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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현 Nov 16. 2018

그 남자가 회전문을 도는 이유 (2)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지만, 나갈 때는 아닐걸?

앞서 첫 번째 글에서 '회전문' 관객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았다. 누군가에게는 이상하게 보일 사람들. 한 번 보기도 어려운 공연을 다람쥐 쳇바퀴 돌듯 두 번, 세 번, 수십 번 보는 사람들. 어차피 똑같은 내용을 공연하는 것인데 그들의 눈과 귀에는 다른 모습이 보이고, 다른 노래가 들리는 걸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그렇다.



공연은 매일매일 같은 내용으로 진행되지만, 공연을 보고 나오는 관객들의 표정은 그와 같지 않다. 공연 안내원으로 일했던 뮤지컬〈헤드윅〉의 `15-`16년 공연에서 굉장히 흥미로웠던 부분은 공연이 진행될수록 '눈에 익은' 관객들이 생긴다는 것이었다. 가끔 얼굴이 익은 관객들과 인사를 할 때면 누군가는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숙이고 지나갔고, 또 다른 누군가는 자연스레 눈인사를 하곤 했다. 〈헤드윅〉은 다른 공연들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매니악한 공연이라, 공연이 막바지로 치달을 즈음에는 공연장에서 자주 눈을 맞추던 관객들과 왠지 모를 동지애가 생긴 것 같았다.


관객들은 공연이라는 열차에 올라타 함께 여행하는 여행자들이며, 회전문 관객은 조금 더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일 뿐이다.


우리는 〈헤드윅〉이라는 기차를 타고 장벽 이쪽에서 저쪽으로 여행하는 여행자들이었고, 그들은 열차의 승객이었다. 기차가 중간중간 정차할 때마다 역 안의 플랫폼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열차에 올랐고, 또 많은 승객들이 내려 자신의 길로 걸음을 옮겼지만, 열차의 시발점부터 최종 목적지까지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승무원이었으며, 그들과 우리는 서로가 누구인지 몰랐지만 서로의 얼굴과 표정을 기억했다. 그리고 마지막 공연이 올라가던 날, 함께 뛰고 소리 지르며 커튼콜을 즐겼다. 그들은, 그저 조금 더 오래 열차에 머물며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이었다.




2. 아는 만큼 보인다: 자첫과 자둘, 새로운 디테일들.


자체 첫공과 두 번째 공연은 완전히 다른 공연이다.


같은 공연은 없다. 매일매일이 같은 대본과 같은 스토리, 같은 넘버, 심지어 같은 배우들로 구성된 공연이더라도 매일매일의 공연은 다르다. 그것은 공연이 현장성을 갖춘 '순간의 예술'이기 때문이다. 배우들 역시 사람이고, 그날의 감정과 그날의 기분에 따라 다른 형태의 해석이 나올 수 있다. 그날의 배우, 그날의 관객, 그날의 날씨, 객석의 온도와 습도, 그 모든 것들이 모여 '그날의 공연'을 만든다.


연뮤덕들 사이에는 '자첫', '자둘'과 같은 공연 은어들이 있다. '자첫'은 '자체 첫공'의 줄임말로, 어떤 공연을 첫 번째로 관람한 회차를 일컫는다(자매품으로는 '자체 막공'을 뜻하는 '자막'이 있다). 유추 가능하다시피, '자둘'은 '자체 둘공'의 줄임말로 한 공연을 두 번째로 본 회차를 뜻한다. 자첫과 자둘에는 각자의 매력이 있다. 첫 번째 공연은 공연에 대해 최소한의 정보만 가진 상태로 공연을 관람하게 되기 때문에, 스토리의 흐름과 넘버, 그리고 공연이 주는 분위기에 집중하게 된다. 공연의 첫인상을 즐기게 되고, 새로운 경험이 주는 즐거움과 행복감에 젖을 수 있다. 


하지만 두 번째 공연은 이미 한 번 공연을 본 상태로 공연에 들어가기 때문에, 이전의 경험들을 바탕으로 공연을 즐기게 된다. 다음 장면이 무엇인지, 다음에는 어떤 형태로 극이 진행되는지 어렴풋이 알고 있기에 이전의 공연에서 더 좋았던 장면, 더 마음에 드는 인물들에 집중하면서 볼 수 있다. 한 번 들었던 대사와 가사는 그 흐름에 맞게 더욱 명확하고 또렷하게 들려 극 안에 녹아 있는 작은 디테일과 의미들에 집중할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고 나만의 해석을 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B급 감성에 난해한 장면과 상징이 결합된 뮤지컬〈록키호러쇼〉는 보면 볼수록 매력이 넘친다. (출처: 알앤디웍스)


뮤지컬 〈록키호러쇼〉를 본 두 번째 날을 기억한다. 공연을 이끌어 갈 배우는 달랐으나, 공연장은 같았고, 객석은 여느 때와 같은 만석이었다. 같은 공연이었으나 두 번째 공연은 밤 열 시에 막이 오르는 심야 공연이었다. 첫 번째 공연에는 검은색 오버 사이즈의 반팔을 입고 갔었는데, 시즌이 바뀌며 계절도 넘어가 어느새 나는 짙은 녹색 린넨 셔츠를 입고 있었다. 공연장의 느낌과는 두 옷 모두 썩 잘 어울렸다. 시즌이 바뀌었지만 무대도, 의상도, 공연장의 온도와 습도도 거의 달라진 것은 없었다. 공연 중, 쟈넷과 브래드가 고장 난 차에서 내려 빗속을 뚫고 프랑큰 퍼터의 성으로 달려가는 장면에서는 앙상블인 '팬텀'들이 분무기를 가지고 나와 관객들에게 물을 뿌리는데, 첫 번째 공연보다는 더 많은 비를 뿌렸다. 심야 공연이라서 그렇겠지, 하고 웃었다. 공연이 무르익고 점점 클라이맥스를 향해 치닫자 이전의 공연과는 다른 것들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장면과 대사를 넘어, 의미와 디테일들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퀴어와 SF, 판타지, 호러, 코미디가 뒤섞인 이 '범우주적 판타지 뮤지컬'의 첫 번째 관람은 신선한 충격을 줬다. '네가 뮤지컬을 좀 봤지만, 이건 당황할 수도 있으니 예습 차원에서 보고 가라'는 지인의 말에 원작 영화 〈록키호러픽쳐쇼(The Rocky Horror Picture Show), 1975〉를 보고 갔음에도 눈 앞에 펼쳐지는 양성애자 외계인들의 쇼에 나는 애매한 웃음으로 무대를 즐길 수밖에 없었다.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누구에게도 남자와 여자 둘 다와 섹스를 하고, 사람을 도끼로 토막 내어 인육으로 만든 요리를 대접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겠지만 그것이 영화도 아닌 극으로 올라오는 경우에는 더더욱 그랬다. 하지만 두 번째 공연은 그렇지 않았다. 장면과 내용을 한 번 눈과 귀에 담았기에 충격은 덜했고, 전체 무대보다 인물과 장면의 디테일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저 멋있다고 생각했던 장면에 저런 디테일들이 녹아 있었구나. 지난번에 이 장면에서 사람들이 웃었었는데 이것 때문이구나. 아, 재밌다.


그렇게, 자체 첫공과 두 번째 공연은 완전히 다른 공연으로 느껴질 가능성이 크다.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지만, 그 후로 공연에 매료되어 영원히 회전문을 돌 지도 모른다. 조심하라!


세 번, 네 번, 열 번, 스무 번을 볼수록 공연은 점점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게 된다. 처음에는 자연스레 주연배우에 집중하던 초점이 조연배우로 이동하며 극의 의미가 달라지는 신기한 경험을 하기도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삼국지의 주인공은 유비지만, 왕 샤오레이가 '삼국지 조조전'을 펴내며 기존의 삼국지와는 다른 책이 등장한 것과 같다. 극을 다른 관점에서 보는 경험 역시 극을 해석하는 하나의 방식이며, 이를 통해 나만의 의미를 뽑아낼 수 있기도 하다. 또 공연이 진행됨에 따라 추가되는 배우들의 디테일과 여물어가는 연기, 해석을 보고 있노라면 한 번의 공연을 한 번 보고 끝내는 것은 너무나 아쉬운 일이 될지도 모른다. 그것이 그들이 회전문을 도는 이유다.




회전문, 그 문은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지만 나갈 때는 마음대로가 아닌 문이다. 회전문에서 한 번 속도를 내면 빠져나가기가 쉽지 않듯이, 공연의 회전문 역시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는 매력이 있다. 단순히 돈이 많아서, 특정 배우를 지지해서, 공연을 많이 봄으로써 연뮤덕으로서의 권력을 얻기 위해 공연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한번 한 번의 공연이 관객에게 다른 경험들을 전해주기에 우리는 회전문을 돈다. 글에 적어 내려 간 두 가지 이유, '캐스팅/페어, 그리고 케미'와 'N공의 매력' 역시 내가 느끼는 회전문의 이유에 불과하다. 누군가는 그저 좋아서 공연을 볼 지도 모르고, 또 다른 누군가는 내가 이야기한 것처럼 배우에 따라 달라지는 극의 변주를 좇을 수도 있다. 모두가 각자의 회전문을 돌고 있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은 좋아서 공연을 본다'. 그저 좋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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