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제32] 스트레스, 안받으면 그만이야.

by 홍기자 입니다

엄청 예전에 봤던 티비 프로그램이었는데

정말 인상적인(?) 어느 한 마디를 잊지 못해 그 기억을 잠깐 소환해본다.


악독한 시어머니 캐릭터를 자주 맡아 온 한 여배우는

예전엔 스트레스 라는 외국어말이 없어서 다들 스트레스 같은거 모르고 살았는데

그 말이 들어와서 다들 스트레스 받는다고 떠들고 다니는 거란다.


스트레스가 뭔지도 모를 나이었지만

그 말을 듣자마자 파 하고 웃어버렸다.

저렇게 합리화를 하면 적어도 저 사람만큼은 스트레스를 안받긴 하겠다 싶었다.


사실 사람들중에 스트레스를 정확히 해석하고 이해해서 쓰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조금만 짜증나도,

조금만 답답해도,

조금만 화가나도,

그냥 스트레스 받는다고 한마디만 하면 된다. 그걸로 충분히 퉁칠 수 있다.

그렇다면 사실 엄청 효율적인 말 아닌가?

이쁘다고 쓰담쓰담 해줘야 하지 않나 싶다.


정말 스트레스가 극악으로 치닫는 기분이다.

뭐가 힘들어? 하면 사실 뭐..이것저것 하고 웅얼거리는 게 다겠지만

지금의 나는 상당히 정신적으로 지쳐있다.


정신이 지치고 지치다보면

바로 몸으로 테가 나버리고야 마는 나는 현재 끙끙 앓는 중이다.


취미생활도 시선도 돌려보고

예쁜 내새끼들 안고 뒹굴거리면서도 풀어보지만

자꾸만 뭔가가 단전 밑에서부터 차곡차곡 오물이 쌓여가는 기분이다.

배수처리시설은 고장이 난 채로.


풀어야겠지.

어디가서 소리를 지르건, 원없이 잠 좀 자건.


그런데

그냥, 이걸 안받으면 되지 않을까 싶더라.


좋아하는 작가 중 한분인 김신지 작가가 쓴 책엔

작가의 엄마가 해준 말이 나오는데

그 말이 걸작이다.


"야야, 스트레스 그거 받지 말아라. 그거 안받을라카믄 안받는기라."


내가 수동적으로 삶을 살지 않고

내가 주체적으로 능동적으로 삶을 산다면

그깟 스트레스, 진짜 안받을 수 있겠다 싶은거다.

내가 안받겠다는게 지깟게 날 어쩌겠는가.


그래서 가슴이 꽉꽉 막히고

울고 싶어질 때마다 남의 엄마가 한 말을 붙잡고 중얼거렸다.


나 안받아. 주지마. 스트레스 안받을거야. 너가 나한테 줄지 몰라도 내가 안받을거야 반사야.


그렇게 쳐내고도 남은 스트레스가

내 몸 곳곳을 훑고 지나간다.

속에선 탈이 났고 피부는 땅땅하게 당기면서 내 몸을 들들 볶는다.


하지만 이정도로는 죽지 않는다고

내가 앞으로도 스트레스를 안받을 예정이라 괜찮다고

너무 힘들면 좀 걸으면 된다고

사람 죽을 만큼의 스트레스 같은거 내가 허상이라고 여기겠다고.


내가 나를 잃는 일 같은건

스트레스 따위가 관여할 수 없게 하겠다고.


가장 하기 싫었던 일을 주말동안 처리했다.

기사는 내일 천천히 마감하련다.


하루짜리 생명력을 가진 글쪼가리에게

내 존엄을 투영하지 않을거야.


이 망할놈의 업계를 떠나긴 떠나야는데.

오늘도 결국은 돌돌퇴사무새가 되고야 만다.

돌고 돌아 퇴사하자 퇴사시켜주세요 퇴사당하고 싶다를 외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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