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제31] 책에 진심인 동네에 산다는 것.

by 홍기자 입니다

내가 사는 지역은 자칭 타칭 책의 도시다.

십수년전엔 그정도까진 아니었던것 같은데

인문학적 소양이 있는 자치단체장이 들어섰던 민선 7기 시절부터 점점 책에 진심이 되더니

지금은 10개가 넘는 도서관들도 각자의 개성을 살려 다시 태어났다.

작은도서관들의 부흥은 반가울 지경이고.


무엇보다도 책 관련 행사가 부쩍 늘었다.

특히 여름마다 찾아오는 독립서적 북페어는

다른 지역에서 보기 힘든 이곳만의 정체성이라 자부한다.


이 지역에서 열리는 영화제도 인디영화부터 독립영화 등 소수의 목소리를 담은 이야기들을 전하며 확고한 색깔을 가지게 됐는데, 이 북페어도 서울의 국제도서전에 못지 않은 규모로 커지기만을 바랄 뿐이다.


작년에도 했다던데 나는 것도 모르고 멍청하게 한해를 보냈고

올해는 기필코 가보겠다는 신념 하나로

이 무더위를 뚫고 갔다.


정말 많은 독립출판사들이 이곳을 찾았다.

지나치게 협소한 공간인게 좀 아쉬웠지만

이들의 책을 만져보고, 저자와 출판직원들이 직접 나서 책을 홍보하는 것을 듣고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특히 기자 출신의 두 작가분이 열렬히 책을 홍보하는 곳은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기자였다가 책을 만드는 사람이라니.

완전 내 미래였으면 하는 모습이라니.

수줍게 나도 지역에서 기자일을 한다고 하니 눈이 동그래지며 반가워 해주시는 그 모습까지도 소중했다.


여자로서, 엄마로서 기자일을 해 나가는게 얼마나 힘든지

긴 말 하지 않고도 공감해주시는 두 작가님 덕에 힘을 얻었고

기꺼이 개인 명함을 주며 기사쓰느라 애쓴다는 말도 버릴 것이 없었다.

그 부스에서 파는 단 두권의 책을 안살 수 없었다는 말도 덧붙이며.


독특한 부스도 있었다.

단어나 상황을 알려주면 즉석으로 시를 써준단다.

그것도, 내가 환장할만한 옛날 타자기로 말이다.

자음과 모음이 서로 엇갈리며 독특한 느낌을 내는 타자기에 시가 쓰인다니.

것도 무료로 써준다니. 얼른 서야지.


간단한 설명을 드리며 그 단어를 선택한 이유를 듣자

잠깐 눈을 깜박이던 작가님은

그새 톡톡 종이를 치며 뭔가를 써내려간다.

행여 잉크가 뭍을까 호호 불어 작은 투명봉투에 넣어주는 작가의 세심함을 보니

저런 마음이 있어서 시를 쓸 수 있는거구나,

나처럼 삭막한 사람이 겨우 기사를 쓴다면 저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 시를 쓰는구나 울컥했다.


그렇게 받아든 결과물은 더더욱 내 마음을 쿵 움직였다.


내가 드린 시제는 키보드였다.

태어나서 처음 가진 취미라 참 신난다고, 그 말만 건넷을 뿐인데

나의 행복까지 빌어주는 내용이 담긴 시를 받아들 때의 마음을

도대체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표현력이 버석버석한 나로서는 자꾸만 한계에 부딪힌다.


책을 사랑하는 동네에서

책을 만드는 사람과, 만든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한데 모이는 일이

어디 그렇게 쉬운 일일까.


1년에 단 3권도 안읽는다는, 출판업계가 사양산업이라는 말이 매년 흘러나오는

이런 나라에서

이 조그마한 나라에서

더 조그마한 지역이

그건 아니라고, 누군가는 책을 읽고, 그 책을 만들고, 그 책을 소비한다고.

그것이 정체성인 지역도 있다고.

공장도 적고, 일자리도 적고, 돈도 적은 곳이지만

적어도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 많아 다 부족하진 않다고.

그곳이 내가 사는 지역이라고 말할 수 있음에

유달리 마음이 자꾸만 촉촉해지는 하루였다.


결국은 읽는 사람이 될 수 밖에 없는 나의 운명에 대해서도.


전자책이 밀려드는 지금에도

여전히 물성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펴내는 종이뭉치의 가치를

오래도록 기억하는 내가 되길.


그리고 그런 동네에서 오래오래 살 수 있길.



keyword
작가의 이전글[발제30] 보통의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