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속 노인은 무대 위에서 발레리노가 될 수 있을까?
나빌레라. 한 번쯤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조금 멀게는 고등학교 시절 문학 교과서, 그것도 꽤 앞부분 즈음에 나온 청록파 시인 조지훈의 시 「승무」에서다.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 나빌레라'라는 문장은 그 뜻을 선명히 알지 못하더라도 문장 자체로 너무나 친숙하다. 마치 윤동주 시인의 「서시」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까지만 아는 것 같이.
너무나 유명한 나머지, 2007년 LG 싸이언 슬림폴더폰 CF에서는 김태희가 운동장 철봉에 매달려 몸을 반으로 접으며 '고이 접어, 폴더 되다'를 외치고, 현빈이 '브라보!'라며 박수를 치는 CF가 시대를 풍미했다. 기억하는가? 만약 이 CF를 안다면 당신, 필자와 같은 세대다. 반갑다.
가깝게는 영화화된 웹툰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작가 HUN이 글을 맡고, 만화가 지민이 작화를 한 웹툰 「나빌레라」를 떠올리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일흔이 다 되어서야 젊은 시절 꿈이었던 발레를 시작하는 노인 '덕출'과 꿈을 좇는 20대 청년 '채록'의 이야기. 갑갑한 연습실에서 70대 노인과 20대 청년이 함께 꿈을 향해 발끝을 뻗는 생경한 이야기다.
그리고, 서울예술단(SPAC)이 5월 공연을 앞두고 있는 창작가무극 〈나빌레라〉가 바로 그 이야기다.
왠지 모르게 가슴이 벅찬다. 이 극이 무대에서 펼쳐질 것을 생각하면 말이다. 이 이야기는 일흔을 앞둔 노인이 평생 마음에 담아두었던 꿈인 '발레'를 시작하는 이야기다. 우편공무원으로 평생을 살아온 69세 노인 '덕출'이 주변의 시선과 가족들의 반대, 스스로의 불안을 깨고 세상을 향해 손과 발을 뻗는, 감동적이지만 어쩌면 조금은 슬픈 이야기.
떠올려보자. 일흔의 노인이 발레를 하는 모습을. 머리는 희고 눈은 처졌고, 등과 어깨는 세월의 무게에 자연스레 내려앉아있는 모습을. 그런 한국의 평범한 할아버지가 쫄쫄이 발레복에 토슈즈를 신고, 발끝을 세운 채 팔에, 손 마디마디에 힘을 주는 장면을. 익숙하지 않을 것이다. 구글에 이미지 검색을 해 보니, 발레가 보다 대중화되어있는 유럽권에는 일부 노인들을 위한 발레 클래스가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동양의 노인이, 그것도 지극히도 평범한 우편공무원으로 살아왔던 일흔의 노인이 한국에서 발레는 하는 모습은 역시 생경하다.
하지만 그는 늙음에, 세월에, 그 시간의 버거움 앞에 굴복할 생각이 없다. 평범하지만, 스스로가 초라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그는, 발레 하는 노인 심덕출이다. 초라해지고 싶지 않은 그의 바람은 「나빌레라」에서 가장 사랑받는 대사인 아래 대사에서 드러난다.
"사람이 언제 초라해지는 걸까? 지금 자신의 위치나 하는 일이 보잘것없을 때일까? 사람들이 목표나 꿈을 몰라줄 때일까? 아닐 거야. 스스로가 초라하다 생각하고 믿는 순간 진짜 초라한 사람이 되는 걸 거야."
이 대사는 발레를 배우기 위해 들어간 문경국 발레단에서 만난 스물세 살 발레리노 이채록에게 덕출이 해 준 말이다. 채록은 덕출에게 발레의 기초를 가르치는 선생이자, 덕출과 함께 발레를 하는 동료이기도 하다. 덕출은 채록에게 발레를 배우는 제자일 뿐이지만, 점차 채록이 안고 있는 방황과 결핍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의 매니저를 자처하며 그를 지지하는 든든한 기둥이 된다. "채록이는, 크게 날아오를 사람이야"라는 덕출의 말에는 채록이 가진 재능에 대한 동경과 함께 그에 대한 인간적 믿음과 따뜻한 시선이 담겨 있다.
필자는 채록과 같은 23살의 나이에 취미 뮤지컬을 시작했다. 나는 젊었고(물론 지금도 젊다, 고 생각한다), 학창 시절 학생회장을 했을 만큼 외향적인 사람이었지만 뮤지컬을 시작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잘하지 못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23년 동안 내가 해온 일이라고는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거나, 가끔 태권도장에 가서 발차기를 하고, 친구들과 운동장에서 볼을 차는 일 정도였다. 그나마 뮤지컬과 닿아 있는 것은 노래방에 가서 신나게 노래를 부르는 것 정도랄까. 그런 내가 뮤지컬을 '잘'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들어간 건 당연히 아니었다.
잘하지 못할 일을 시작하는 것은 당연히 큰 도전이었다. 두렵고 불안했다. 사실, 이게 좋아서 하는 거지만 내 삶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텐데 이걸 할 시간에 더 의미 있는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남들처럼 어학성적을 따기 위해 토익학원에 다니고 스펙을 쌓는 게 낫지 않을까 수도 없이 생각했었다. 젊은 나이에도 나는 두려웠었다.
하지만 덕출은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가 이미 살 만큼 살아서 더 이상 아쉬울 것이 없는 노인이기 때문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는 것을 더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발레를 한다. 잘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함께 발레를 하는 문경국 발레단 안에서 자신이 너무나도 눈에 띄는 존재임을 알면서도, 또 결코 그들처럼 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발레를 한다. 그렇게 그는 꿈을 꾼다.
이제 공연 이야기로 들어와 보자. 가무극 〈나빌레라〉는 서울예술단의 2019년 첫 번째 신작이다. 올해, 이미 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가 성황리에 무대에 오르고 막을 내린 바 있지만 이는 12년 초연을 올렸던 공연의 재연이고, 2019년 창작은 〈나빌레라〉로 시작된다.
〈나빌레라〉가 기대가 되는 것은 창작 주체가 다름 아닌 서울예술단이기 때문이다. 아직 〈나빌레라〉에 대한 홍보나 마케팅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지지는 않고 있지만, 극의 소개를 잘 살펴보면 제목 앞에 '뮤지컬'이 아니라 '가무극', 혹은 '창작가무극'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서울예술단은 단원을 '가극', '무용' 등으로 나누어 모집하는데, 이처럼 특정 분야에 대한 전문성이 높은 배우들이 포진해 있다.
이번 공연에서는 덕출 역의 최정수 배우와 채록 역의 강상준 배우가 서울예술단 단원이며, 진선규 매우와 이찬동 배우는 객원배우다. 진선규 배우에 대한 이야기는 아래에서 따로 하기로 한다. 최정수 배우와 강상준 배우는 모두 〈나빌레라〉에 꼭 맞는 캐스팅이다. 최정수 배우는 한국무용연구회 신인안무가전 연기상을 수상할 정도로 안무에 능한 배우이며, 강상준 배우는 이미 기존 서울예술단 공연들을 통해 충분히 검증된 바 있다. 강상준 배우는 특히 무형문화재 제17호 봉산탈춤 전수자라는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인터뷰에서는 고등학교 시절 '고통스러운 스트레칭이 싫어' 탈춤을 선택했다고 하는데, 발레도 한 번 기대해봐야겠다.
고정적으로 확보되어 있는 단원 풀이 있고, 국립 예술단체라는 점에서 타 창작집단에 비해 상대적으로 재정적 부담이 적은 탓인지 서울예술단은 늘 높은 수준의 퍼포먼스를 낸다. 특히 수준급 실력의 단원들이 40여 명에 이르기 때문에 이들을 활용한 군무가 매 시즌마다 각광을 받곤 한다. 이번 〈윤동주, 달을 쏘다〉에서는 약간 힘을 뺀 게 아니냐는 의혹 아닌 의혹을 받았지만, 서울예술단의 군무를 보고 있노라면 말 그대로 군대 사열식을 보는 느낌이 들 정도다. 또 예술의전당이 워낙 공연장이 넓고 쾌적하다 보니 그들이 표현하는 안무와 감정을 표현하는 몸의 선과 강렬한 표정과 에너지가 더 압도적으로 느껴지는 경향도 있다.
〈나빌레라〉가 발레를 주제로 하는 극이다 보니, 서울예술단 무용단원들을 활용한 군무나 발레를 무대 위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앞선다. 웹툰에서의 주 배경은 문경국 발레단의 연습실인데, 현재 공개된 캐스팅을 보면 '문경국 발레단 단원' 배역만 7명이니, 거기에 채록과 덕출까지 합치면 최소한 9명 이상의 발레 안무를 무대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연출은 서재형 연출이 잡았다. 최근 황정민 배우가 무대에 오른 연극 〈오이디푸스〉로 호평을 받았고, 필자 역시 연극 〈메피스토〉나 국립오페라단의 창작오페라 〈천생연분〉 등을 통해서 선이 굵은 그의 연출에 깊은 인상을 받았기에 많은 기대를 하고 있다. 또한 극본이 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땡큐 베리 스트로베리〉, 〈모래시계〉, 〈전설의 리틀 농구단〉으로 유명한 박해림 작가의 손을 탔다는 부분에서 감성 포인트를 이미 확보했다고 본다. 원작이 가진 힘이 워낙 크다 보니 그 감성과 감동을 녹이는 데 부담이 크겠다 싶지만, 어쨌든 〈나빌레라〉의 연출/제작진은 뮤지컬 팬들도 믿고 볼 만큼 좋은 모습을 보였던 능력자들이다. 믿어볼 만하다.
서울예술단은 〈나빌레라〉의 초기 홍보마케팅을 진선규 배우에 기대는 것 같다. 충분히 그럴만하다. 사실 웹툰 자체가 가지는 인지도의 한계가 있고, 늘 좋은 작품을 올리는 서울예술단이지만 기본적으로 문화예술 분야에 대한 홍보마케팅이 성공하기 쉽지 않은 국내 환경에서 인지도 있는 배우를 얼굴로 내세우는 것은 잘못된 방향성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뮤지컬 팬 입장에서는 진선규 배우가 이렇게 한 무대의 얼굴이 된 것이 무척이나 감격스럽다. 극단 '공연배달서비스 간다'의 공연을 매우 좋아하는 덕에 진선규 배우를 여러 번 본 적이 있었고, 볼 때마다 연기와 몸 쓰는 것에 감탄했더랬다. 특히 연극 〈뜨거운 여름〉에서는 강력해 보이는 비주얼에 어울리지 않게 청춘물의 주인공을 맡았었는데, 중간중간 나오는 아크로바틱과 안무에서 몸 선이 너무 예뻐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런 그가 영화 〈범죄도시〉에 나왔을 때, 그렇게 큰 상을 받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청룡영화제 남우조연상을 수상하고, 수상소감과 인성으로 또 한 번 이슈가 된 후에도 이 열기가 사그라질까 못내 마음 졸이며 응원을 했었는데, 이번 〈극한직업〉으로 천만배우의 반열에 오른 것을 보고 한 시름 놓았다. 좋은 배우들은 더 많이 보여야 한다. 유명세가 더해짐에 따라 소극장에서 배우들을 보기가 어려워지고, 가까이에서 그들의 연기를 볼 기회는 점점 사라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연극, 뮤지컬 배우들이 많이 인정받았으면 좋겠다.
영화로 진선규 배우를 처음 접한 관객들은 '응? 무섭고 잔인하거나, 웃긴 역할로만 나오던 진선규 배우가 발레 하는 할아버지라고?'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진선규 배우는 사실 대학로에서 알아주는 할전배(할아버지 전문 배우)다. 이미 뮤지컬 〈난쟁이들〉에서 백설공주를 만나고 싶어 하는 난쟁이 '빅'으로, 또 극단 간다의 연극 〈나와 할아버지〉에서는 손자와 함께 전쟁통에 헤어진 옛사랑을 찾아 나서는 '할아버지' 역으로 열연한 바 있었고 그때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연기의 재미와 깊이를 보여줬었다.
서울예술단에서 〈나빌레라〉의 공연 소식을 알리고 객원배우로 진선규를 캐스팅했을 때, 단언컨대 주변에 실망한 사람은 없었다. 몸 잘 쓰고, 선도 예쁘고, 연기는 말할 나위 없는 배우가 발레 하는 할아버지로 무대에 선다는데. 영화에서의 무섭거나 코믹한 모습과 달리, 무대에서의 진선규 배우는 진지하고 섬세한 연기에 능하다. 시상식에서 보았듯 겉보기와는 다르게(?) 여리고 선한 배우이기에 세세한 감정선과 떨림을 잘 표현하는 배우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그가 연기할 덕출을 볼 생각에 마음이 설렌다.
이전에도 꽤 많은 웹툰들이 재창작되어 무대에 올랐다. 서울예술단에서 올려 호평을 받았던 주호민 작가 웹툰 원작의 가무극 〈신과 함께_저승편〉이 그랬고(이승편도 제작 중이라고 한다), 동 작가의 웹툰 「무한동력」 역시 성공적으로 무대에 올랐다. 또 김풍 작가의 「찌질의 역사」와 강도하 작가의 「위대한 캣츠비」 등이 모두 연극이나 뮤지컬로 무대에 오른 작품들이다.
어떤 작품들은 호평을 받았고, 어떤 작품들은 원작 웹툰보다 못하다는 평을 받으며 대학로의 역사 속으로 사라지기도 했다. 하지만 필자는 〈나빌레라〉가 정말 웰메이드 가무극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영화 〈빌리 엘리어트〉의 선례가 있기 때문이다.
영화 〈빌리 엘리어트〉가 무대에서 성공한 이유는 오로지 무대의 힘이었다. 영상으로 보던 발레와 군무를 현장감 있게 볼 수 있다는 감동. 이야기 속의 천재 발레리노가 정말로 내 앞에 서 있는 광경은 실제로 보지 않고는 믿지 못할 정도다. 그 비현실적인 감동을 현실로 끌고 들어온 것이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가 이토록 사랑받을 수 있었던 이유라고 본다.
〈나빌레라〉는 그 연장선 상에 있다. 일흔 노인의 발레는 어리디 어린아이의 발레만큼이나, 어쩌면 그보다 더 감동적일 것이다. 〈빌리 엘리어트〉가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라면, 〈나빌레라〉는 오로지 '꿈'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이 공연이 기대되는 이유다.
'나빌레라'라는 표현을 잠시 들여다본다. 이 말은 '나비'라는 단어와 '-ㄹ레라'라는 표현이 합쳐져 만들어졌다. 이는 '나비-일려나'와 '나비-일리라(이리라)'로 나뉘어 추측과 확신의 양 분(分)을 하나로 합치는 상징적 어휘이자 시적 표현이라고 한다. 나비일까, 그리고 나비리라.
나비가 되고 싶은 일흔 살 덕출, 그는 과연 한 사람의 당당한 발레리노로 날아오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