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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ika Mar 26. 2022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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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장면을 보면 왜 눈물이 나는 걸까요?

우리가 감동을 받을 때 느끼는 그 감정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여전히 답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아마 끝까지 알 수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여러 감정과 생각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에 그 매듭을 하나씩 풀면서 정의해나가긴 어렵겠죠.

하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새어 나오는 감정들을 하나씩 느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고 만족스러운 순간일 겁니다.


 오늘 그 매듭이 하나 풀린 기분입니다.

아름다움을 논하기에 앞서, 제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의 정의부터 내려야겠네요.

자연경관을 제외한 인간사에서 제가 느끼는 아름다움이란,

'어떤 것을 위하는 한 사람의 마음이, 다른 사람의 마음까지 전달되는 것'에서 발생합니다.




 위하는 마음의 방향이 자신을 향해있는 것부터 얘기해볼까요.

올림픽에 출전한 운동선수가 금메달을 따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아름답습니다. 그들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열심히 땀을 흘렸던 시간들이 오버랩되면서, 지금 맺혀있는 땀방울과 기합소리, 기를 쓰며 찌푸리는 얼굴들 모두 아름다워 보입니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현재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의 모습도 아름답습니다. 예를 들자면, 취업을 위해 공부하면서 동시에 생계를 위해 일까지 하는 취업준비생이 있다면 아마도 그는 자신의 시간을 열심히 쪼개고 투자해서 살고 있을 겁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보고 흔히들 열심히 산다고 표현할 수 있겠죠. 저는 그런 사람들을 보며 아름답다는 표현을 씁니다.



 타인을 위하는 마음이 저에게 전달될 때, 또 아름답습니다.

신랑과 신부를 위해 부르는 축가에서 울림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이 아니지만 축하해주기 위해 용기를 낸 게 눈에 보일 때. 축가를 부르는 모습이 서툴어 보이지만 오히려 그 모습에서 더 큰 감동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저는 그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길가에 의식을 잃고 쓰러진 행인을 구하기 위해 지체 없이 뛰어든 청년이 있습니다. 주위에 도움을 청하고, 심폐소생술을 시행하며 필사적으로 행인을 살리려고 합니다. 아름답습니다.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가 폐지를 주으며 리어카를 끌고 있습니다. 이를 본 학생들이 할머니의 리어카를 끌고 가며 고맙다는 할머니의 말에 아니라고 답하며 씨익 웃어주는 그 미소들. 아름답습니다.

화재 현장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아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불길은 잠잠해지지 않고 모든 것을 불태울 듯 타오르고 있죠. 소방관은 두렵습니다. 하지만 그는 한 생명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불길 속에 뛰어듭니다. 잠시 후에 소방관은 온통 그을린 채로, 아이를 안고 무사히 빠져나옵니다. 아름답습니다.

 


 일련의 사람들이 모여 공통된 목표를 이루고, 달성하기 위해 행동하는 것 역시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수백 명이 모인 유람선이 유유히 항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배가 침몰하고 있다는 방송이 들려옵니다. 실제로 물들이 새어 들어오고, 배는 점점 가라앉고 있죠. 그런 상황에서 구명보트도 모든 사람을 태우기엔 터무니없이 부족합니다. 이에 모든 사람들이 구명보트에 아이와 노약자, 그리고 여자를 먼저 태우기에 동의하죠. 한시라도 급한 상황이니 지체할 수 없습니다.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한 생명을 더 살리려고 노력하죠. 죽음의 공포가 닥쳐오지만, 누구 하나 먼저 살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습니다. 상대적으로 위해주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두려움을 넘어서죠. 아름답지 않나요?

너무 극단적인 예였다면 다른 아름다운 장면을 살펴볼까요. 축구 선수들이 있습니다. 우승을 하느냐 마느냐의 기로에 선 중요한 경기를 하고 있죠. 혹은 단판 토너먼트에서 올라가기 위한 경기라고 생각하셔도 좋습니다. 어찌 됐든, 그들은 이겨야 합니다. 승자가 있는 세계에선 이기는 것이 선이고 목표니까요. 11명의 선수가 승리를 갈망한다는 한 마음으로 짜릿한 승리를 거두었다고 생각해봅시다. 극적인 결승골이라면 더욱 효과가 좋겠네요. 승리가 확정된 순간, 혹은 선수들이 이길 것 같다는 확신이 심적으로 퍼지는 순간의 그들 표정을 한번 보세요. 포효하고 환호하고, 방방 뛰어다니고 서로를 격하게 끌어 안거나 눈물을 흘리거나 감격에 젖어 기도를 올리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아름답습니다. 그래서 스포츠는 매력적입니다.

 


 사랑도 아름답습니다. 사랑은 정말 특별하죠. 사랑을 하게 되면 아름다움의 조건인 위함과 전달력이 측정 불가능한 정도로 상승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자 친구를 위해, 꽃다발을 준비한 남자를 보게 되면 너무 흐뭇하지 않나요. 여자 친구와의 특별한 날을 위해서든 아니면 그녀의 기분을 위해서든 혹은 그녀와의 즐거운 데이트를 위해서든 '여자 친구를 위하는 마음'이 꽃이라는 매개체로 전달하고자 노력하는 것이니까요. 매개체가 꼭 물질적인 것이 아니어도 됩니다. 말로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할 수 있고, 말없이 안아주는 것도 연인을 위하는 것이니까요. 힘든 일이 있는 남자 친구를 위해 여자는 그에게 어깨를 내줄 수도 있습니다. 등을 토닥거려주며 괜찮아라고 속삭여줄 수 있습니다. 역시 사랑하는 연인의 모습을 보는 것은 너무 아름답고 행복한 일입니다.

 가족을 향한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친구를 위한 사랑 역시도요. 그를 위하는 마음이 사랑을 주고받는 당사자가 아닌 제삼자에게까지 전달될 때 아름다움은 더욱 뿜어져 나옵니다. 서로를 위하는 마음을 확인하고 더 나아가 사랑을 느끼게 된다면 당사자들은 더 없는 행복한 순간을 느끼게 되겠죠. 너무 아름답습니다.

 


 아름다움을 표현하려는 인간의 활동 및 그 작품

을 예술이라고 합니다.

동의합니다. 아름다운 건 예술입니다.

저는 아름다운 사람, 사물, 풍경, 장면을 마주할 때 예술의 세계에 빠져들게 됩니다.

충족감과 더불어 만족감, 안정감을 느낍니다.

나보다 큰 질서에 소속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으며, 혼란스러운 내면이 진정되는 상태로 들어서는 기분입니다.

잠깐 찾아오는 평화로운 순간이죠.

행복이 열리는 나무를 발견한다면 아마 저는 나무의 아름다움에 눈이 멀어버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술이야."라는 말조차 뱉지 못하며 할 말을 잃어버리겠죠.

그저 넋을 놓은 바보가 되어 멍하니 서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 바보는 아마 행복한 순간이 더 잦을 겁니다. 예술 앞에 바보가 된다는 건, 축복받은 거니까요.


 아름다움을 가까이하고 싶습니다.

아름답기 위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자연스레 나타나는 아름다움을 좋아합니다.

마찬가지로 추악함이 출처인 아름다움이 아니라 아름다움에서 비롯된 아름다움을요.

하지만 아름답지 않지만 아름다운 것도 있을 겁니다.

우리가 인생을 논할 때요. 인생이라는 표현은 인간사를 포함하지만 모순되게도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은 조금 달리 적용되야할 것 같습니다.  


 삶은 예술 작품이라고 합니다.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의 연속이기에 더욱 아름답다고들 말하죠.

하지만 우리의 인생이 언제 아름답다고 느낀 적이 있었나요.

아주 가끔 그런 기분이 들 때가 있겠지만, 대부분은 불행하고 혼란스러우며 고통스러웠을 겁니다.

다른 사람이 먼저 말했듯 인생은 본래 고통의 영역에, 혼돈의 질서에 속하니까요.

인생은 그러니까 아름답지만 아름답지 않은 것. 이겠네요.

아니면 아름답기도, 아름답지 않기도 한 것.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해보는 것도 가능하겠네요

어둠이 있어야 빛이 있고, 질서가 있어야 혼돈이 있는 것처럼 (선행하는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름답지 않은 것이 있어야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

아름다움을 가까이하고 높은 가치를 주지만, 그와 동시에 아름답지 않은 것도 포용해야겠어요.

무시하고 배척하기보다는 인정하고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해야겠습니다.

궁극적으로는 그런 자세가 제 삶, 그 자체를 위한 것 같기도 하니까요.  

인생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건가 봅니다.라고 생각하려고요.

살면서 찾아오는 아름다움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아름답지 않은 것에게는 기꺼이 이해를 내어주겠어요.


삶의 예술을 사랑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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