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당근, 이라고 이름을 줄였지만
초창기는 당근마켓이라고 불렸지. 직관적이고 좋았는데.
왠 당근인가 했는데
당신의 근처에서 중고거래를 이어준다는 의미로 지어졌다는데
그래서인지 나도 당근마켓에 맛들인 이후엔
중고나라는 아예 빠이빠이 한 상태다.
근처여서 거래가 한결 편해졌고
물욕이 있는 난 그야말로 물만난 고기처럼 이것저것 사고 팔았다.
하지만 모든 사업이라는 것이 그렇듯
덩치를 키워갈수록 이상한 사람들이 늘어갔다.
무례한 인간은 자가증식 수준으로 늘어갔고.
나는 보통 팔아도 그만, 안팔아도 그만인 물건들만 당근에 올린다.
그렇게해야 안팔려도 상처를 안받고 팔면 기뻐지기 때문이다.
열심히 사모은 키보드들 중 최정예 멤버만 남기고 처분을 시작했다.
난 당근에 글을 올릴 때 나한테 두번 물어보는 일 없게 상세히 적은 후
반드시 사주세요 모드의 딱 반대 지점인
안팔리면 제가 쓸거니까 진상, 애눌 안받습니다. 라고 딱딱하게 마무리 한다.
그런 의미에서 자영업자들 진짜 존경스럽다...
사서 몇번 만져보지도 못한 키보드를 나름 저렴하게 올렸더니
바로 연락이 온다.
근데 이상하다. 쿨거래를 해준다는데, 심지어 우리 집 근처까지 와준다는데
이상하게 안반갑다. 채팅을 주고 받으면서도 이상하게 개운하지가 않다.
전문용어로, 쎄한 거다.
하필 내가 와준다는 시간에 집에 없어서
미안한 나머지 내가 내일 오전중에 가져다 줘도 되겠느냐며
구체적인 시간까지 명시했더니 다 좋단다.
다 좋다는 사람 앞에서 나는 키보드를 파는 일이 원래 목적임을 잊지 않기 위해
나답지 않게 상냥상냥 모드를 펼쳤다.
그리고 거래일인 오늘.
이런 쎄한 인간들은 다시한번 거래를 주지시켜줘야 하기 때문에
다시 아침부터 연락했다. 이때 갈건데 괜찮느냐고.
역시나 30분이 넘도록 답이 없다.
그래서 9시 이전까지 답이 없으시면 저는 거래 의사 없다고 보겠습니다.
라고 보내자마자 방금 일어났단다.
이쯤되면 그냥 속는 척을 할 수 밖에 없다.
사실 이미 차 시동을 걸 때 이 거래가 해피엔딩으로 끝나진 않겠다는 작은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도착했다는 문자를 보내고
20분간 그저 더워지는 차 안에서 기다리고 기다려봤다.
나 부터도 당근거래하며 크고작은 실수들을 했을텐데
그걸 받아줬던 맘 좋은 거래자들이 스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너무 순진했다.
20분을 넘겨서도 답이 없어 결국 시동을 다시 키고 채팅을 보냈다.
거래는 없던 일로 하겠습니다.
기가막히게 그때 다시 문자가 온다
아침에 나와 문자를 하고 깜박 잠들었단다.
멍청한 애들은 거짓말도 멍청하게 친다.
으이구 뻔해.
대꾸할 가치가 없어서
그냥 바로 신고팀에 신고를 넣고 차단을 박아주었다
아주 꼼꼼하게 오바로크 쳐서.
아침부터 왠 재수가 옴붙었나 싶다가도
그래 저새끼 덕에 내가 아침 공기도 마시고 좋네 하고
원영적 사고를 풀가동해봤다.
그렇다고 마음속 분노가 갑자기 사라지진 않았지만
본적도 없는 새끼를 계속 미워하는 것 보다는 덜 힘들어서.
무례한 당근러에게 웃어줄 여유는
최저시급 받는 일반 직장인에겐 없는 능력이다.
너 꼭, 모든 일을 그런식으로 하면서 서서히 스며들듯 망해라.
꼬옥 그래라.
특정 성별과 특정 나이대에 대한 안좋은 편견만 가득해진 하루였다.
우울한 발제, 좋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