고
미간을 한껏 찌푸렸는데
술깨고 지금 이 글을 쓰니 서걱서걱 조용조용 맘에들어 죽겠다.
진짜 돈 만만세다.
키보드 세계엔 가성비란 없다.
비싼 스위치일 수록 만족도는 정비례한다.
싸고 좋은건 이세계에 없다. 하필...
근데 사실 세상 사는게 다 그렇더라
가볍고 좋은건 없다
적당히 묵직하고, 적당히 진중하고, 그리고 서로가 적당히 거리를 가져서
소중한 줄 아는 것들이 결국은 좋더라.
나는 지금 가성비를 놓아주고 있나?
놓아야 진짜 내 인생이 시작된다는 것 정도는 이제 알지만
여전히 가장 가볍고 그저그런 싸구려들에 눈을 돌리게 되는건
본능인지, 내 처지인지.
가성비가 없는 키보드의 세계에서
나는 뭘 선택하고 있는지
되물어본다.
키보드는 이제 그만 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