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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현 Nov 09. 2018

뮤지컬은 고오-급 예술이 아니다.

들어오세요, 해치지 않아요!

나는 뮤지컬을 보고, 듣고, 하고 있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은 내가 뮤지컬을 좋아한다는 것을 거의 다 아는 편이다. 나는 뮤지컬을 본다. 많으면 주에 두 번, 적으면 달에 두 번 정도 공연을 보고 간단한 감상을 기록하고 있다. 주변에는 주에만 세 번, 네 번 연극과 뮤지컬을 보는 사람들이 있기에 이 횟수는 많은 것이 아닐 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나의 덕질'을 하기에 가장 적절한 숫자다. 나는 뮤지컬을 듣는다. 나는 'Youtube Premium'을 구독하고 있는데, 이유는 단 하나. 멜론이나 뮤직메이트 같은 서비스보다 뮤지컬 넘버 및 장면들이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나는 뮤지컬을 한다. 2013년부터 아마추어 극단에서 활동하고 있고, 일 년에 두어 번 무대에 서고 있다. 프로 공연에 비해 당연히 퀄리티는 떨어지지만, 내 삶을 지탱하는 큰 버팀목이자 행복의 요소다.


이렇게 어딘가에서 이력서나 자기소개서를 써야할 때, 나는 취미(차마 특기에 쓰지는 못하고)란에 '뮤지컬'을 당당하게 적어낼 수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내가 취미를 뮤지컬이라고 말하고, 공연을 본다고 이야기하면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보이는 반응이 있다.


"야, 너 돈 많다. 공연 비싸지 않아?"


어떤 종류의 덕이든 통장이 '텅장'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물론 비싸다. 연극이나 뮤지컬의 가격대가 높다는 이야기는 하루 이틀의 이야기가 아니다. 대극장 공연은 최근 VIP석이 15만원까지 치솟기 시작했고, 뮤지컬 〈웃는 남자〉의 경우에는 화수목 금액과 금토일/공휴일 금액을 다르게 책정하면서 한바탕 홍역을 앓았다. 일반적인 사람들이 뮤지컬을 생각할 때, 최초로 인지하고 있는 금액이 바로 저 금액이다. 그런 계산에 따르면 한 달에 최소 2~3개에서 최대 8~9개의 공연을 보는 나는 공연에 최소 30만원에서 최대 150만원까지를 쓰는, 말 그대로 고오-급 문화를 즐기는 사람이 된다. 비싸다. 써놓고 보니 더 비싼 것 같다(라고 쓰고 잠시 울고 오겠다).


하지만, 내 월급은 나의 취미생활로 저 정도의 소비를 허락하지 않는다. 지금 받는 월급에서 한국장학재단이 떼 가는 학자금대출 상환 빼고, 월세 빼고, 관리비 빼면 이미 월급 앞자리 수가 하나 없어진단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뮤지컬 덕질을 할 수 있는 이유는 모든 뮤지컬이 비싼 것은 아니며, 다양한 할인 혜택과 이벤트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한 덕질의 방법에는 공연을 '보는' 것만 있는 것이 아니니, 아이돌 덕질을 한다고 해서 콘서트에만 주구창장 따라다니는 것이 아닌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양질의, 하지만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은 공연들이 빠르게 순환하며 무대에 오르는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출처: 건축문화1006)


이른바 고오-급 문화로 인식되는 뮤지컬을 편히 즐길 수 있는 첫 번째 길은 양질의 중소 뮤지컬들을 보는 것이다. 생각보다 우리나라에 대극장 뮤지컬은 많지 않다. 예술의 전당, 블루스퀘어, LG아트센터, 세종문화회관, 홍익대학교대학로아트센터 등 다양한 대극장이 있지만, 이른바 공연의 성지인 대학로에는 이보다 열배는 많은 중소극장들이 있다. 그리고 그 극장들에 오르는 공연은 잘 선별한다면 대극장 공연을 보는 것보다 더 큰 감동과 현장감, 희열을 느낄 수 있다. 사람마다 대, 중, 소극장의 공연 중 선호하는 형태가 다르겠지만, 중소극장만이 주는소통의 감정, 즉 배우의 숨소리가 들리고 그들의 열기가 얼굴 앞에 닿는 것 같은 경험은 대극장 공연의 위압감이나 규모감에 감히 뒤지지 않는다.


양질의 공연을 선별하기 어렵다면 공연들을 큐레이션하는 '극장'을 선택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대표적인 극장이 위에 보이는 '아트원씨어터'다. 아트원이 보유한 세 개의 소극장은 모두 무대 시야와 공연환경이 훌륭한 편이며, 어느 정도 작품성이 검증된 공연들과 실험적인 공연들이 무대에 오른다. 아트원을 거쳐간 공연만 해도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라이프〉, 〈빨래〉, 〈여신님이 보고계셔〉, 연극 〈나쁜 자석〉, 〈모범생들〉 등 연뮤덕 사이에서도 사랑받는 공연들이 다수이며, 이로 인해 한 때 아트원씨어터는 '연뮤덕의 성지'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아트원씨어터의 대부분 공연들은 비싸야 5~6만원, 또는 전석 3.5만원, 2.5만원 정도의 금액을 유지하고 있으니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다. (본 글은 아트원씨어터와 1도 관계가 없는 한 관객의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이 글을 보신 아트원씨어터 관계자분들이 혹시나 감사의 의미로 초대권이라도 주신다면 세상 감사하겠습니다)


이외에도 DCF대명문화공장, TOM, 유니플렉스 등의 극장들을 살펴보며 마음에 드는 극들을 골라 관람하는 것도 공연을 선택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될 것 같다.


궁핍하던 대학생 시절, 피를 팔아(?) 관람했던 대극장 뮤지컬 〈고스트〉는 너무 좋았다. (출처: 신시컴퍼니)


2014년 초여름, 복학을 한 첫 학기. 집에서 받는 용돈도 없어 한국장학재단 생활비 대출(무려 이름이 '든든학자금 대출'이었지만 별로 든든하지는 않았다)로 연명하던 대학 시절, 혜화역에 있는 적십자 헌혈의 집으로 향했었다. 아직 5월이라 날씨는 그렇게 덥지 않았는데도 등줄기 뒤로 땀이 흘렀다. 인생 첫 헌혈이었다. 군대에 있을 때도 팔에 바늘을 꽂은 채 내 피가 호스를 타고 팩으로 들어가 찬찬히 올라차는 것을 볼 자신이 없어 포기했던 헌혈이었다. 같이 가는 친구도 두 번째 헌혈이라고 했다. 대뜸, 남자 둘이 헌혈이라니. 하얀 침대에 누워 나란히 낄낄대며 피를 뽑고는 초코파이 2개와 서울우유 250ml, 그리고 CGV영화예매권 2매와 헌혈증을 받아서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며칠 뒤, 뮤지컬 〈고스트〉를 보러 간 디큐브아트센터에서 티켓을 찾으며 당당히 외쳤다. "헌혈증 할인이요!". 당시 할인율은, 무려 50%였다!


제 값을 다 주고 공연을 보는 건 너무 순진한 일이다. 공연에는 보통 최소 10%에서 최대 50%까지 할인이 붙어 있다. 대학생 시절에는 학생할인으로 많이 할인을 받았고, 직장인이 된 지금은 다양한 할인혜택들을 찾아보고 적용하고 있다. 최근에는 단순한 프리뷰, 재관람 할인 외에도 마케팅적인 요소로 공연의 내용과 관련이 있는 할인들을 제공하곤 한다. 예를 들면, 흡혈귀에 대한 뮤지컬인 〈마마 돈크라이〉에는 헌혈증을 기부하면 40%를 할인해주는 '뱀파이어 할인'이 있고(피를 팔아 공연을 보라는 거냐! 싶지만 나중에 헌혈증은 기부한다), 한 소녀를 후원하는 남자의 이야기인 〈키다리 아저씨〉에는 유니세프, 월드비전, 초록우산, 굿네이버스 등 후원 증빙자료를 내면 30%를 할인해주는 '제르비스 후원자 할인'이 있다. 〈키다리 아저씨〉를 보러 갔을 때는, 10여년 간 월에 5천원씩 후원해 온 기관의 증빙자료를 제출하고 후원자 할인을 받으며 마치 내가 키다리 아저씨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가끔은 참신한 할인을 찾아다니는 것도 유쾌한 경험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연의 가격은 전반적으로 부담이 되기는 한다. 업계 내의 구조를 개선해서 전체적인 기본비용을 조금 내렸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뮤지컬은 고급 예술로 불리며 진입장벽이 높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지만, 그것을 겁내거나 부담스러워할 필요는 없다. 공연을 즐기는 다양한 방식과 형태들이 존재하고, 우리는 그 중 상황에 맞는, 마음이 가는 길을 먼저 두드려보면 된다. 공연이 주는 가격과 가치는 비례하지 않는다. 공연의 가격이 퀄리티를 담보하지도 않는다. 나의 경우에는 개인적으로 대극장 뮤지컬을 볼 때보다, 내 바로 앞에서 숨쉬고 연기하는 중소극장 공연들을 볼 때 더 많은 생경함과 희열을 느낀다. 반드시 대극장 뮤지컬을 볼 필요도 없고, 또 많이 볼 필요도 없으며, 심지어 꼭 공연을 직접 볼 필요도 없다.


뮤지컬은 고오-급 예술이 아니다. 각자의 방식으로 누리고, 각자의 방식으로 느끼고, 각자의 방식으로 즐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다음 글인 '각자의 방식으로 덕질하라!'에서 그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려고 한다.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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