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바보 Nov 29. 2022

초등학교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초등학교

 1학년 웅변학원에 나간 첫날처럼 초등학교의 첫날도 역시나 낯선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아무 말 없이 그저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같은 웅변학원을 다닌 여자아이와 등하굣길이 같아 함께 다니곤 했는데 초등학교 1학년 남자애들 사이에서는 놀림거리가 되었다. 여자아이는 새로운 친구를 사귀기도 하고 이사를 가며 자연스레 멀어졌다.


 아이들의 놀림으로 시작된 초등학교 생활은 나도 모르는 괴롭힘으로 가득했다. 나는 조금 심한 장난이라고 여겼던 것들이 부모님은 심각한 괴롭힘으로 보았다. 엄마가 말해준 두 가지의 기억이 있는데 한 가지는 여자애가 한쪽 팔을 전부 꼬집어 멍과 피멍이 든 상태로 집에 갔던 것이다. 이때 당시에 교실에서 여자애가 아픈걸 잘 참는다며 손목을 잡고 팔 전체를 계속 꼬집었는데 나는 이걸 아픈걸 잘 참는 장난이라고 생각했고 팔이 왜 이런지 묻는 엄마에게도 아픈걸 잘 참는 장난을 한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또 한 가지는 수업 중에 친구가 옷을 찢은 일이었는데 이때 일은 엄마가 정말 많이 속상해하셨다. 아빠가 동생과 나에게 새로 사준 잠바를 입고 학교에 갔는데 친구가 옷을 샀냐며 말을 걸었고 친구는 칼을 샀다며 옷을 찢어봐도 되냐고 웃으며 말했다. 그에 나는 안 된다고 말했고 수업시간에 뒤에 앉았던 친구는 칼로 옷을 조금씩 찢기 시작했다. 선생님 앞이라 아무 말도 못하고 그렇게 옷이 찢어진 상태로 집으로 갔다.


 이때 당시 살던 집의 환경이 그리 좋지 못하다 보니 청결상태도 좋지 않았다. 잘 씻지 못하고 같은 옷을 며칠씩 입는 것이 놀림거리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엄마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학교 선생님에게 뭐라도 드리며 말을 했어야 됐는데 집에 돈이 없어 미안하다고 말을 했고 이러한 일들을 계기로 합기도를 배우게 되었다.


 2학년 나는 초등학교는 물론 학교 선생님들 대부분을 비정상 사이코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중 정상적인 선생님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비정상적인 선생님들이 담임이었고 그 시작은 2학년 담임 선생님이다. 초등학교 2학년 때의 교실 분위기를 생각하면 2학년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게 매우 정숙하고 어두웠다. 그럼에도 몇몇 장난치고 떠드는 아이들이 있었지만 이를 담임 선생님이 보게 되면 연대책임으로 반 아이들 모두 다 함께 혼났다.


 담임 선생님의 체벌 방식은 책상 위에 올라가 무릎을 꿇고 앉으면 발바닥을 때리는 것이었는데 모든 반 학생이 맞을 때까지 내려올 수 없었다. 30명 정도 되는 반 아이들을 모두 때린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인데 한 대씩 맞는 것으로 시작해서 마지막에는 72대가 되었다. 72대를 때릴 당시 선생님은 임신을 해 배가 불룩했는데 그럼에도 모든 반 아이들을 다 때렸다. 이때 당시 선생님들을 생각해보면 본인이 받는 스트레스를 우리에게 폭력으로 풀었던 것 같다.


 3학년 학교에 새롭게 부임받은 선생님이 우리 반의 담임 선생님으로 왔다. 처음 본 선생님은 슈퍼맨 같이 덩치가 좋았는데 말 수는 적었지만 체벌이 없어 인기 많은 선생님이었다. 반 아이들을 잘 신경 써준 덕분에 분위기도 좋고 방과 후 활동도 하게 되었다. 방과 후 활동은 컴퓨터를 배우는 것이었는데 방학 때도 2주 정도 진행되었다. 컴퓨터 선생님도 아이들을 때리지 않고 눈높이를 맞춰 잘 어울렸는데 가끔 자유 시간을 주며 함께 게임을 하기도 했다. 선생님은 아이들과 함께 테트리스를 했고 가끔은 지브리 애니메이션을 틀어주었다. 이렇게 좋은 분위기가 형성되니 수업도 잘 따랐고 집에 가서 배운 것을 연습해볼 정도로 참여도도 높았다. 하지만 게임을 한 것이 소문이 나면서 방과 후 활동에서 컴퓨터 수업은 사라졌다.


 4학년 합기도를 다니면서 자신감도 많이 생기고 어울리는 친구들도 생겼다. 드라마 야인시대가 유행하던 때인데 친구들과 각자 역할을 맡아 상황극을 하며 놀았다. 딱지 치기도 함께 유행했는데 나는 딱지치기의 실력으로 소소한 용돈 벌이를 했다. 딱지를 이기면 상대방 딱지를 갖는 것인데 거의 한 상자를 모았다. 그중 좋은 딱지들을 선별하거나 만들어 판매를 했다. 판매 리스트를 보면 바닥에 딱지를 비벼 허름하게 만든 잘 넘어가지 않는 거지 딱지, 딱지를 두 겹으로 접어 잘 넘어가지만 힘이 좋은 파워 딱지, 앞의 두 가지 기능이 적절하게 있는 물딱지 등이 있다.


 딱지 유행이 끝나고 나서는 포켓몬 스티커가 유행이었는데 종류별로 공책에 모으기도 하고 희귀 종류는 판매하기도 했다. 그러다 흔한 종류와 희귀 종류를 묶어 팔았고 그 뒤에는 메이플 스토리 고무 딱지와 디지몬 카드 등을 팔며 소소한 용돈벌이를 이어나갔다.


 5학년 여전히 조용하고 내성적인 성격이었지만 괴롭힘을 당하던 입장에서 괴롭힘을 행하는 입장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합기도를 다니다 보니 괴롭힘에 대항하기도 하고 일부러 시비를 거는 친구들도 생겼다. 이간질해 싸움을 부추기기도 했는데 이렇게 많이 싸우다 보니 어울리는 무리가 생기고 무리가 생기니 자연스레 친구들을 괴롭혔다. 친구들이 누군가를 괴롭히거나 놀리고 있으면 그곳에 가 말리는 것이 아닌 합세를 했다. 나보다 더 가난한 친구를 괴롭히고 생긴 게 다른 친구를 따돌리고 모자란 친구를 놀렸다. 괴롭히고 따돌리던 친구들이 아빠와 외삼촌의 지인이었는데 자신의 자식과 잘 지내라는 말에 양심의 가책을 느꼈지만 학교에서 그들을 보호하거나 친구들을 말리지 않았다.


 이때 당시 담임 선생님은 체육 선생님이었다. 줄넘기에 미친 사람이었는데 수업 시간에 줄넘기 대회 영상을 보여주고 쉬는 시간엔 줄넘기를 시켰다. 반 아이들 모두 줄넘기를 했고 줄넘기를 하지 않거나 말을 안 듣는 애들은 손가락으로 코를 꼬집어 딸기코를 만들었다. 그리고 줄넘기에 미친 선생님은 교내 줄넘기 대회를 만들었고 1,2,3등 모두 우리 반에서 나왔다. 1등은 250개, 2등은 200개 정도 3등은 100개 정도였다. 나는 70계가 최고 기록이었고 대회에서는 70개도 못했다.


 담임 선생님이 딸기코를 만들면 자존심도 굉장히 상했다. 딸기코가 되면 아이들의 놀림도 함께 따라오기 때문이다. 누가 되었던 딸기코가 되면 놀림을 받았다. 심하며 코에 멍이들기도 했는데 이는 옆반 담임에 비하면 양호했다. 옆반 담임 선생님의 별명은 미친 사이코였는데 노처녀 히스테리를 우리에게 모두 다 풀어버리는 느낌이었다. 쳐다만 봐도 미친 사람처럼 발광을 했는데 어떻게 선생님이 된 건지 신기할 정도다. 담임 선생님들 뿐만 아니라 교감 선생님도 비정상이었는데 인사를 안 했다고 그 자리에서 뺨 싸대기를 때렸다. 어느 날은 화단의 경계에 있는 돌을 밟고 놀았는데 화단을 밟았다며 뺨을 떄렸다.


 6학년 잦았던 싸움이 줄어들고 어울리는 친구들도 많아져 친구들 집에 자주 놀러 다녔다. 친구들 집에 놀러 가면 하루 종일 게임을 하거나 장난감을 가지고 놀며 심지어 밥도 얻어먹었다. 가끔 눈치를 주기도 했는데 눈치를 보지 않고 놀고 싶은 만큼 놀다가 갔다. 이런 나도 가만 보면 비정상 같다.


 영어에 대한 벽과 두려움이 생긴 계기가 있는데 영어 수업시간에 일어난 일이다. 가까운 친척 중에 미국 할아버지라고 부르던 분이 계신데(외할머니 동생의 남편) 한국에 계실 때 종종 나를 무릎에 앉히고 영어를 가르쳐 주었다. 알파벳과 기초 영단어를 가르쳐 주었는데 이게 영어 수업 시간에 빛을 보였다. 반 아이들 한 명씩 돌아가며 발음을 시켰고 나의 차례에 나의 발음은 아주 나이스 했다. 문제는 영어 선생님이 발음이 좋다며 다시 발음을 시켰고 모두의 집중을 받은 나는 엉성한 발음이 나왔다. 이에 몇 번 더 시키더니 자신이 잘못들은 것 같다며 창피를 주고 두 번 다시 시키지 않았다. 이로 인해 나는 영어만 보면 피하게 됐고 미국 할아버지가 와도 전처럼 영어를 배우지 않았다.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잔잔하고 소소한 기억도 많은데 좋지 않은 기억들이 너무 강하게 남았다 보니 자연스레 그 기억들에 초점이 맞춰졌다. 소소한 기억들을 살펴보면 과학 시간에 나온 플라나리아를 찾겠다며 자전거를 타고 1시간이 넘는 계곡을 가기도 했고 수련회를 갔을 때는 짝사랑하는 친구랑 말이라도 섞어보기 위한 노력을 하기도 했다. 소풍에 가서는 보물 찾기와 물총 싸움을 하고 학교 전설이 사실인지 알아보기 위해 밤 12시에 학교를 찾아간 적도 있다.


 폭력과 괴롭힘 그리고 피해자에서 가해자의 역할까지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행동들과 뒤늦은 반성 후회하며 다시 되돌아가 바로잡기보다는 다시 돌아가기도 싫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내가 좋아하던 소소한 기억들 마저도 여기에서는 그저 묻혀버렸다.

작가의 이전글 어린이집이 아닌 웅변학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