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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재영 Aug 17.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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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그림자, 악성 댓글 심리학


언어의 그림자, 악성 댓글의 비밀

* 댓글이 다소 충격적일 수 있습니다.



댓글러의 병든 분노 배설 창구로 전락한 댓글창



언어는 인간이 가진 가장 특별한 능력 중 하나입니다. 다른 영장류와는 달리, 인간은 복잡하고 다양한 언어 체계를 통해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감정을 표현하고, 문화를 공유할 수 있습니다. 언어는 인간의 뇌에 깊이 새겨져 있습니다. 말을 만드는 '브로카' 영역과 말을 듣는 '베르니케' 영역, 그리고 이 둘을 잇는 '궁상속' 등 많은 부분이 언어 사용을 목표로 존재합니다. 이렇게 뇌의 많은 부분이 언어 사용에 특화되어 있으며, 인간은 큰 뇌를 유지하기 위해 다른 기관에 희생을 치루기도 했습니다. 대표적으로 위장이죠. 인간 위장은 다른 영장류에 비해 아주 약합니다. 소화를 못 하는 음식도 많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왜 이런 희생을 치르면서까지 뇌를 키워 언어를 사용하게 되었을까요? 진화인류학자 로빈 던바는 이에 대한 흥미로운 가설을 제시했습니다. 그는 언어와 뇌의 진화가 ‘가십’, 즉 뒷담화를 위해 촉발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영장류 사회에서는 털 고르기를 통해 동맹을 형성하고, 사회적 관계를 유지합니다. 하지만 털 고르기는 한 번에 한 명과만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이보다 더 효율적인 방법을 찾았습니다. 바로 대화입니다. 대화를 통해 한 번에 여러 명과 정보를 교환하고, 관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인간 사회의 대화는 대부분 네 명이 함께 하는 형태입니다. 커피숍 테이블도 네 명이 앉는 형태가 가장 많습니다. 


대화의 내용은 어떨까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고상한 철학적 담론이나 문학적 공감은 아닙니다. 던바가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대화의 대부분이 ‘누가 누구랑 잤다더라’ 혹은 ‘누가 누구와 싸웠다더라’ 같은 가십이었습니다. 우린 ‘누가 착하다더라’보다는 ‘누가 나쁘다더라’등의 부정적인 평판에 대해 더 주의를 기울이며, 이러한 정보를 주변에 알려 잠재적인 위험을 예방하도록 진화했습니다.이를 ‘사회적 뇌 가설(Social Brain Hypothesis)’이라고 합니다. 이는 인간의 사회성을 강화하고, 문명을 발전시키는 역할을 했습니다. 


한편 수천 년 전, 인류는 새로운 형태의 언어, 문자 언어를 발명했습니다. 글은 음성 언어보다 오래 남고, 멀리 전달되고, 여러 개로 만들 수 있습니다. 글은 음성 언어의 영향력을 배가했습니다. 1517년, 마르틴 루터가 타락한 교황청을 비판하는 ‘대자보’, 즉 95개조 반박문을 비텐베르크성 교회 정문에 붙였습니다. 이 반박문은 불과 두 주 만에 신성로마제국 전역에 퍼졌고, 한 달 만에 유럽 전체로 퍼졌습니다. 이 일 이후 루터는 이단으로 몰려 파문당했지만, 결국 유럽은 종교개혁의 거대한 물결에 휩싸였습니다. 그렇게 1000년 넘게 유지되던 중세가 끝나고, 근대사회가 열렸습니다.


그러나 글도 희생자가 되기도 했습니다. 퍼레이드를 벌일 때, 행렬 맨 앞에는 큰 소리로 사람을 불러 모으는 악대 차량이 배치됩니다. 대중의 관심을 끌려는 것인데, 이 악대 차량을 영어로는 밴드왜건(Bandwagon)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대중적으로 유행한다는 사실 때문에 어떤 정보가 힘을 얻는 현상을 흔히 '밴드왜건 효과'라고 합니다. 보통 당선이 유력한 후보자에게 표가 몰리거나, 소비자가 시장 지배적 상품을 더 선호하는 현상을 말할 때 사용됩니다. 일단 사람이 많이 모이면 뭔가 재미있는 일이 벌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모여 있다는 이유 때문에 모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돌팔이 약장수는 차력 시범이나 마술 쇼를 통해 일단 관심부터 끌고 본다. 많이 모이기만 해도 절반은 성공한 것입니다. 차력 시범과 약의 효능은 아무 관련도 없지만요.


댓글도 마찬가지입니다. 댓글에 공감 수가 많아지면, 사람들은 그 댓글만 보게 됩니다. 댓글에 댓글이 달리고 논쟁의 장이 섭니다. 기사는 그저 주의를 끄는 차력 쇼죠. 


많은 사람의 관심이 일대일 대화나 신문 같은 아날로그 문자 언어에서 이탈하고 있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트위터, 인스타그램, 스레드 등에서 디지털 언어로 대화하고 소통합니다. 최신 정보와 뉴스 대부분이 온라인 세계에서 생산되고 소비됩니다. 종이 신문을 보려면 구독료를 내야 하지만, 온라인 기사는 무료입니다. 클릭 한 번으로 기사를 내려받고, 다른 곳으로 전달하고, 본인의 SNS에 게시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개인 언론사를 가진 것이나 다름없죠.


익명성은 사람들이 자신의 공격성을 더 효과적으로 과시하고 싶어 하게 만듭니다. 적당한 기사나 댓글을 찾아서 꼬투리를 잡고, 왜곡된 우월성을 확인하려 합니다. 어설픈 경험과 지식을 드러내며, 병적 자존감을 유지하려는 것입니다. 이런 헤비 댓글러의 댓글은 욕설과 비방으로 가득합니다. 기사 내용과 전혀 상관없는 글로 도배하는 경우도 흔합니다. 이는 타인을 비방하며 내적 열등감을 투사하고, 스트레스를 욕설을 통해 해결하는 병적 심리입니다. 익명성에 숨어 공격성을 표출하는 통로로 댓글을 이용합니다. 전 인구가 이용하는 온라인 포털 서비스가 수백 명에 불과한 헤비 댓글러의 병든 분노 배설 창구로 전락한 것입니다. 이들은 자신의 공격성을 더 효과적으로 과시하고 싶어 하므로 조회 수가 많은 기사, 유명 언론사 기사를 주로 공격합니다. 


저질 기사가 범람하는 현실에서도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는 언론사가 있죠. 공을 들여서 좋은 기사를 발행합니다. 하지만 깊이 있는 유익한 기사도 몇몇 댓글러의 무의미한 저질 댓글 탓에 싸구려로 전락합니다. 공든 기사를 쓴 사람은 이를 막을 방법도 없고, 억울함을 토로할 방법도 없습니다. 그런데 공든 기사 뒤에 덜컥 이런 댓글이 달리는 것입니다. ‘이게 기사냐, 기레기….’ 


독자 대부분은 댓글을 전혀 작성하지 않습니다. 한 포털 사이트에 댓글을 단 하나라도 쓴 사람은 전체 회원의 1%가 되지 않았는데, 댓글을 단 사람 중 상위 100명이 수개월간 무려 23만 건의 댓글을 달았습니다. 하루 종일 댓글만 단 것입니다. 특히 첨예한 사회 이슈에 대한 기사에는, 선명한 댓글을 달수록 더 높은 공감을 받습니다. 기사의 원래 목적은 갈등을 해소하는 것이지만, 댓글 전쟁을 통해 갈등이 오히려 증폭됩니다. 공감 수를 통해서 인정 욕구를 채울 수 있으므로 의견은 더욱 극단으로 흐르게 됩니다. 이를 '내스티 효과(Nasty effect)'라고 하는데, 저급한 댓글을 통해 여론이 극단으로 양분되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인간의 언어와 뇌의 진화에 대한 이해를 통해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언어를 통해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고, 유용한 정보를 교환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언어는 희생자가 되기도 합니다. 부정적인 정보에 더 주의를 기울이고, 공감을 받으려고 하면서, 저질의 댓글을 달게 됩니다. 익명성과 디지털 언어는 이러한 경향을 더욱 강화합니다. 


많은 사람이 온라인 세계에서 시간을 보냅니다. 인터넷 공간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일부이며 문화의 일부입니다. 악성 댓글은 오프라인 세상의 소란, 낙서, 시비 행위를 온라인으로 옮겨놓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순찰하지 않는 공원은 이내 주정뱅이와 건달, 협잡꾼, 몸 파는 사람, 돌팔이 약장수가 차지하죠. 지금의 온라인 세상이 바로 그렇습니다. 인터넷 공간도 결국 사람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오프라인 세상과 다른 기준을 적용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명재영 cody@wedid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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