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왜 한 번 본 공연을 또 다시 보는 걸까?
마흔세 번. 내가 가장 많이 본 '한 공연'의 숫자다.
정확하게는 마흔 한 번의 근무와 두 번의 무대라고 보는 것이 맞겠다. 당시 나는 대학에 다니며 뮤지컬 공연을 올리던 대극장의 어셔(Usher, 공연안내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고, 공연이 올라가는 삼 개월 여의 시간 동안 주에 세 번에서 네 번 근무를 섰다. 어셔의 포지션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초보 어셔에게는 주로 객석 모니터링과 물품보관소 업무가 주어지므로(조금 더 경험이 쌓이면 한 층을 관리하거나, 하우스매니저의 업무를 보조하게 된다) 나는 주로 객석에 들어갔다. 객석으로 통하는 문 앞에서 안내와 티켓팅을 하고, 공연이 시작되면 객석으로 통하는 두 개의 문을 조심스레 열고 들어가 허리를 숙이고 발소리를 죽인 채 맡은 자리로 향한다. 자리에 놓인 작은 철제 의자는 펼 때마다 언제나 끼익, 소리를 냈고 혹시 공연을 보는 관객들에게 방해가 될까 쪼그리고 앉은 채 한없이 천천히 의자를 펴고 앉곤 했다. 어셔의 일은 객석을 바라보며 불편한 관객은 없는지, 관람을 방해하는 요소는 없는지 살피는 것이었지만 관객을 향한 눈 바깥쪽으로 들어오는 무대와 한쪽 귀로 들리는 스피커의 넘버는 적어도 나에게는 한 공연을 관람했다고, 아니 느꼈다고 하기에 충분했다.
'회전문 관객'은 한 작품을 캐스팅 배우 별로 계속 보는 관객을 일컫는다. 내 주변의 연극/뮤지컬 애호가들만 보아도 다섯 번, 열 번 관람은 우습고 스무 번, 서른 번 회전문도 가볍다. 공연계에는 '전캐 찍기'라는 은어가 있는데, 이는 공연에 올라오는 모든 캐스팅을 보는 것을 말한다. 보통 공연은 주연을 중심으로 더블이나 트리플 캐스팅으로 진행되고, 주연이 최소 2명이니 트래플 캐스팅에 주연 두 명을 기준으로 하면 최소 3번(전캐 기준)에서 최대 9번(전캐/전페어 기준)이라는 경우의 수가 나오게 된다. 어마어마하다. 회전문 관객들을 겨냥한 마케팅을 처음 시작한 곳은 2005년〈헤드윅〉을 올린 쇼노트였는데, 당시 카페의 쿠폰과 같이 10번 관람에 한 번 무료관람을 제공하던 이벤트의 최다 관람자의 무료관람 회차는 14회(고로, 실제 유료 공연 관람 회차는 최소 140회)였다고 하니 그들의 열정을 짐작할 만하다.
위에서 이야기한 43번의 재관람은 공연장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했던 특별한 경험이니 차치하더라도, 나 역시 종종 회전문을 돈다. 참고로 나는 한 공연을 여러 번 보는 것보다 여러 공연을 보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았던 공연은 두 번에서 세 번 정도, 특별히 좋았던 공연은 다섯 번에서 열 번 정도를 한 시즌에 본다. 물론, 대극장 공연의 경우에는 부담이 커지므로 회차가 다소 줄어들게 된다. 기본적으로 회전문은 '못 도는 것'이지 '안 도는 것'이 아니다(라고 쓰고 잠시 눈물을 닦는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회전문을 도는 걸까?
아홉 개의 공연을 한 번씩 보는 것과, 한 개의 공연을 아홉 번 보는 것의 가치를 논할 수 있을까?
회전문을 자극하는 가장 큰 요소는 캐스팅과 페어가 아닐까 한다. 영화나 드라마에는 한 배역에 한 사람이 캐스팅되어 인물을 연기하는 것과 달리, 연극과 뮤지컬은 위에서 말했듯 두 명, 혹은 세 명이 같은 배역을 맡는 것이 일반적이며 반대로 한 사람이 한 인물을 맡아 공연을 하게 되면 '원 캐스트'라는 표현을 쓴다. 2015년 국내 초연을 올린 뮤지컬 〈데스노트〉에서는 홍광호 배우가 라이토 역을, 김준수 배우가 L 역을, 그리고 정선아, 박혜나, 강홍석 배우가 각각 미사, 렘, 류크 역을 맡아 공연했는데 당시 제작사인 씨제스컬쳐가 각 배우들의 원캐스트를 마케팅으로 활용했을 정도이니, 일반적인 연극/뮤지컬 공연에서는 원캐스트가 일반적인 형태는 아니다.
이렇듯 공연에서 더블, 트리플 캐스팅이 일반화되다 보니 자신이 좋아하는 공연이라면 같은 배역을 연기하는 다양한 배우들의 모습을 보고 싶게 된다. 또한 연기에는 정해진 대본과 연출에 따른 방향성이 주어짐에도, 배우 개인의 해석을 통해 완전히 다른 캐릭터가 될 수 있다는 것도 회전문을 유도하는 큰 요소다. 만일 같은 캐릭터를 연기하는 두 배우의 노선이 완전히 다르다면? 혹은 특정 장면에 대한 해석이 달라 극의 의미가 달라진다면?
처음 서두에서 이야기했던, 43번을 관람한 그 공연은 공교롭게도 뮤지컬〈헤드윅〉이다. 당시 캐스팅은 조승우, 조정석, 윤도현, 정문성, 변요한 배우였고 나는 그 때와 같은 캐스팅이 다시 돌아올 수 있을 지에 대해 종종 생각한다. 마흔세 번의 공연을 보며 느낀 것은 다섯 명의 헤드윅이 주는 인상과 감동의 지점들이 모두 달랐다는 것이다. 헤드윅이라는 공연이 대화와 애드리브를 중심으로 하는 만큼 각자의 색깔은 더욱 강하게 묻어났다.
내가 느낀 조승우의 헤드윅은 순백의 흰색. 정해진 130분의 공연을 홀로 180분으로 늘려 어셔들의 퇴근시간을 늦추고, 추가 수당을 선물해주던 그의 헤드윅은 언제나 최고였지만, 특히 'Midnight Radio'에서 빛났다. 모든 아픔을 해소하고 자신을 내려놓은 채 사라질 때 조명의 색깔이 언제나 흰색으로 기억된다. 마치 신성한 종교지도자의 뒷모습을 보는 것 같았던 그의 헤드윅. 조정석의 헤드윅은 붉은색. 그는 헤드윅 그 자체였고, 언제나 열정적이고 완벽했다. 헤드윅의 대표 넘버인 'Origin of Love'이 끝난 후에 가장 진한 여운을 남겼던 배우. 윤도현의 헤드윅은 'The Angry Inch'에서 폭발하는 검은색. 막공으로 치닫을수록 이상하리만큼 슬펐던 정문성의 헤드윅은 파란색. 그는 막공에서의 모습만큼은 누구보다 완벽하다는 공감을 얻었었다. 중간에 합류한 변요한은 노란색. 'Wicked Little Town(Reprise)'에서의 그는 가사 그대로 너무 '어린아이'같았다. 또 너무 잘생겼고.
한 극을 보면서 배우들마다 그 정도로 다른 감정을 느낀 것은 처음이었다. 각자가 주목하는 아픔, 각자가 해석하는 헤드윅의 감정선과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들을 함께하는 것은 몹시도 즐거웠다. 한 극을 다른 배우들로 관람하면서 극에 대한 해석을 넓히고, 그 해석들을 통해 자기 스스로의 관점이 확장되는 경험은 공연을 좋아하는 한 관객으로서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 주었다.
그리고 케미. 화학작용을 이르는 '케미스트리(Chemistry)'를 줄인 말로, 배우와 배우 사이의 합(合)을 빼놓을 수 없다. 일상 속에서도 나와 잘 맞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는 것처럼, 한 배우가 어떤 배우와 함께 무대에 서는지에 따라 무대의 색깔이 달라진다. 특히 2인극이거나 남녀 간의 사랑을 주제로 하는 극인 경우 '케미'가 더욱 중요하다. 케미는 배우 간의 음색일 수도, 연기 스타일의 조화일 수도, 현실세계에서 배우 간 친밀도에 의한 '아어이다'일 수도 있다. 때때로 특정 페어에만 해당 배우들끼리만 짜고 치는 촌극이 삽입되는 경우도 있는데, 뮤지컬〈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의 '창조 페어'인 이창용과 조성윤은 실제 친구라서 극 중간 눈싸움 장면에서 역대급 폭력적인 눈싸움을 보여주곤 한다(음악감독과 연출이 '너무 장난치지 말라'라고 얘기했을 정도라고).
그런 케미와 차별성들이 무대를 보는 관객들에게는 하나의 재미요소가 되는지라, 캐스팅별로, 또 페어별로 공연을 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통장이 텅장이 되어있는 마법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덕후의 입장에서는 각각 다른 연기와 해석, 또 페어만의 장면, 장면들이 머릿속에 차곡차곡 저장되는 것이라서 한 번 한 번의 공연이 절대 같지 않다. 공연이 올라온다는 소식이 들리고, 캐스팅이 발표되면 이번 공연은 어떤 캐스팅으로 볼 지, 또 어떤 페어와 함께할지를 고민하고 결정하는 것이 연극/뮤지컬 덕후로서의 재미이며 또 하나의 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