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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현 Jan 10. 2019

모두가 관객이 될 수 있는, 그날을 꿈꾸며

배리어프리(Barrier-free) 공연을 아시나요?


이 글은 한 포털사이트 뉴스 기사의 댓글에서 시작되었다. 평소 문화예술 분야에 관심이 많은 필자는 영화, 공연, 전시, 미술 등 다양한 글들을 잡독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날 읽은 한 기사는 2018년 11월 12일 연합뉴스에서 만든 카드 뉴스로, '배리어프리(Barrier-free)'가 주제였다. 헤드라인은 아래와 같았다.


시청각장애인들도 영화를 볼 권리가 있어요!


보는 이마다 생각이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청각장애인이 영화를 본다고? 눈이 안보이거나, 귀가 안 들리는 사람이 어떻게 영화를 봐?', '아니, 자기가 영화나 공연을 보기를 원하면 가서 보면 되는 거 아냐?', 또는 '그래, 장애인들도 영화를 볼 권리가 있지, 그런데 어떻게?'. 문화예술계에서 배리어프리는  큰 화두 중 하나다. 하지만 배리어프리에 대한 개념과 방향성, 그리고 사례들이 일반적으로 잘 공유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이에 대한 오해와 억측이 난무하기도 한다. 위의 카드 뉴스 댓글 중 한 댓글을 소개한다. 원문 그대로 소개할 수는 없어서, 약간의 정제 과정을 거쳤다.


권리에 대한 요구는 그것이 침해받을 때 호소할 수 있는 것이지, 자기 하고 싶은 거 하겠다고 내세우는 게 권리가 아닙니다. 다리 한쪽이 없는 장애인이 나는 한 다리로 걷는다고 한 다리 전용 길을 만들어 달라고 하는 건 오히려 두 다리를 가진 이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입니다.


필자의 관점에서 저 댓글에는 하나의 '오류'와 하나의 '오해'가 있다. 첫 번째로 '오류'는, 권리는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주장'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저 뉴스 속에서 시청각장애인들도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그들의 권리는 '주장'하는 것이지 감정이나 관용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두 번째로 '오해'는, 배리어프리는 모든 텐츠의 기준을 장애인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들이 향유할 수 있는 별도의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배리어프리는 두 다리 가진 사람만 갈 수 있는 곳에 한 다리만 가진 사람도 갈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주는 것이지, 모두가 한 다리로 걷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저 댓글은 장애인들의 권리와 평등에 대해서 너무 모르는 사람이 쓴 것 같다고? 저 댓글이 위 카드 뉴스에서 가장 많은 공감을 받은 댓글이었다. 공감 수는 무려 1,236개.




배리어프리(Barrier-free)가 뭔데요?


대한민국 헌법 제11조 1항에는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며 문화적 권리가 헌법적인 권리임을 명시하고 있다.  또한 UN장애인권리협약30조에 따르면 당사국은 장애인의 창조적, 예술적, 지적 잠재력을 계발하고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기 위하여 적절한 조치를 취한다.”라고 규정함으로써 국가에 대한 장애인의 문화적 권리 보장을 권고하고 있다.



배리어프리(Barrier-free)는 말 그대로 장벽(Barrier)을 없애는(Free) 것이다. 필자는 문화예술에 관심이 많기에, 문화예술로 예를 들어 이야기해보겠다. 일반적인 영화나 공연은 시각적인 부분과 청각적인 부분으로 구분된다. 화면과 무대에서의 퍼포먼스나 연기, 배우들의 움직임이나 표정 등이 시각적인 요소이며, 대사나 노래, 음악, 효과음 등이 청각적인 요소를 구성한다. 배리어프리 영화는 이런 영화나 공연 속에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자막을 추가적으로 삽입하거나 시각장애인을 위한 화면해설을 동시에 제공하는 형태로 배리어프리를 진행한다.


아래는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KOBAFF)에서 제작한 단편영화 〈반짝반짝 두근두근〉의 배리어프리 버전이다. 극 중 박보검(준우 역)이 이청아(은수 역)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장면에서 심장이 두근대는 소리를 효과음으로 표현하는 일반 영화와 달리, 배리어프리 버전에서는 청각장애인들을 위해 효과음을 직접 자막으로 설명해주어 이해를 돕는다.


배리어프리 버전으로 제작된 영화 〈반짝반짝 두근두근〉, 극은 각각 시각과 청각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사랑이야기를 다룬다. (ⓒ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


그렇다면, 공연은 어떨까? 장면과 소리, 음향 등이 고정되어 있는 영화와 달리 현장성에 초점을 맞추는 공연은 언뜻 생각하기에도 영화 콘텐츠보다 배리어프리로 제작이 쉽지 않을 것 같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몇 년 전부터 배리어프리 공연을 제작해 온 곳이 있으니, 바로 고은령 대표가 운영하는 '스튜디오뮤지컬'이다.


스튜디오뮤지컬은 본디 무대에서만 볼 수 있는 공연을 더 많은 관객들에게 소개하기 위해 오디오북 형태의 공연 팟캐스트 콘텐츠인 '자리주삼'으로 시작했으나, 팟캐스트 진행 중 시각장애 청자의 요청으로 배리어프리 뮤지컬 제작을 시작했다. 2014년 뮤지컬 〈빨래〉의 제작사인 씨에이치수박과 함께 〈빨래〉의 배리어프리 버전을 제작하여 무대에 올린 것을 출발점으로, 2015년 뮤지컬 〈당신만이〉를 거쳐, 2016년에는 '보들극장(시각장애인들에게 이고, 청각장애인들에게 리는  )'사업을 통해 직접 배리어프리 오리지널 콘텐츠인 뮤직드라마 〈아빠가 사라졌다!〉를 제작하여 공연하고 있다.

 

스튜디오뮤지컬의 보들극장 배리어프리 뮤지컬 〈아빠가 사라졌다!〉의 한 장면 (ⓒ스튜디오뮤지컬)


배리어프리 뮤지컬에는 무성영화 시대에 영화를 해설해주던 변사(辯士)와 같은 해설자가 함께하며 극의 이해를 돕기도 하고, 수화 안무를 통해 내용을 전달하는 등 장애인의 관점에서 극을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장치들이 배치되어 있다. 또 스튜디오뮤지컬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무선 수신 해설과 이동보조,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어 통역과 소리 진동기술 등 배리어프리 시스템 보급에도 힘쓰고 있다.


스튜디오뮤지컬을 계속해서 이야기하는 이유는 스튜디오뮤지컬이 사실상 공연업계에서 꾸준히 양질의 배리어프리 콘텐츠를 생산하는 유일한 곳이기도 하지만, 실제 필자가 2014년부터 스튜디오뮤지컬을 꾸준히 지켜보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학교 때 취미로 뮤지컬을 시작하면서 공연예술에 관심을 가진 필자는 경영학과 문화콘텐츠학을 전공했는데, 사회적기업에 관심이 많아 문화예술 관련 사회적기업들을 찾아보는 과정에서 스튜디오뮤지컬을 만났다.



당시에는 거의 체계가 잡혀있지 않아 고은령 대표의 1인 기업에 가까웠던 스튜디오뮤지컬이 최근 다양한 지원사업과 투자를 통해 현재의 시스템을 갖추게 된 것을 보면 정말 리스펙 할만 하다. 최근에는 연세대학교 뮤지컬 동아리 '로뎀스' 출신의 청년들이 '컬쳐커넥트(Culture Connect)'라는 소셜벤처를 창업하여 배리어프리 공연을 포함한 자막 공연들을 제작하는 모양이다.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배리어프리가 부숴야 할 장벽


점점 배리어프리에 대한 인식이 넓어지고, 지원도 늘어나고 있지만 여전히 배리어프리가 부숴야 할 장벽은 높다. 베를린 장벽과 같이 배리어프리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가장 큰 벽은 '인식'이다. 배리어프리의 필요성에 공감하지 못하는 비장애인의 관점에서는 그것이 수혜로 보이거나, 조금 더 나아가 역차별로 인식되기까지 한다.


이 많은 객석 중에 그들이 앉을 수 있는 좌석은 별로 없다. (ⓒ정동극장 / 위 이미지는 글의 내용과 관계가 없습니다)


배리어프리를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가지는 대표적인 의견 두 가지는 '공연이 너무 비싸서 나(비장애인)도 잘 보지 못한다'는 것과, '배리어프리 공연 제작에는 추가 비용이 들어가고, 그것이 티켓비의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정리된다.


첫 번째 질문은 본질에서 벗어난 질문이다. 배리어프리 영화/공연은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 문화예술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자는 것이지, 어느 한쪽을 지원해주자는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공연이 비싸다고 인식되는 것은 사실이나 그것은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에게 해당되는 공연산업 전반의 문제이다. 더 큰 문제는 장애인의 경우 비용적인 부담을 감수하더라도 볼 수 있는 공연 자체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공연을 관람하기는커녕, 공연장에 접근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한 연극 프로젝트 팀이 대학로 공연장 120곳을 조사한 결과, 휠체어 이용자가 도움 없이 들어갈 수 있는 공연장은 14곳뿐이었다고 한다. 90%의 공연장은 장애인의 접근조차 쉽지 않다는 것이다. 배리어프리는 공연문화에 대한 진입장벽(Barrier)을 없애자는 이야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두 번째 질문은 공연문화를 향유하는 우리 모두가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다. 헌법에서 보장하는 문화적 권리에 대한 보장과 평등의 가치를 위해 정부와 공연업계, 관객을 포함한 시민사회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 배리어프리 콘텐츠의 제작은 제작사에게만 맡겨지지 않기 때문에, 이로 인해 티켓비가 상승할 것이라는 주장에는 비약이 있다. 이미 문화체육관광부를 중심으로 배리어프리 문화가 확산 중에 있고,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와 스튜디오뮤지컬 같은 기업들이 공공/민간의 영역에서 노력 중이다. 이런 노력을 인식하고 함께함으로써 공연장까지의 벽을 허물고 문턱을 없애는 일, 그것이 관객들이 함께해야 할 일이다.




ⓒ 2006 MODATE


다소 긴 이야기가 되었다. 배리어프리에 대해 이토록 열을 올리는 이유는 필자가 문화예술을 좋아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를 행복하게 해 주는 영화, 뮤지컬, 연극, 전시 등 수없이 많은 문화 콘텐츠를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즐기고 공유하고 싶기 때문이다.


공연장에서 어셔(Usher)로 일할 때, 우리 극장에는 대략 열 자리 정도의 장애인 전용석이 있었다. 그 자리는 바퀴가 달려 움직이는 좌석으로 제작되어 있어 극장에 휠체어가 들어오면 교체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공연에 장애인 관객이 오지 않으면 그 자리는 빈자리였다. 그리고 내가 근무를 섰던 오십여 번의 공연 중 단 한 번을 제외하고 그 자리는 늘 비어있었다.


단 한 번, 무전을 받고 객석으로 내려갔을 때 그 자리에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 관객분이 와 계셨고, 나는 무거운 좌석을 들어 공연장 밖(정확하게는 출입문을 구성하는 두 개의 문 사이)으로 빼냈다. 나는 그 자리에 앉아 있던 관객분의 표정을 기억하지 못한다. 객석에 앉은 모든 사람들의 표정이 같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극장 안에서 모두 같은 관객이다.


모든 사람이 관객이 될 수 있는 날을 꿈 꾼다. 배리어프리는 그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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