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누구나 덕후가 될 수 있다.
'덕'은 덕후, 즉 오타쿠의 줄임말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덕', '덕질'이라는 표현의 어원인 오타쿠는 다음과 같은 뜻을 지니고 있다.
오타쿠(otaku, 御宅)
한 분야에 열중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
초기에는 '애니메이션, SF영화 등 특정 취미/사물에는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나, 다른 분야의 지식이 부족하고 사교성이 결여된 인물'이라는 부정적인 뜻으로 쓰였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부터 점차 의미가 확대되어, '특정 취미에 강한 사람', '단순 팬, 마니아 수준을 넘어선 특정 분야의 전문가'라는 긍정적 의미를 포괄하게 되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오타쿠라는 용어가 부정적인 의미에서 긍정적인 의미로 변화한 것을 보며, '덕심'에 대해 생각할 때가 있다. 누군가 열정적으로 몰입하는 한 가지, 그 '무엇'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덕심이라고 생각한다. 이전에는 자신의 관심사와 열정을 타인에게 공개하는 것이 조금은 부끄러운 일이거나 겸손하지 못한 것으로 비추어졌지만, 현재 세대에서 한 개인이 관심을 가지고 몰두하는 대상이 있다는 것은 그만의 차별성이 되고 경쟁력이 된다.
그러니, 비로소 덕질이 매력적인 시대가 왔다.
이쯤에서 질문을 던져본다. 그렇다면, 누가 덕후일까? 어느 정도의 관심과 열정과 전문성을 보여야 그를 '덕'이라고 할 수 있을까. '생활의 달인'에 나오는 것처럼 눈을 감고도 12인치 피자 도우를 만들거나, 손의 감만으로 정확하게 최적의 초밥 밥알 수인 350개를 맞추는 장인 정도는 되어야 '덕'이라고 할 수 있는 걸까?
나는 누구나 덕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덕후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거니까. 태어날 때부터 뮤지컬을 좋아했던 사람이 어디 있으며, 태어날 때부터 축구화를 신고 태어나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그저 자신이 관심을 가지는 대상에 조금 더 몰입하고, 다른 사람들보다 더 애정을 쏟아 '자신이 원하는, 자신만의' 즐거움을 얻은 사람이 덕이 아닐까 하고 조심스레 짐작한다. 하지만 덕질에도 분명 난이도는 있다. 어떤 덕질은 진입장벽이 높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카메라 덕질을 하려면 제품에 따라 렌즈와 바디에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갈 수도 있고, 프라모델이나 레고도 일반 수준을 넘어 한정판이나 소장판으로 넘어가면 부담이 만만치 않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덕질을 하는 이유는 덕질의 가치가 덕질을 하기 위해 사용하는 금전적 가치보다 크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알쓸신잡3〉의 김상욱 교수는 본업이 양자역학 연구자임에도 스스로를 '밀덕(밀리터리 덕후)'으로 자칭하며 방대한 양의 군사적 지식을 쏟아내고 있는데, 나는 군대에서 몰았던 장갑차의 이름도 잘 기억이 안나는 것을 보면 밀덕이 되기는 그른 것 같다. 그렇다면 공연은 어떨까?
연뮤덕의 진입장벽이 낮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무작정 공연을 보러만 다닌다면 모르겠지만 나름대로 장르를 이해하기 위한 공부도 조금 필요하고, 연뮤덕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문화나 용어에 적응하는 데 약간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물론 공연을 보는 비용도 감당해야 하고. 하지만 이런 부분들은 다른 형태의 덕질에도 통용되는 내용들이라 차치한다. 열정과 여유만 있다면 충분히 공연문화에 녹아들 수 있고, 또 자기만의 방법으로 공연 덕질을 할 수 있다. 좋아한다면, 당연히 누구든 즐길 권리가 있다.
공연을 많이 보는 것만이 연극/뮤지컬 덕질의 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스스로를 뮤덕이라고 생각하지만, 공연을 엄청나게 많이 보는 편은 아니다(라고 하지만 일반 관객들보다는 많이 보는 수준일 텐데, 그건 당연히 내가 가장 좋아하는 취미생활이기 때문이다). 많은 수의 공연을 폭넓게 보는 사람도 있고, 몇몇 공연들을 여러 번 보는 사람들도 있다. 또는 한 공연만 수십 번 보는 사람도 있고, 특정 장르의 공연들만을 찾아다니며 보는 경우도 있다. 어떤 공연을 어떻게 볼 것인지는 오롯이 장르를 즐기고자 하는 사람의 몫이다. 단순히 공연을 보는 것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자신이 매력을 느끼는 요소를 깊숙이 파고드는 것이 덕질의 핵심이다.
나의 경우에는 공연을 보는 것도 좋아하지만 '듣고', '하는' 것을 더 좋아하는 편이라, 꽂힌 공연이 있으면 대본을 구해 외우거나 넘버를 외우고 부르는 것을 즐긴다. 뮤지컬 〈쓰릴 미〉의 경우, 전체적인 대사가 너무 좋아서 학교 도서관에서 원서를 빌려 한국 뮤지컬 무대의 대사와 비교하고, 나름대로 번역을 이해하며 기숙사 한구석에서 좋아하고 그랬다. 이유는 단순히 재미있어서다. 뮤지컬 대본과 넘버에는 스토리의 흐름이 있기 때문에, 좋아하는 흐름을 외우고 연기하고 노래하는 것이 나 나름대로의 덕질을 하는 방식이다. 혼자 노는 건 돈이 안 드니까. 그러다 보니 아마추어 뮤지컬 극단이나 동호회를 기웃거리게 되고, 일 년에 한두 번씩 공연도 올리면서 배우가 되지 못한 한(?)을 풀고 있다. 대본이나 대사를 외우고 있다 보니, 공연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대화할 때 가끔 적절한 대사를 던져서 유머 코드로 쓰기도 한다. 덕질은, 여러모로 즐겁다.
덕질은 대체로 무해하다. 아니, 오히려 유익하기도 하다. 주변에 누군가 빵을 굽는 취미를, 아주 하드 하게 가지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가 굽는 수많은 빵은 다 어디로 갈까? 출근한, 등교한 아침 당신의 책상 위에 오를 수도 있지 않을까? 내 주변과 우리 회사 사람들은 내가 뮤지컬을 좋아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채용 시즌이 되면, 한 번씩 뜬금없이 인사팀에서 미팅 요청이 온다.
"신규 입사자들을 데리고 공연 하나 보려고 하는데, 뭐가 좋을까? 네가 잘 알잖아."
지금까지 세 개의 공연을 추천했고, 한 번은 무산되고 두 번의 공연이 채택됐다. 한 번은 인솔자로 따라갈 뻔한 적도 있는데, 아쉽게 실패했다(연차가 조금 더 차면 가능해지지 않을까). 이렇게 내가 하는 덕질이 가끔은 다른 사람의 일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도 덕질의 즐거움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최근 채용담당자님이 바뀌셨는데, 이번에 채용을 맡으신 매니저님도 기존에 해왔던 대로 신규 인턴들을 데리고 공연을 보고 왔다고 하셨다. 눈을 반짝이며 어떤 공연을 보고 오셨냐고 묻자, 제목만 보고 재미있을 것 같아서 뮤지컬 〈이블데드〉를 보고 왔다고 하셨다. 나도 모르게 눈빛이 흔들렸다. 개인적으로는 좋아하는 공연 중 하나지만, 혹 뮤지컬을 처음 보는 인턴 입사자들은 조금 당황했을 수 있었겠다는 생각을 했다. 칸다리안 좀비들이 춤에 미쳐 날뛰고, 또 특정 좌석은 좀비들이 뿌려대는 피가 옷을 적실 텐데, 그들이 부디 스플래터석에 앉지 않았길. 가끔 일에 치여 있을 때는 내가 사람인지 좀비인지 구분이 안될 때도 있으니, 어떻게 보면 선행학습일 수도 있겠다. 다음에는 은근슬쩍 첫 입사자들에게 보여주기 좋은 공연을 흘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모두의 행복을 위해서.
나의 덕질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든 그러지 않았든, 상관없다. 결국 누구에게도 타인의 덕질을 침해할 권리는 없다.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의 최대한의 자유를 행하라!'는 말과 같이,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면 나의 덕질은 무궁무진하게 자유롭다. 덕질은 온전히 자신을 위한 것이며, 타인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행할 때 가장 행복하다. 때로는 그 덕질이 나의 경쟁력이 되기도 하고, 나의 매력이 되기도 하니 덕질은 그 자체로 숭고하다.
그러니 각자의 방식으로 자유로이 덕질하라!
가능하면, 하루라도 빨리 시작하라. 덕질이 당신을 충만하게 할 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