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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우 May 13. 2021

​존재감 없던 아이, 알라딘이 되다.


별 문제 일으키지 않고 공부도 고만고만 반에서 15등 정도 하는, 딱 선생님들이 선호하는 아이. 반에서 친한 친구 두세 명 정도 있는, 눈을 크게 뜨지 않으면 절대 튀지 않는 조용한 여자아이. 그런 존재감 없는 아이가 바로 나였다. 조금 특이하다 할 만한 것을 찾는다면 남들이 H.O.T.(꼭 점을 찍어줘야 한다.)나 젝키에 열광할 때 신승훈과 이문세를 좋아했다는 것 정도이다. 그렇게 있는 듯 없는 듯 중학교를 졸업하고 나는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내가 입학한 고등학교는 인근에서 엄하기로 소문난 여고였다. 사립 고등학교여서 연세 많으신 할머니 교장선생님이 장기 집권 중이셨다. 머리는 귀 밑 3cm, 치마 길이는 무릎 아래 10cm, 학교 지정 머리핀 착용, 운동화는 흰색에 브랜드가 보이지 않을 것 등 아주 세세하게 교칙이 정해져 있었고, 아침마다 교문 앞에서 이 복장을 점검했었다. 월요일 아침마다 교장선생님은 훈화 말씀으로 심청이 같은 효심을, 춘향이 같은 절개를 강조했다. 우리는 그 말씀을 잘 받아 적어서 담임 선생님께 검사를 받아야 했었다. 일 년에 한 번하는 체육대회에서는 교장선생님 앞에서 마스게임으로 재롱도 떨어야 했다. 기억을 떠올려 쓰다 보니 약간 공산주의 느낌이 나는 것 같은, 시간이 멈춰버린 느낌의 학교였다.

그럼에도 나는 학교 생활이 정말 즐거웠다. 그 이유는 인문계 고등학교인데도 예술학교 같은  예체능 권장 분위기 때문이었다. 1학년, 2학년 때 배우는 무용시간엔 어설프게나마 발레를 배울 수 있었고, 무용 수업의 평가를 받기 위해 학생들은 팀을 짜서 자유 무용 작품을 만들었다. 그 날만큼은 이 복장 단속이 엄격한 학교에서 온전히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 무용 작품에 맞는 색색의 의상들을 입고 무대 화장을 하고 교정을 누볐다. 옷을 만드는 데에 재주가 있는 학생들은 팀의 옷을 스스로 제작하기도 하고, 화장에 관심이 있던 친구들은 그 날 여태껏 숨겨둔 재주를 마구 뽐낼 수 있었다. ‘집에서 몰래 춤추기 취미’를 가진 나도 그때 조장이 되어서 ‘한 여름의 밤의 꿈’을 주제로 작품을 만들었었다. “우리 정말 멋있어!”를 외치며 만든 작품 치고는 완성도가 너무 떨어졌지만, 발 끝 포인을 잘 고수해서 겨우 점수를 괜찮게 땄었던 기억이 난다. 발레를 전공하신 무용 선생님께서 발 끝 포인을 유난히 강조하셔서 가능했었다. 그 외에도 반 대항으로 반가 만들어 부르기 대회도 있었고, 음악 시간엔 성악 발성을 배우기도 했었다. ‘방구석 가수’였던 나는 합창단에 너무 들어가고 싶었지만, 음악 선생님 눈에 들지는 못해서 그 꿈은 좌절됐다.

조용하고 존재감 없는 아이였지만 집에서만큼은 ‘댄서’고 ‘가수’였던 내가 나의 열정을 밖으로 꺼낼 수 있었던 것은 다 이 요상한 학교 덕분이었다.


2학년 때 활동했던 동아리는 동화 구연반이었다. 그 당시 나는 커다란 눈에 낭랑한 목소리를 가진 국어 선생님을 좋아했었다. 그래서 선생님이 담당하시는 동아리에 무작정 들어가게 되었다. 기억을 떠올려보면 학교가 대회를 참 좋아했던 것 같다. 이 동화구연 반에서도 학기 말에 대회를 열었다. 남들 앞에 나서는 건 부끄러워하지만, 집에서는 소리 높여 노래 부르고, 성우들 목소리를 따라 하기 좋아하던 나는 이 대회가 참 두근거리게 다가왔었다. 좀 특별한 걸 하고 싶었다. 그래서 디즈니 만화의 성우들 목소리로 동화구연을 해보자는 생각을 했다. 어떤 걸 할까 고민하던 중에 램프의 요정 ‘지니’의 목소리 연기가 대단했던 ‘알라딘’이 떠올랐다. 그 길로 알라딘 동화책을 사서 대사를 만화 원작과 비슷하게 바꾸고 내용도 그에 맞게 편집했다. 비디오테이프에 티브이에서 하던 알라딘을 녹화해서 같은 부분을 돌려보고 또 돌려보면서 대사를 받아 적고, 동화책을 수정해나갔다. 등장인물들의 목소리를 비슷하게 연습하고, 지니의 화려한 몸동작도 연습했다. 지니가 램프에서 처음 나올 때 “우우우~우우 아히!!!!” 하고 과장되게 등장하는 장면도 연습했다.

부끄러움 많던 나였지만, 재미있는 일을 하니 시간 가는 줄도, 창피한 것도 모르고 그저 잘 만들고만 싶었다. 재스민의 첫 등장 대사인 “전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싶어요.”하는 간드러진 대사와, “달려! 아부!!!”라고 하던 알라딘의 대사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그렇게 열심히 준비해서 대회에 나갔다. 교내에서 하는 작은 동아리 대회였지만, 나는 최선을 다했다. 아무 기대 없이 보던 사람들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듣고 있던 아이들의 눈 휘둥그레지던 장면과 알라딘이 끝나고 난 뒤 쏟아지던 커다란 박수소리가 기억난다. 그때 쾅쾅 뛰던 심장과 열이 오른 볼과 기분 좋은 들뜸이 아직 생생하다. 기존에 생각하던 조용조용 읽어주는 구연동화가 아니라, 거의 원맨쇼 수준의 알라딘으로 대상을 탄 건 물론이고, 학교에서 나의 존재감도 꽤 생겼다. 수업에 들어오시는 선생님마다 “알라딘”을 불러 주셔서 그 해에만 열 번은 넘게 교탁에 서서 공연을 했다. 심지어는 소풍 가서 하는 장기자랑 시간에도 교감선생님의 추천으로 “알라딘” 공연을 했다. 그야말로 존재감 없던 나라는 아이가 알라딘이 된 순간이었다.


동화구연 대회는 규모도 작은 학교의 연례행사였지만, 나에게는 결정적 사건이었다. 방구석에서 혼자 몰래 키우던 끼를 세상 밖으로 꺼내 놓는 계기가 되었다. 그 뒤로 음악 시간에 하는 뮤지컬 공연에서도 연출과 주연을 맡아서 ‘사운드 오브 뮤직’을 공연했었다. 예전 같았으면 수줍음 때문에 나서서 뭘 하겠다고 할 용기가 안 났을 텐데, 한 번 해보니 자신감이 생겼다. 그 자신감으로 뭐든 한 번 해보자 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반에 재주꾼 친구들과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서 사연이 채택되기도 했고 라디오 녹음도 하러 가봤다. 그때도 라디오 부스에서 목소리 연기를 했다. 당시 DJ는 이주노였고, 터보가 게스트였다. 교복 입고 가서 녹음도 하고, 시켜주는 피자도 같이 나눠먹고, 고등학교 시절 정말 잊지 못할 경험이었다.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찾고, 그것에 몰입해서 한 번 터트려보는 경험은 참 중요하다. 남들이 보기엔 별 거 아닌 작은 경험이어도, 거기서 내가 얼마큼 해낼 수 있는지를 경험해보고,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갖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나는 안다. 그 순간을 만나기 위해서 좋아하는 것을 만났을 때는 일단 용기 내서 도전해보는 것이 좋겠다. 혹시 망치거나, 별 거 아닌 일로 지나가버려도 그건 그대로 또 내 안에 남아서 다른 일을 할 때 양분으로 작용할 테니까. 알라딘도 일단 동굴에 들어갔으니 지니를 만날 수 있었던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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