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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우 Jun 02. 2021

나를 알기 위한 비싼(?) 수업료

미니멀리즘이 미덕으로 강조되는 시대에 맞지 않게 나는 옷이나 액세서리 부분에서 맥시멀리스트에 가깝다. 요즘 내가 즐기는 패션은 다리를 전부 덮는 롱 원피스이다. 부피가 큰 옷보다는 바이어스를 많이 써서 폭이 넓지만, 몸을 따라 흐르는 듯한 스커트 라인을 좋아한다. 작년부터는 비즈 액세서리에 빠져서 많이 사기도 하고 직접 만들기도 했었다. 진주가 들어간 것들을 특히 좋아한다. 진주와 터키석으로 만들어진 비즈 팔찌에 검은색 아주 작은 비즈로 만들어져 실 같은 느낌을 내는 팔찌를 레이어드하면 기분이 참 좋다.


패션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20대 초반부터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나는 멋 내는 것에는 관심도 없고 재주도 없는 사람이었다. 일하느라 바쁜 엄마는 수수하신 분이어서 나에게 어울리는 옷을 고르는 법이나 장신구를 연출하는 법을 보고 배울 기회가 없었다. 그렇게 20살이 되어 대학에 가게 된 나는 멋 내기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나는 유행하는 것들을 다 해보고 싶었고 그러면서 나름의 기준도 확실했었다. 그것이 결코 패션 피플의 모습은 아니었지만. 20살의 나는 지금 유행하는 히피펌의 형태로 머리카락을 아주 바글바글하게 말았었다. 그 컬을 손으로 살살 풀어서 자연스러운 볼륨을 만들어야 보통의 패션 피플의 모습일텐데 나는 파마의 롯트를 풀었을 때 나오는 용수철 모양의 구불구불한 형태로 머리를 놔뒀었다. 그저 그게 내 맘에 들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 말 한마디에 꽤 오래 맘을 끙끙 앓는 것 치고는 대체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버리고 마는 성미 덕에 내 맘에 들면 그냥 그대로 다녔다. 눈에는 연두색이나 파란색의 아이섀도를 올리기도 하고, 볼을 인형의 볼처럼 핑크로 진하게 물들이고 다니기도 했었다. 그러다 파스텔 톤의 아이섀도가 유행하자 눈가를 파스텔 톤으로 물들이기도 했었다. 디올의 문레이 섀도 팔레트를 아는가. 흰빛이 많이 도는 파스텔 하늘색, 노란색, 연보라색, 연초록색, 연분홍의 팔레트였다. 바르는 순간 눈이 3배 정도 부어 보이는 색상들인데 그때는 잘도 바르고 다녔다.


그렇게 패션 실험과 암흑기를 지나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다, 이제 나에게는 월급이 들어왔다. 큰돈은 아니었지만 월급으로 옷이며 화장품이며 장신구를 신나게 사들이기 시작했다. 20대 중후반 내가 탐닉했던 스타일은 여성스러우며 튀는 옷이었다. 나설 땐 나서지만 기본적인 상태는 내성적이고 조용한 나는 옷 스타일만은 튀는 것을 좋아했다.  그 당시 옷들을 몇 벌 가지고 있는데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입을 수가 없는 옷들이다. 연핑크의 실크 재질로 치마 부분이 튤립처럼 봉긋한 원피스. 몸통 전체가 작은 주름이 가득 잡히고 끝은 물결치는 레이스로 마감된 연노랑 색의 원피스. 소매 부분에 엄청 큰 아코디언 스타일의 장식이 달린 반짝이는 재질의 원피스. 이런 옷들이 아직도 옷장 속에 자리를 잡고 있다. 내가 애정을 가지고 입었던 옷들이라 절대 다시 못 입어도 못 버리고 함께 하고 있다.






한창 미니멀리즘이 유행처럼 번지던 무렵 옷장이 가득 찬 거지 할머니 이야기가 인터넷을 강타했었다. 젊었을 때 버는 돈을 전부 자신을 치장하는 데 바쳐서 결국 남은 것은 옷장 안 옷밖에 없는 불쌍한 거지 할머니 이야기는 정신을 번쩍 차리게 해주었다. 물론 아주 잠깐이지만. 그 글을 읽을 때는 그래 ‘나는 옷이며 나를 꾸미는 것에 너무 쓸데없이 돈을 낭비했어.’라고 자책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좀 생각이 달라졌다. 내가 좋아하는 옷 스타일, 화장 방법, 장신구를 고르는 법을 찾아가는 것은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나에게 맞는 것을 찾기 위한 시행착오 없이는 나에 대해 알기가 어렵다. 그 과정에서 사용되는 비용이 정말 거지 할머니가 될 정도로 내가 버는 돈에 비해 터무니없이 많으면 안 되겠지만, 나의 취향을 찾기 위해서 수입의 일정 부분을 사용해서 이렇게 저렇게 실험해 보는 것은 가치 있는 과정이다.


결국 돌고 돌아 화장을 하지 않는 나의 맨얼굴이 제일 만족스럽고, 옷을 갖가지로 갖추고 꾸미는 것보다 나를 대표하는 한 가지 스타일을 정해 그것만 입는 것이 나에게 맞다는 것을 발견할 수도 있다. 어떠한 방향으로 나의 취향을 발견하든 시행착오의 기간은 꼭 필요하다. 이리저리 헤매는 시간에 발생하는 비용은 나를 배우는 시간에 대한 수업료라고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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