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기자, 라고 할 때의 동료기자는 뭐
어우렁더우렁 비슷한 출입처에서 비슷한 연차를 가진 기자들을 뭉뚱그려 말하는 거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나 애정이 가는 건
나와 같은날 기자일을 시작한 입사동기 뿐이지 싶다.
전혀 다른 세상에서
전혀 다른 사람들과
전혀 다른 시간을 통과해 온 두 사람이
같은 날 같은 회사에 입사해
같은 날 동료로 새 세상에 발을 디디게 될 확률을 헤아려보면
그 확률 자체가 기적일 수 밖에 없다.
11년 전, 편집국장실에서 만난 우리 둘에게
편집국장은 따뜻한 목소리로 당부를 했다.
살다보면 입사동기 만큼 좋은 존재는 없을거라고.
너희가 너희를 돌보게 될 것이라고.
나이도 다르고 성별도 다른 입사동기와
처음부터 죽이 잘 맞아 잘 지냈다면 참 좋았겠지만
수줍음도 많고 질투도 많은 나와
남에게 신경쓰는 일을 귀찮아하는 동기가 친해지기까진
아주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 시간의 대부분은 나의 열등감으로 채워졌다.
이상한 변방 부서에서 기자일을 시작한 나와
메인 부서에서 기자일을 시작한 동기는
출발선은 같았을지 몰라도 점차 기자사회 안에서 벌어지는 격차를 감당해야 했다.
특히 그 격차의 상향곡선은 내 동기만 차지한 것 같았다.
새벽에 눈떠 경찰서를 돌며 명함도 안받아주는 경찰들에게 세번, 네번 찾아가며
사건 단신 하나를 얻으려 진땀빼야 했던 내 동기의 어려움은 쉽게 지워버렸다.
오로지 나만 그 메인스트림 안에 들어가지 못함을 한탄하며
남의 노력을 쉽게 단정짓곤 했다.
겨우 그렇게 나의 열등감을 가리며 살았다.
분명 내 동기도 그걸 알았을텐데도
단 한번도 자신의 일을 과대평가하지도, 지나치게 깎아내리지도 않고
그저 묵묵히 기복없이 자신의 일을 돌보고, 나를 돌봤다.
편집국장의 예언처럼.
아이를 낳고 키우는 과정에서 기자일을 잠시 떠나있던 나에게
기회를 쥐어준 것도 내 동기였다.
다시 세상에 나오는게 겁나던, 여전히 내가 나를 믿지 못하던 그때의 나에게
할 수 있다며, 너 잘 해왔으니 다시 복귀해도 잘 할거라며
기꺼이 다른 회사에 나를 추천하며 나를 이 세계로 편입시켜준 것도
결국은 내 동기였다.
다시 낫놓고 기역자부터 배워야 했던 내 눈에
공백 없이 자리를 지켜온 내 동기의 성장은 눈이 부셔서 바라 보기도 어려웠다.
그런데 이제 그게 질투가 나지 않더라.
그제서야 내 동기가 버텨온 시간들이 온전하게 왜곡없이 바라봐졌다.
우리가 각자가 발 디딘 곳에서 최선을 다했구나.
이제는 어엿한 중견 연차가 되서
나를 도왔듯 주변을 도우면서 자기 역할을 넘치게 잘해내고 있구나
저렇게 멋진 사람이 내 동기였구나.
누가 되지 않게 나도 멋있게 살아야겠구나. 하고 다시 나를 키워냈다.
그렇게 함께 다시 동료가 되서 걸어온지 올해로 5년이다.
햇수로 6년차에 접어든 나는 아직도 내 동기에게 말한다.
기자님 나 아직도 나는 날 소개할 때 000 기자 동기라고 해. 그게 아직도 먹혀.
라고 하니
무슨소리세요, 내가 이제 홍기자 동기라고 하고 다니는데. 라며 너스레를 떤다.
그 너스레를 오래동안 듣고 싶다.
내 동기의 성장이 미쁘기만 하다.
내가 이 거지같고 희망없는 언론 바닥에서
겨우 한소쿰의 희망을 찾자면
결국 내 동기의 성장을 바라보는 일 뿐이라고.
얼굴 보고는 못하는 쑥쓰러운 고백을 이렇게라도 털어놔본다.
이게 내가 오랫동안 내 동기를 부러워하고 질투했던 것에 대한
시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