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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바보 Nov 22. 2022

어린이집이 아닌 웅변학원

달님반

어린이집이 아닌 웅변학원

 7살이 되던 해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이 아닌 웅변학원을 다녔다. 어린이집처럼 운영되었던 것 같은데 햇님반 달님반이 있었고 공부하는 시간과 점심시간 그리고 자유롭게 노는 시간이 있었다. 웅변학원이라는 이름답게 웅변을 하는 아이들은 놀이시간에 따로 모여 웅변 연습을 했다. 이러한 사실들을 알기 전 웅변학원을 간 첫날은 모든 게 낯설었다. 습한 공기와 간식품은 어린아이들의 냄새, 자연광 없는 침침한 백색 조명, 처음 배정받은 자리에 덩그러니 놓여 알 수 없는 웅성거리는 소리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엎드려 울기 시작했다.


 멀리서부터 시래기국 냄새가 풍겨온다. 점심시간이 시작되고 식사를 마친 아이들은 앞에 모여 아기공룡 둘리 극장판을 시청한다. 책상에 엎드려 하염없이 울기만 하던 나는 점심식사를 거부했고 선생님들은 점심을 안 먹으면 아기공룡 둘리를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그 말에 나는 깨작거리며 밥을 먹기 시작했고 아기공룡 둘리가 끝날 때쯤 식사를 마쳤다. 웅변학원에서의 첫날은 눈물로 시작해 눈물로 끝이 났고 나는 그저 엄마가 보고 싶었다.


 다행히도 다음날부터는 친구들과 어울리며 적응하기 시작했다. 같은 동네에 살던 동생들도 알게 되었고 무엇보다 선생님들이 친구들에게 말을 걸고 어울릴 수 있도록 노력해주신 덕분이다. 등하굣길이 같았던 여자인 친구들과 놀 때는 주로 소꿉놀이나 병원놀이를 했는데 나의 역할은 항상 아빠, 아기, 환자를 번갈아가며 했다. 이럴 때면 남자애들이 여자애들이랑 논다고 놀리기도 했는데 어떠한 계기로 남자애들과 친해져 블록으로 무기를 만들거나 높은 곳에서 공 풀장으로 뛰어내리며 놀았다. 그리고 종종 공 풀장에 떨어진 동전이 있나 바닥을 헤집고 다니기도 했다. 500원 짜리라도 발견하는 날이면 뿌셔뿌셔 양념치킨 맛을 사 먹으며 행복해했었다.


 웅변학원에 적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동생도 함께 다녔다. 동생은 햇님반 나는 달님반이었다. 놀이시간에 동생이 누군가를 따라다니며 형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궁금해서 가보니 동생이 '야'라고 부르던 아이가 '형'이라고 부르면 과자를 준다는 것이었다. 이에 질세라 나도 형이라고 부르며 과자를 달라고 했다. 그때 동생이 형이 형인데 왜 형이라고 부르냐 말했고 이를 들은 과자를 가진 아이는 자신이 동생인데 형이라고 부르는 게 싫다며 과자를 주지 않았다. 나는 과자를 받은 동생이 부러우면서도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웅변학원에서는 계절에 따라 야외수업을 진행했다. 봄에는 소풍을 가고 여름에는 냇가에서 물놀이를 하고 가을에는 들판을 돌아다니며 메뚜기를 잡았다. 그리고 겨울에는 웅변학원 뒤편에서 눈사람을 만들고 눈싸움을 하며 놀았다. 정확한 기억인지 모르겠지만 가을 들판에서 메뚜기를 잡아가면 원장 선생님이 참치캔에 메뚜기를 담아 구워 먹었던 기억이 있다. 이때 당시 메뚜기나 곤충, 벌레들을 엄청 잘 잡았는데 손바닥만 한 방아깨비를 잡아 친구들에게 자랑하기도 했다. 여름에는 냇가에서 물놀이를 할 때면 남자애들은 벌거벗고 놀았다. 그게 참 부끄럽고 싫었는데 어릴 때 앨범을 보면 냇가에 누워 조약돌로 소중이를 가리고 부끄러워하며 찍은 사진이 남아있다. 지금도 그 사진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어느덧 학예회 기간이 다가와 웅변학원에서는 연습실을 빌려 율동 연습을 했다. 연습실이 할머니 집 근처라 연습실로 가야 되는 날이면 할머니 집에서 잤던 기억이 있다. 율동은 창밖을 보라 캐롤을 연습했는데 아직까지도 창을 닦는 모습의 율동을 기억하고 있다. 율동 연습을 하고 쉬는 시간에 어린이들의 핫이슈인 누군가가 화장실에서 똥을 싼다는 이야기가 퍼졌다. 그 말에 확인해보겠다고 화장실에 가 문을 열어보니 한 친구가 힘을 주고 있었고 그 모습을 본 나는 엄청 놀리기 시작했다. 이에 친구는 울기 시작했고 나는 선생님들에게 된통 혼나고 나서야 놀리는 것을 멈추었다. 어릴 때는 왜 이런 게 재밌고 놀림거리가 되는 것인지 이러한 일은 중학교 때까지 지속된다.


 학예회가 열렸을 때 파란색 쫄쫄이 옷을 입고 창밖을 보라 율동을 했다. 그 뒤에는 훌라후프를 활용한 율동을 했고 마지막 즈음에는 한복으로 갈아입고 꼭두각시 춤을 추며 학예회가 끝났다. 나는 내가 안 틀리고 잘했다고 생각했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혼자서만 반대로 추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 앞이라 몸이 굳어 어물쩡 거리기도 했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공부도 항상 나머지 공부를 해서 삼촌이 매번 나머지 공부를 한다고 놀리던 기었도 있다. 낯가림이 심해 말없이 조용히 있으면서도 온갖 사고의 중심에는 항상 빠지지 않았는데 어른들이나 새로운 사람 앞에서만 조용할 뿐 머릿속엔 온통 장난치고 놀 생각밖에 없었다.


 한 달에 한 번 생일인 아이들을 모아 단체 생일파티를 했다. 그 달에 생일인 아이들에게는 사탕 목걸이를 만들어 걸어주었고 큰 생일 상을 차려 함께 사진도 찍었다. 주스와 과자를 먹고 만화를 보며 자유롭게 놀다가 집에 갔다. 마지막 웅변학원 졸업식이 있는 날에는 학사모를 쓰고 한 명씩 사진을 찍어주며 끝이 났다.


 웅변학원에서의 생활은 달님반 선생님의 관심과 사랑이 있었기에 잘 마칠 수 있었다. 어느 날 달님반 선생님이 아파서 안 나온 적이 있는데 기도하면 빨리 낫는다는 말을 듣고 그날 이불속에서 밤새 기도를 하다 잠든 적이 있다. 다음날 학원을 가니 달님반 선생님이 있었고 나는 나의 기도가 이루어졌다며 마음속으로 엄청 기뻐했다. 내심 내가 기도해서 선생님이 빨리 나은 거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낯가림이 심해 그럴 수 없었다. 


 웅변학원 졸업 후에도 길에서 달님반 선생님을 만나면 인사를 하곤 했는데 시간이 지나 웅변학원이 사라지고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서서히 잊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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