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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은 Oct 04. 2023

피아노 안녕? 진짜 안녕!!

아들이 피아노학원을 끊은 날



오늘 아들이 6살 때부터 다니던 피아노학원을 그만두었다.

학교 방과 후 수업인 "로봇제작 A"를 하고 싶다고 해서 그것을 새로 등록하는 바람에 피아노학원까지 다닐 시간적 여유가 없어진 탓이다.

애초에 피아노전공을 시킬 의향은 없었고, 악보 보는 법이나 익히고 소근육 발달에 도움이나 좀 되겠지 싶어 시작한 것이긴 하지만 막상 바이엘 4권만 간신히 뗀 마당에 그만둔다고 하니 지금까지 배운 것을 하루아침에 다 잊어버릴 것 같아 아쉬운 맘이 크다.


피아노에 관한 나의 마음은 아마도 세 자매 중 유일하게 나만 피아노를 배우지 못한 서러움도 한몫을 한다.

언니는 피아노 콩쿠르에도 나갔을 정도로 오랜 시간 피아노 학원을 다녔다.

나는 그런 언니의 보디가드의 역할로 피아노 학원을 다녔다.

집에서 꽤나 떨어진 학원에 언니만 보내는 것이 내심 불안했던 엄마는 그 등원길에 동생인 나를 동행시켰고, 나는 언니가 레슨을 받는 동안 학원응접실에 앉아 책을 보면서 기다렸다가 레슨이 끝나면 언니와 같이 집으로 돌아왔다.

그 시간들은 나름 나에게 좋은 영향을 끼쳤던 것이 분명했다.

언니를 기다리면서 흘겨들었던 이름 모를 클래식 음악들은 고상한 척 인 것 같아 애써 외면하려 해도 훗날 내 귀의 고향 같은 안정감을 주기도 하니말이다.

엄마는 나에게서 언니와는 다른 어떤 면을 발견하셨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언니와 같은 나이가 되자 나를 컴퓨터학원에 등록시키셨다.

그리고 내 동생은 또 피아노학원에 보내셨다.

물론 컴퓨터학원도 나름 재미있게 다녔고, 어릴 적 컴퓨터를 다룬 경험 때문인지 결국 유학도 IT전공을 선택하기도 했다.

하지만 성인이 되고, 중년이 된 지금 어쩐 일인지 피아노를 한번 잘 쳐보고 싶은 갈망이 생긴다.


내가 피아노를 아예 안쳐본 것은 아니다.

중학교 때 집에 있는 기타 악보를 보고, 기타 코드를 혼자 피아노로 짚어보았는데 어렴풋이 화음 넣는 것이 깨달아졌다. 그때부터 하교하고 나면 가방을 팽개쳐놓고, 피아노에 들러붙어 기타 코드가 붙어있는 곡들을 도장 깨듯 쳐내려 가는 것에 한동안 몰두했다.

여튼간에 기타로 칠 수 있는 노래는 피아노로 죄다 쳤던 것 같다. 그러다가 자신이 붙은 어느 날부터 악보에 계이름을 적어 그것을 외워서 완곡하는 날들이 생겨났다.

내가 그 당시 가장 즐겨 연주하던 곡은 "캐논변주곡"과 "여명의 눈동자 ost"였는데, 내 마음에 들 때까지 수십 번, 수백 번을 반복했고 악보가 낡아 반으로 갈라지면 테이프로 붙여놓고 다시 쳤다.

하지만 역시 근본 없는 배움이었을까.

몇 년의 공백기를 거치니, 이젠 기타 악보를 아무리 들여다봐도 손가락이 꿈쩍을 하지 않는다.

기타 코드 다 잊었다.

그리고 중년이 된 지금 불현듯, 내가 당장 맘먹고 치면 완곡 연주가 가능한 단 하나의 피아노곡을 갖고 싶은 것이다.

난 왜 이토록 피아노를 향한 질척거림을  버리지 못하는가.


언니가 레슨을 받던 피아노방의 그 얇은 합판벽을 넘어가 보지 못했던 미련도 그러하지만, 이제와 내가 못내 그리운 것은 중학생이던 내가 몰입했던 그 시간들이다.

500원을 주고 구입한 기타 악보는 매번 나의 새로운 목표였고, 그것은 나에게 항상 정복이 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나의 귀는 언제나 즐거운 보상을 받았다.

배우지 않았음에도 잘할 수 있는 나의 천재성에 한껏 오만했고, 배우지 않았으니 배운자들보다 제대로 일리 없다는 열등감에 단 한번, 그 누구에게도 들려줄 수 없었던 나의 피아노.


아들이 몇 번 뚱땅거리다 빠져나온 우리 집 전자피아노 앞에 앉아서 살며시 손을 올려놓지만, 지금 내 손가락은 벙어리가 된 듯 조용하다.

엄마는 피아노 칠 줄 알아?


아니, 엄마는 피아노 안 배워서 칠 줄 몰라.


오늘부로 피아노와 헤어진 아들은 분명 언제 피아노학원을 다녔던가 싶을 정도로 피아노 치는 법을 빠르게 잊어 갈 것이다. 그것이 못내, 끝끝내 아쉬운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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